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투, 펀드 환매중단 책임 팝펀딩 등에 전가…김 회장이 강조한 ‘리스크 관리’ 어디에?
한국투자금융의 이 같은 행태는 결국 최종 결정권자인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의 리더십과 경영스타일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부회장 승진 이후 9년 만인 지난 3월 회장으로 승진한 김남구 회장은 평소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것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의문을 표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관련기사 정부 극찬받은 팝펀딩의 배신, 한투는 과연 몰랐을까).
한국투자증권이 환매중단된 팝펀딩 연계 사모펀드에 대해 불완전 판매 논란에도 책임 있는 대응을 하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다. 이 때문에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의 경영 스타일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사진=일요신문DB
문제가 된 팝펀딩 연계 사모펀드는 당초 정권 핵심 인사들과 금융당국의 홍보에 힘입어 절찬리 판매됐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11월 팝펀딩의 경기 파주 물류창고를 방문해 ‘동산금융의 혁신 사례’라고 평가했다. 정부 요인들의 홍보 덕에 팝펀딩 연계 사모펀드는 단숨에 투자자를 끌어 모았다. 그 후 두 달도 채 지나기 전인 지난 1월 팝펀딩 판매가 중단돼 500억 원 상당의 손실이 불거졌다.
팝펀딩은 홈쇼핑에 납품하는 중소업체의 상품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 투자자에게 원리금을 돌려주는 ‘동산 담보 대출’ 상품이다. 한국투자증권(한국투자)은 분당PB센터를 중심으로 팝펀딩 연계 사모펀드를 적극적으로 판매했다. 더욱이 한국투자는 상품 물량이 부족해 분당PB센터에서 단독으로 판매한다는 식으로 투자자를 끌어 모았다.
팝펀딩 펀드 환매중단은 라임자산운용 환매중단 사건이 터진 직후 발생했다. 많은 투자자들은 한국투자를 믿고 상품에 투자했는데 다수가 불완전판매에 당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일부 투자자들은 “리어카에 팝펀딩 창고 물건을 싣고 나가서라도 팔면 되니 원금 보장은 문제없다”는 한국투자의 설명을 듣고 투자를 결정했다고 토로했다.
#꼬리 자르기, 책임 전가 논란 나오는 까닭
한국투자는 환매중단을 해결하기 위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사건에 대응해왔다. 하지만 TF를 통해 별다른 조치가 나오지는 않았다. 오히려 판매를 담당했던 분당PB센터 지점장을 통해 사태 해결의 뜻을 보이기는커녕 인사를 통해 해당 지점장을 다른 지점으로 발령내면서 ‘꼬리 자르는 것 아니냐’는 비난을 샀다. 뿐만 아니라 환매중단 사건이 터진 뒤 담당자가 투자자들의 연락을 회피한 것도 문제가 됐다.
심지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조직한 한국투자 TF 관계자들은 지난 4월 투자자들과 가진 간담회 자리에서 사실과 다른 책임회피용 해명을 지속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4월 이뤄진 투자자와 한국투자 간 간담회 내용 녹취록에 따르면 한국투자는 모든 책임을 팝펀딩과 운용사 측에 전가했다. 환매중단 사건의 발단은 팝펀딩이 ‘대출사기’에 휘말린 것이며 이를 관리해야 할 의무는 판매사가 아닌 운용사에 있다는 것. 또 간담회 자리에서 한국투자 TF 관계자는 “금융감독원이 팝펀딩과 관련해 즉각 수사 의뢰를 하지 않고 3월 말까지로 유예해줬다. 잘 해결될 수 있는 사건이 언론 때문에 도리어 꼬였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극찬을 받았던 팝펀딩 연계 사모펀드가 환매중단 사태에 놓였다. 29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이종현 기자
한국투자 측이 주장한 문제의 대출사기 업체는 ‘더블유플러스’다. 한국투자 TF 관계자는 “유명 여배우를 내세워 광고를 했던 화장품 업체가 270억 대출사기를 일으키는 바람에 팝펀딩 측이 이를 돌려막으려다 문제가 생겼다”며 “그 시기에 자비스5호, 6호가 설계됐다”고 설명했다. 결국 대출사기 때문에 팝펀딩이 어려워졌고, 사모펀드 환매중단까지 초래됐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정작 펀드 운용보고서를 작성했던 자산운용사 자비스자산운용이 7월 ‘월간조선’을 통해 “더블유플러스라는 회사는 모르는 회사다. 여러 납품업체 중 한 곳의 계열사로 보인다”고 해명하면서 혼란이 가중됐다. 2018년 공시에 따르면 더블유플러스는 자본금 4억 원에, 13억 원의 영업손실을 낸 업체다. 서류를 조작한다고 하더라도 재무구조가 공개된 이 업체에 270억 원의 사기대출이 이뤄졌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실제 자비스자산운용은 더블유플러스와 계열관계인 A 사에 10억 원을 대출해준 것으로 파악됐다. A 사는 2018년 3월 설립돼 화장품, 의류 등 유통 관련 사업을 해왔다. 자비스자산운용이 제기한 양수금 청구 소송에 따르면, 자비스자산운용은 팝펀딩으로부터 2019년 6월 A 사에 대한 10억 원의 채권을 받아 대출 계약에 대한 권리와 권한을 보유해왔다. 그러나 10억 원이라는 대출 규모를 봤을 떄 한국투자 측이 환매중단 사태의 원인으로 주장했던 270억 원 대출사기와는 괴리가 너무 크다.
금융당국도 한국투자의 환매중단 대응에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금융감독원이 팝펀딩에 시간을 주기 위해 수사의뢰를 유예했다는 한국투자 TF 관계자의 간담회 때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 금감원은 팝펀딩에 대한 검사를 완료하고 2019년 12월 수사기관에 이를 통보했다고 밝혔다.
#한국투자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보상 결정”
결국 투자자 89명은 한국투자, 팝펀딩, 자비스자산운용 등에 대해 사기, 자본시장법 위반 등으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사건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한누리 측은 “투자대상이 부실대출과 담보물 횡령 등으로 펀드 가입 당시부터 설명된 수준의 담보가 확보되지 않았다”며 “펀드의 설계, 발행 및 운용에 관여한 한국투자, 자비스자산운용 등은 범죄행위를 공모하였거나 이를 알면서 방조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앞서 금감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는 라임자산운용의 무역금융펀드 판매사들에 투자금 전액을 물어주라고 권고했다. 판매사가 부실 상품을 판매했다면 그 사실을 알지 못했더라도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는 선례가 나온 셈이다. 하지만 한국투자는 팝펀딩과 관련해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보상에 대해 결정할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증권업계에서는 팝펀딩 상품을 판매한 한국투자가 보상안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투자가 옵티머스 환매중단 건에 대해서는 피해액을 선지급한 바 있어, 팝펀딩에만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보상을 결정’한다는 방침에도 명분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투자가 옵티머스와 팝펀딩 투자자들에게 보상을 차별할 명분이 없다. 사태의 본질은 같기 때문”이라며 “두 펀드 간 보상에 차이를 두는 건 회사의 전략적 결정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팝펀딩 투자자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걸 보고 그 후 터진 옵티머스에 대해선 논란이 커지기 전에 선보상금을 지급한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지난 3월 대표이사 회장으로 승진한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은 잇단 환매중단 사태와 관련해 해결책 등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고 있다. 한국투자금융지주가 금융사로서 드물게 오너 경영 체제라는 점을 감안하면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시킨 사건들에 대해 최종 결정권자가 해결 의지의 메시지라도 내놓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김남구 회장의 경영 스타일에 회의적인 시선이 몰린다.
재계 한 인사는 “결국 최종 결정권자는 대표이사이며 오너라면 더더욱 그렇다”며 “모든 일에 나서기도 뭐하지만, 회사와 관련해 사건사고가 발생해 떠들썩한데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 건 아무래도 좋은 모습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