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급 9억 원’ 베일 축구보다 골프에 관심…레알 카카·첼시 토레스도 몸값 못한 스타
벤치에서 이어지는 베일의 ‘기행’에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남은 급료 다 주고 방출시키자’ 이야기도
하지만 현재 베일은 팬들에게 가장 미움받는 선수 중 한 명이다. ‘과연 축구에 열정이 있는 선수가 맞는가’라는 의문까지 달리고 있다.
지난 7월 10일 알라베스와의 프리메라리가 경기에서 베일은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했다. 비록 선발은 아니어도 몸을 풀거나 경기를 지켜보며 투입을 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베일은 돌발행동을 보였다. 베일은 코와 입을 가려야 할 마스크를 눈까지 올리고 팔짱을 낀 채 몸을 눕히며 잠을 자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경기에는 관심이 없다’는 태도였다. 이어진 13일 그라나다전에서는 손을 동그랗게 움켜쥐고 마치 망원경으로 경기를 보는 듯한 행동을 하기도 했다. 스페인 현지 언론에서는 “특이한 쇼를 보여주고 있다. 경기에 집중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베일은 지난 6월 말부터 레알이 리가 우승을 확정 지은 7월 16일 비야레알전까지 6경기 연속 경기장을 밟지 못했다. 이번 시즌 기록은 리가와 챔피언스리그, 국왕컵 등을 통틀어 20경기 3골 2도움이 전부다. 20경기에서 출전 시간은 고작 1260분이다.
팬과 언론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단순히 저조한 경기력 때문만이 아니다. 그가 일주일에 받는 급여는 약 9억 원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에 걸맞은 활약을 펼치지 못할 뿐더러 열정을 잃은 모습까지 보이는 탓에 팬들은 더 큰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베일이 처음부터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인 것은 아니다. 레알에 첫발을 내디딘 2013-2014시즌부터 3년간 베일은 한 시즌에 30개 내외의 공격 포인트를 생산해냈다. 2017-2018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포함해 숱한 결승전에서 골로 팀에 우승컵을 안겨 ‘결승전의 사나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뛰어난 활약을 하던 시절, 레알은 베일과 재계약을 했고 주급은 천문학적 금액으로 뛰어올랐다. 하지만 이후 베일은 거짓말처럼 부상으로 쓰러지기를 반복했다. 팀원들과 어울리지 못한다는 루머도 있었고 언제부턴가 골프에 더 열정을 쏟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팀 훈련장에서 골프 스윙 연습을 하는 장면이 포착돼 십자포화를 맞기도 했다.
베일이 골프 연습을 하든 벤치에서 잠을 자든 계약서상에 명시된 주급은 꾸준히 지급되고 있다. 이에 팬들 사이에서는 이미 ‘먹튀’로 평가받고 있다. 급기야 최근 스페인 언론에서는 ‘레알이 남은 계약에 대한 급료를 한 번에 지급하고 베일을 방출하기를 원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리버풀의 붉은 유니폼을 입고 최고의 활약을 펼쳤던 토레스는 첼시에서 실망감을 안겼다. 사진=연합뉴스
#기대감 무너뜨린 ‘먹튀의 전설’들
스포츠계에서 ‘먹튀’는 종종 있다. 특히 주변의 기대가 커진 상황에서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실망감이 더욱 크기에 많은 질타가 쏟아져 나온다.
앞서 ‘먹튀의 전설’로 불리던 선수는 베일의 레알 마드리드 선배 조나단 우드게이트다. 잉글랜드 출신 수비수인 그는 20대 초반, 잉글랜드에서의 활약을 인정받고 큰 기대 속에 레알에 입단했다. 당시 이적료만 1800만 유로(약 247억 원)였다. 현재와 같이 이적료가 폭등하기 이전인 2004년이었고 수비수임을 감안하면 큰 금액이었다. 입단 동기인 ‘원더보이’ 마이클 오언의 이적료가 1200만 유로(약 147억 원)였다.
하지만 우드게이트의 마드리드 생활은 비극으로 마무리됐다. 그는 2시즌간 레알에서 리그 9경기만 소화했다. 지속적으로 부상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적 첫 시즌 출전 기록은 모든 대회를 통틀어 ‘0’이다. 다음 시즌 레알 데뷔전에서는 자책골을 기록하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결국 이적 2년 만에 그는 짐을 쌌다.
한때 세계 최고로 불리던 히카르도 카카(브라질), 페르난도 토레스(스페인)도 먹튀 오명을 받았다. 카카는 2000년대 중반 이탈리아 AC 밀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FIFA 올해의 선수, 발롱도르 등 상을 휩쓸며 선수로서 모든 것을 누렸다. 이후 입단한 레알에선 기대 이하였다. 이적 첫 시즌 공격 포인트 20개가량 만들어내기도 했으나 약 900억 원이라는 이적료에는 걸맞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른 노쇠화가 원인이었다.
스페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잉글랜드 리버풀에서 최고의 공격수로서 역량을 발휘한 토레스는 첼시 이적 후에는 ‘먹튀’가 됐다. 경기당 0.7개가 넘는 공격 포인트를 만들어냈던 리버풀 시절과 달리 첼시에서는 0.5개에도 미치지 못했다. 포인트 중 골의 비중도 첼시 시절이 더 적다.
국내에서도 불명예를 안은 선수들이 존재한다. 그중 한 명은 ‘2002 월드컵 전설’ 설기현이다. 해외 생활을 마무리하고 2010년 1월 포항 스틸러스로 향한 그는 전성기 모습과 비교해 부족한 경기력을 보였다. 유럽을 호령하던 모습을 기대했던 팬들로선 만족하기 어려웠다.
포항 생활 1년 만에 라이벌 울산 현대로 유니폼을 갈아입어 큰 질타를 받았다. 이후 이적한 인천 유나이티드에서도 먹튀 논란은 뒤따랐다. 구단이 시즌 구상을 마친 개막을 4일 앞둔 시점, 현역 은퇴를 선언해 입방아에 올랐다. 인천 관중석은 개막전부터 험악한 문구가 적인 현수막으로 뒤덮였다.
#부활 성공한 코리안 특급
야구계에선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미국 메이저리그(MLB) LA 다저스 시절, 메이저리그 최고 수준의 투수로 활약한 그는 5년간 6500만 달러(약 780억 원)가 보장된 계약으로 텍사스 레인저스로 향했다. 하지만 이전까지의 혹사로 박찬호는 LA에서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타자 친화 구장인 텍사스 홈구장 알링턴 볼파크의 환경도 그에게 호의적이지 못했다.
이적 첫해 9승 8패 평균자책점 5.75에 그친 박찬호는 이적 2년차에는 단 1승으로 최악의 성적을 냈다. 텍사스에서의 4년간 기록은 68선발 22승 23패였다. 800억 원에 가까운 거액 계약을 맺은 선수의 기록이라기엔 너무나도 초라했다. 한때 미국 현지에서도 메이저리그 ‘역대 최악의 FA 계약’에서 빠지지 않는 이름이 박찬호였다.
하지만 다른 선수들과 달리 박찬호는 이미지 회복에 성공했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뉴욕 메츠, 필라델피아 필리스 등에서 활약하며 내셔널리그 우승도 하는 등 ‘재기가 힘들 것’이라던 평가를 뒤집어냈다. 이후 일본 프로야구 무대를 거쳐 KBO 리그에서도 활약하며 가장 존경받는 야구인 중 한 명으로 남았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