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밤 사직 논의→9일 오전 모든 일정 취소→10일 0시 시신 발견…유서엔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
긴박한 3일이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전 비서 A 씨에게 피소된 뒤 시신으로 발견되기까지. 수색 대원과 인명 구조견이 박원순 서울시장 수색에 나설 준비하고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옛 비서 A 씨는 2017년부터 성추행과 성희롱을 당했다며 박원순 시장을 7월 8일 경찰에 고소했다. 소장에는 박 시장이 여러 차례 신체접촉을 했고 메신저로 부적절한 사진과 문자를 전송했다는 주장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옛 비서는 변호사와 함께 7월 9일 새벽까지 경찰에서 고소인 조사를 받았다.
한겨레에 따르면 박 시장은 7월 8일 옛 비서에게 피소된 사실을 알고 당일 밤 최측근을 모아 대책 회의를 했다. 서울시 젠더특보 등이 참석한 이 자리에서 시장직 사의 등이 거론됐다고 한다.
박 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피소 사실을 알고 최측근과 대책 회의까지 했다는 점에 미뤄 박 시장의 죽음이 성추행 건과 관련됐을 가능성이 높다. 박 시장이 어떤 경로로 피소 사실을 알게 됐는지 아직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그 즈음 MBC가 가장 먼저 이 사실을 알고 취재를 시작했지만 경찰 내부에서 함구령이 내려져 취재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상태였다.
박원순 서울시장. 사진=서울시 제공
다음 날인 7월 9일 박 시장은 출근하지 않았다. “건강이 좋지 않다”는 이유였다. 당일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정해진 출근 시간보다 일찍 집무실에 도착하던 박 시장의 평소 모습과 달랐다. 서울시는 이날 오전 10시 40분께 박 시장이 “부득이한 사정”으로 당일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고 공지했다.
박 시장은 이날 오후 4시 40분에 시장실에서 김사열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과 만나 서울·지역 간 상생을 화두로 지역균형발전을 의논할 계획이었다. 또 이날 박 시장은 정세균 국무총리와 총리 공관에서 만나 오찬을 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박 시장은 출근을 하진 않았지만 총리와의 오찬에는 참석한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하지만 끝내 박 시장은 정 총리에게 직접 전화해 “너무 힘들다. 죄송하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오전 10시 44분쯤 종로구 가회동 공관을 나섰다. 10시 53분쯤 공관에서 1km가량 떨어진 와룡공원 인근 CCTV에 잡힌 박 시장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등산복 차림에 가방을 메고 있었다. 등산을 나서는 것으로 보이는 차림이었다. 박 시장은 평소 등산을 즐겼다. 그는 2011년에도 49일 동안 백두대간을 종주하면서 당시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결심하기도 했다.
이후 박 시장은 오후 12시에 1시 사이 딸과 통화했다. 이때 경찰이 통화 내역과 위치를 조회한 결과 오후 2시 42분쯤 와룡공원에서 지인과 전화한 뒤 오후 4시께 성북구 북악산 부근 북악골프연습장에서 위치 신호가 끊겼다.
경찰과 소방 당국은 9일 오후 5시 30분쯤부터 수색을 시작해 다음 날 10일 오전 0시 1분에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신을 찾았다. 사진=임준선 기자
오후 5시 17분 박 시장 딸이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하면서 박 시장을 찾기 위한 대대적인 수색이 펼쳐졌다. 박 시장의 딸은 “4~5시간 전에 아버지가 유언 같은 이상한 말을 남기고 집을 나갔는데 지금 전화기가 꺼져 있다”고 신고했다.
신고를 접수한 경찰과 소방 당국은 오후 5시 30분쯤부터 수색 인원 600여 명을 투입했다. 박 시장의 동선을 따라 와룡공원과 북악산 팔각정, 국민대, 곰의 집을 꼭짓점으로 면적 약 2㎢를 수색 구역으로 정했다. 하지만 경찰과 소방 당국은 오후 9시 30분까지 박 시장을 찾지 못했다. 이후 재정비를 거쳐 인명 구조견 9마리를 포함해 수색 인원을 추가 투입해 2차 수색에 나섰다.
7월 10일 0시 1분 즈음 인명 구조견이 북악산 숙정문과 삼청각 사이에서 박 시장의 시신을 발견했다. 실종 신고 7시간 만이었다. 현장에서 따로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명함이 있어 신원 확인이 바로 가능했다고 한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박 시장의 사인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흰 천으로 씌여진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신이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으로 운구되고 있다. 사진=최훈민 기자
시신 발견 뒤 3시간쯤 현장 감식이 있고나서 오전 3시 20분쯤 박 시장의 시신이 서울대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빈소가 마련됐다. 서울시는 박 시장의 장례를 5일장으로 치르며 서울특별시기관장으로 하기로 했다. 서울시는 “조문을 원하는 직원들을 위해 오늘(10일) 안으로 청사 앞쪽에 분향소를 설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 시장의 발인은 7월 15일이다.
한편 박 시장은 7월 9일 오전 10시 44분께 공관을 나서기 직전 유서를 작성했다고 전해진다. 박 시장의 서재를 정리하던 서울시 주무관이 박 시장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유서를 발견했다. 박 시장의 유족은 유서 가운데 일부를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박 시장은 “모든 분에게 죄송하다. 내 삶에서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오직 고통밖에 주지 못한 가족에게 내내 미안하다. 화장해서 부모님 산소에 뿌려 달라. 모두 안녕”이라고 남겼다.
박원순 시장 ‘성추행 피소’ 전말은? SNS 유출 고소장 실체 아리송 박원순 서울시장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면서 시민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 자연스레 관심은 고인이 왜 죽음을 결심하게 된 것인지에 집중되고 있다.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전 비서 A 씨가 성추행 혐의로 고소를 한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A 씨는 변호사와 함께 7월 8일 서울지방경찰청을 찾아 고소장을 접수한 뒤 9일 새벽까지 고소인 조사를 받았다. 고소장이 접수되면서 사건은 바로 경찰청장 등 경찰 수뇌부에 보고됐다. 경찰은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TF(태스크 포스)까지 꾸릴 예정이었다. 바로 고소 사실을 파악한 박 시장은 8일 밤 최측근들과 대책회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의자인 박 시장이 사망하면서 이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가 종결됐다. 따라서 더 이상 수사가 진행되지 않게 돼 고인이 어떤 혐의를 받았으며 고소인이 어떤 피해를 당했는지 등은 알려지지 않게 됐다. 그럼에도 세인들의 궁금증이 집중되면서 전 비서 A 씨의 고소장이 ‘받은글’ 형태의 정보지로 SNS를 통해 유포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유출된 고소장이 실제 A 씨가 제출한 고소장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리고 사건 종결로 향후에도 확인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기본적으로 경찰을 통해 확인된 고인의 피소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2017년부터 박 시장의 비서로 일한 A 씨는 수시로 박 시장에게 집무실 등에서 성추행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또한 박 시장이 퇴근 이후 텔레그램 등의 SNS를 통해 A 씨에게 개인적인 사진을 여러 차례 보냈으며 부적절한 메시지도 보냈다고 한다. A 씨는 관련 사진과 메시지 등을 경찰에 증거로 제출한 것으로 전해진다. 문화일보에서 보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도했다. 문화일보에 따르면 A 씨가 경찰 조사에서 2016년부터 박 시장이 집무실에서 자신의 몸을 만지거나, 집무실 내부에 있는 침실에 들어오길 요구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또한 퇴근 후에는 본인의 속옷 차림 사진과 성희롱성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SNS를 통해 유출된 고소장이 눈길을 끈 까닭은 언론을 통해 보도된 고소 내용을 토대로 그 내용이 구체적이고 상세히 기술돼 있기 때문이다. 물론 누군가 언론을 통해 보도된 고소인의 진술 내용에 살을 붙여 가짜 고소장을 만들어서 유포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본인은 2015년 7월 13일부터 2020년 7월 16일까지 서울특별시장 비서실의 비서로 근무하였고’라는 부분에선 날짜가 맞지 않는다. 고소 시점이 7월 8일이고 고소장 유출 시점은 9일에서 10일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희롱 시작 시점 역시 언론 보도가 2017년부터와 2016년부터로 엇갈리는 가운데 유출된 고소장은 2015년부터 비서로 근무를 시작했다고 밝히고 있다. 박 시장은 세상을 떠났고 성추행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마무리됐다. 그럼에도 앞서 언급한 고소장 등 정체불명의 글들이 SNS 등을 통해 확산되면서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금 SNS 상에 근거 없고 악의적인 출처불명의 글이 퍼져 고인의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면서 “부디 이런 무책임한 행위를 멈춰달라. 유족을 대신해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일부 박 시장 지지자들은 고소인 A 씨의 신상정보를 찾아 움직이는 소위 신상털이를 시작해 2차 가해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에 정의당 류호정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저는 ‘당신’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벌써부터 시작된 2차 가해와 신상털이에 가슴팍 꾹꾹 눌러야 겨우 막힌 숨을 쉴 수 있을 당신이 혼자가 아님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