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금융위 ‘규제 완화’가 원죄…운용 경험 없는 증권사 인력 문턱 낮은 사모시장 대거 이동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증권업종본부 주최로 열린 옵티머스 사모펀드 상환 불능 사태 해결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라임자산운용을 필두로 알펜루트자산운용, 옵티머스자산운용 등이 운용하던 사모펀드의 환매중단이 잇달아 발생했다. 일부 사모펀드는 제도권 금융사와 자본시장 시세조종 세력, 사채업자 등이 결탁해 투자금을 제멋대로 운용한 사기사건에 가까운 것으로 그 실체가 드러났다. 라임자산운용은 투자자들에게 모은 1조 6000억 원을 한계기업 채권 매입과 실체가 불분명한 부동산 시행사 등에 투자했다. 옵티머스자산운용 역시 공공기관 채권에 투자한다며 투자금을 모았지만 실제로는 대부업체나 사채에 투자하고 서류를 위조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깜깜이 투자와 운용사의 비리는 고스란히 금융소비자의 투자손실로 이어졌다. 개인 고객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고 환매중단 사태가 벌어진 펀드는 ‘전문투자형 사모펀드’다. 전문투자형 사모펀드는 주식, 채권, 부동산 등 다양한 자산에 투자하는 상품이다. 제도권 금융사를 믿고 노후자금을 투자한 금융소비자들은 피해를 호소하며 수개월째 집회와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사태는 벌어졌는데 관계자들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금융감독원(금감원)은 자산운용사의 사모펀드 투자내역에 대한 감독권이 없어 한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금감원은 궁여지책으로 사모펀드 판매사에 피해 보상을 압박하고 있지만 강제력이 없어 역부족이다. 사모펀드를 판매한 금융사들은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투자자들에게 조건부 보상안을 내놔 도리어 투자자를 기만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모펀드 사태의 발단은 금융위원회(금융위)라고 보고 있다. 일반 투자자들이 적은 자금으로도 사모펀드에 진입할 수 있게 되고, 자산운용사가 제대로 된 감독을 받지 않고도 펀드를 운용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이유에서다.
금융정책을 총괄하는 금융위원회는 잇단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진=일요신문DB
사모펀드 규제완화는 창조경제를 기치로 내건 박근혜 정부 시절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당시 정부는 금융산업을 육성하고 해외 투기자본으로부터 국부유출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규제완화를 적극 장려했다. 사모펀드 시장은 2014년 금융위가 발의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본격적으로 성장했다. 금융위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에는 △개인투자자 사모펀드 투자 조건 완화 △운용사의 운용상황 공시 의무 완화 △운용인력 자격기준 완화 등의 내용이 담겼다.
2014~2015년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대한 국회 정무위원회 회의록을 살펴보면 소속 위원들 사이에서도 규제완화에 대한 입장 차가 컸다. 당시 정찬우 금융위 부위원장은 “법이 존재하는 만큼 사모펀드 규제를 완화해도 불법이 자행되지는 못한다. 자본시장은 창의력이나 자율성을 많이 주면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새로운 수입원이 발굴되는 성격의 시장”이라며 규제완화를 역설했다.
다만, 정 부위원장은 투자 위험성을 고려해 일반 투자자는 자격 요건을 5억 원 이상 사모펀드에 투자하는 경우로 제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여권인 당시 야당 의원들은 사모펀드 피해 사례가 발생할 것을 우려해 규제완화를 반대했지만, 결국 박근혜 정부와 여당인 새누리당 주장대로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통과된 뒤 금융위는 시행령을 통해 사모펀드 문턱을 더욱 낮췄다. 금융위는 개인에게 투자 기회를 열어줘야 한다며 사모펀드 개인 투자 최소 금액 기준을 5억 원에서 1억 원으로 대폭 낮췄다. 그러나 개인의 투자 범위를 늘리면 그만큼 더 탄탄한 안전장치도 함께 마련해야 했음에도 자산운용사의 각종 의무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분기별로 이뤄지던 자산운용사의 운용 상황 공시 의무가 반기로 완화됐다. 사모펀드가 금감원에 보고해야 하는 내용 중 운용전략과 투자대상 자산의 종류, 투자위험 관련 사항 등이 삭제돼 보고항목도 줄어들었다.
증권업계는 사모펀드 운용인력의 경험 부족도 환매중단의 주요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2014~2015년은 증권사 구조조정이 대거 이뤄지던 시기다. 실직한 증권사 인력들이 때마침 이뤄진 규제완화로 운용 경력 없이도 진입 가능한 자산운용시장으로 대거 유입됐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운용 경력이 없던 애널리스트들이 전문사모운용사를 설립하거나 관련 회사로 많이 이직했다”며 “기존 경쟁자들이 증권에 강하다보니 신규 운용인력들은 부동산금융이나 사모사채 등 신종투자에 집중하는 차별화 전략을 구사했다”고 회고했다. 이종필 라임자산운용 최고정보관리책임자(CIO)가 이 시기 사모펀드 시장에 뛰어든 것도 자산운용업 규제완화 덕이었다.
결국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를 야기한 장본인은 금융사와 금융위라는 목소리가 높다. 개인의 사모펀드 투자 요건이 1억 원까지 대폭 낮춰진 데는 정부뿐 아니라 금융사의 입김도 작용했다는 이유에서다. 앞서의 정무위 회의록에도 “금융사들이 5억 한도가 높다고 개인 투자한도를 낮추자는 의견이 나온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정부가 나서서 사모펀드 규제를 완화했다”며 “금융업에서 규제완화는 곧 사업을 하라고 등 떠미는 격인데 이제 와서 책임을 모두 금융사에만 전가한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복잡하고 어려운 금융정책은 입법 과정에서 정부와 금융당국의 입장이 과대 반영되고 있다. 사모펀드 규제완화만 해도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미 사모펀드 악용 사례가 속출해 규제를 강화하는 기조였지만 우리나라는 이에 역행하는 규제완화에만 몰두했다. 규제를 완화하면 경제가 활성화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만 갖고 금융소비자를 배제한 채 마구잡이식으로 규제완화 입법이 이뤄진 것이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금융정책 입법 과정에서는 금융사와 금융위, 정부의 의사가 과도하게 반영된다. 입법 전 공청회나 토론회를 거친다 해도 입맛에 맞는 교수나 패널 위주로 섭외해 법안 검토가 균형 있게 이뤄지지 않는다”며 “사모펀드 도입으로 기업의 자금난이 해소됐다는 실증적 통계는 전무한데도 금융사들의 입장만 대변하고 규제완화를 외치며 경제를 축내는 금융위는 백해무익한 존재”라고 강조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금융위는 지난 6월 사모펀드를 전수조사하겠다고 밝히며 환매중단 사태에 대한 해결 의지를 밝혔다. 사태의 근본 원인이 자신에게 있음에도 금융위가 이를 인정하고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해결사임을 자청하고 나서자 여론은 더욱 악화됐다.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은 지난 6월 29일 성명을 내고 “그동안 관료들은 정책적 판단에 대해 면죄부를 받아왔다. 모피아들은 대한민국 경제를 걸고 도박을 하고 있다”며 “사모펀드가 뭔지도 모르는 서민들이 평생 모은 돈을 잃고 있다. 국회는 사모펀드 사태가 금융위기로 번지기 전에 철저한 진상규명과 금융위 특별감사를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며 금융당국과 금융위에 대해 날선 비판을 가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