최측근 가와이 부부 구속으로 아베 직격탄…이시바 꺾을 후계자 없다면 한번 더 직접 나설 수도
의원내각제인 일본에선 여당의 총재가 총리를 맡는다. 아베 총리는 2012년 집권 이후 3선에 성공해, 계속 자민당 총재직을 유지해왔다. 이변이 없는 한, 총재 임기는 2021년 9월 막을 내린다. 호시절엔 경쟁자가 없어 “아베 총리가 4선 연임을 하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4선은커녕, 남은 임기를 지키는 데 전력을 다해도 모자랄 지경이다. 이제 일본 정치권의 관심은 누가 아베 총리의 뒤를 이을지, ‘포스트 아베’로 쏠리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왼쪽)가 궁지에 몰리자 ‘아베 총리의 최대 라이벌’로 꼽히는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도요토미 히데요시 뒤에 패권을 잡은 것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였다. 아베 총리 후임은 노선 차이가 분명한 사람이 될 것이다.”
일본 언론들의 ‘아베 때리기’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사실상 “레임덕(임기말 권력누수)에 빠졌다”는 평가가 많다. JNN 방송 네트워크가 7월 4일과 5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아베 내각 지지율은 38.2%로 나타났다. 2012년 아베 정권 출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보수 매체 여론조사 결과도 별반 차이가 없다. 7월 6일 요미우리신문이 발표한 아베 내각 지지율은 39%였다.
지지율 급락에는 “아베 총리의 최측근인 가와이 가쓰유키 부부의 구속이 직격탄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가와이 가쓰유키는 아베 총리의 보좌관과 외교특보를 지낸 인물이다. 2019년 9월 법무부 장관에 임명됐으나 부인의 선거법 위반 의혹으로 두 달을 채우지 못하고 사임했다.
#“아베 총리가 정치적 책임을 져야”
지난 6월 18일, 도쿄지검 특수부는 ‘가와이 가쓰유키 중의원과 부인인 가와이 안리 참의원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전격 체포했다. 도쿄지검에 의하면 “가와이 부부는 작년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부인 안리의 당선을 위해 지방의원 등 108명에게 2900만 엔(약 3억 2000만 원)을 뿌린 혐의”를 받고 있다.
일본 내 여론은 싸늘하기만 하다. “(그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한 아베 총리가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교도통신 여론조사에서는 “가와이 부부가 체포된 것과 관련해, 응답자의 75.9%가 아베 총리에게 책임이 있다”고 반응했다. 만약 유죄 판결이 확정될 경우 “가와이 부부는 의원직을 상실하게 되며, 아베 정권에도 치명타를 입힐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궁지에 몰렸지만, 반대로 인기가 치솟는 정치인이 있다. 다름 아니라 ‘아베 총리의 최대 라이벌’로 꼽히는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이다. 두 사람은 정치적으로 대척점에 서 있어 오래전부터 ‘아베 지지율이 떨어질수록 이사바의 인기가 높아지는 묘한 상관관계’를 보여 왔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이시바의 지지율은 호조다. 교도통신이 실시한 ‘차기 총리감’을 묻는 조사에서 이시바는 지지율 23.6%를 얻어 단독 선두에 올라섰다. 아베 총리가 밀고 있는 후계자,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정조회장은 3.3%에 그쳤다.
이시바는 자신의 블로그에 “일본에도 과거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 시절처럼 한일이 좋은 관계를 되찾았으면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썼다.
‘포스트 아베’로 급부상한 이시바는 게이오대 법학부를 졸업했다. 이후 미쓰이은행에서 약 4년간 일한 뒤 정계에 입문한 것으로 전해진다. 방위청 장관, 방위상, 농림수산상, 지방창생담당상을 지냈고, 자민당 내에서는 간사장을 역임하는 등 행정과 당무를 두루 경험했다.
국민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지지 기반이 약한 것이 아킬레스건이다. 이와 관련, ‘주간문춘’은 “이시바가 정책에는 열심인 반면 당내 의원들과의 교류에는 소극적”이라고 평가했다.
내각제에선 유권자가 직접 총리를 뽑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집권당 내 위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실제로 이시바는 2012년, 2018년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국회의원의 표를 얻지 못해 아베 총리에게 번번이 졌다.
#이시바 “위안부 문제 사죄해야 마땅”
이시바의 정치적 성향은 기본적으로 우파다. 그러나 역사문제, 주변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베 총리보다 훨씬 온건하다”고 볼 수 있다. 일례로 자국이 저지른 태평양전쟁을 ‘침략전쟁’이라고 공개 발언하는가 하면 “한일관계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위안부 문제는 여성의 존엄을 침해했다는 점에서 사죄해야 마땅하다”며 “(한국이) 납득할 때까지 계속 사죄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또 2019년 한국 정부가 “지소미아(GSOMIA,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를 연장하지 않고 종료한다”는 방침을 발표했을 때 블로그에 “일본이 전쟁 책임을 정면으로 마주 보지 않은 것이 근본적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만일 ‘차기 총재감’에 대한 설문을 자민당 지지층으로 한정한다면 결과는 어떨까. 아사히신문이 2020년 6월, 자민당 지지층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를 1년 전과 비교해 발표했다. 후보는 이시바 시게루, 고이즈미 신지로, 고노 다로, 스가 요시히데, 기시다 후미오 등이었다. 이시바의 지지율은 2019년 14%에서 2020년 6월 29%로 훌쩍 뛰어올랐다. 다른 후보 지지율이 일제히 떨어진 것과는 대조적.
그렇지만 ‘이시바 1강 체제’라고 말하긴 애매하다. “차기 총재감이 이들 중에는 없다”고 대답한 사람이 무려 20%가 넘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의 지지층 이탈이 계속되면서도 마땅히 후임자를 찾지 못해 고심하는 분위기다.
아베 총리가 후계 1순위로 점찍은 기시다 후미오 정조회장. 2015년 외교장관 회담을 위해 방한한 모습. 사진=일요신문DB
포스트 아베는 ‘이시바 vs 기시다’로 압축된다. 국민들로부터 인기 있는 이시바와 아베 총리가 후계 1순위로 점찍은 기시다의 대결인 셈이다. 기시다는 성실한 우등생 타입으로, 평상시라면 당 기반이 탄탄한 그가 제일 유력한 후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친(親) 아베 성향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TV아사히 뉴스의 해설자, 고토 겐지는 “아베 총리의 장기집권에 따른 국민들의 피로감이 쌓인 상태”라고 강조했다. 그는 “정권이 바뀌려면 반드시 대의명분이 필요한데, 이시바의 경우 자민당이라고 해도 ‘아베 노선’과는 다른 정책을 구상할 거란 기대감이 있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아베 총리가 중의원 해산으로 새로운 판을 짤 가능성”도 제기한다. 그동안 아베 총리가 중의원 해산으로 정치적 위기를 돌파했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시사지 ‘주간신초’는 “아베 총리가 표면적으로 기시다를 후계자로 내세우고 있으나, 포인트는 이시바를 이길 수 있는지의 여부”라고 전했다. ‘정적’ 이시바를 이길 수만 있다면 “아베 총리 입장에서는 그 누구라도 좋다”는 것이다. 매체는 “후계자가 마땅치 않을 경우 자신이 직접 나서고 싶은 것이 아베 총리의 솔직한 속내가 아니겠느냐”는 관측도 내놨다.
아사히신문 ‘자민당 지지층’ 설문조사 다음 자민당 총재로 누가 적합하다고 생각하나(2019년 9월→2020년 6월 지지율 변동) 이시바 시게루 (14%→29%) 고이즈미 신지로 (21%→17%) 고노 다로 (12%→12%) 스가 요시히데 (12%→5%) 기시다 후미오 (8%→7%) 모테기 도시미쓰(3%→1%) 가토 가쓰노부(1%→0%) 이중에는 없다(20%→23%) ※‘기타 답변’ ‘대답하지 않음’은 생략함 |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