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중기의 ‘승리호’ 온라인 제작발표, 곽도원의 ‘국제수사’ 개봉 연기…업계 “더이상 견딜 재간 없다”
한 중견 영화 마케팅 회사 대표는 코로나19 2차 대유행의 우려가 높아진 상황에 대해 이렇게 토로했다. 개봉 영화의 홍보 및 마케팅을 담당하는 회사는 대다수 영세 업체다. 상반기 개봉 예정이었던 영화가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대거 일정을 조정하며 이들 업체들은 ‘개점휴업’ 상태에 돌입했다. 이 대표는 “3∼4개월은 어떻게든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며 겨우 버텼다”며 “회사 통장 잔고는 이미 바닥났다. 코로나19 재유행으로 영화들이 개봉을 또 연기하면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공연업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나름의 방역 체계를 구축하고 평상시 대비 절반 수준의 관객만 입장시키며 어렵게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공연 시장이 다시금 일제히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 문화 업계 종사자들은 “더 이상은 견딜 재간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국제수사’ 측은 17일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19일로 예정되어 있던 개봉 일정을 잠정적 연기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사진=영화 ‘국제수사’ 홍보 스틸 컷
#출구가 안 보인다
영화 ‘반도’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등이 각각 400만 명에 육박하는 관객을 모아 손익분기점을 넘는 등 훈풍이 불던 충무로에는 8월 17일 임시공휴일을 포함한 연휴를 기점으로 또 다시 삭풍이 불기 시작했다.
당초 18일 언론시사회를 열고 19일 개봉예정이었던 배우 곽도원 주연작 ‘국제수사’는 모든 일정을 전면 중단했다. ‘국제수사’ 측은 17일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19일로 예정되어 있던 개봉 일정을 잠정 연기하기로 결정했다”며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격상되고 집단 감염에 대한 사회 전반의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신작 개봉으로 관객들을 극장에 밀집시키는 것이 정부의 방역 노력을 무력하게 만들 수 있다는 판단으로 고심 끝에 개봉 연기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18일 오전 오프라인 행사로 진행할 예정이었던 영화 ‘승리호’의 제작발표회 역시 온라인 행사로 전환됐다. 이 영화는 배우 송중기, 김태리, 유해진 등 스타들이 대거 참여해 언론과 여론의 관심이 높았다.
2월 이후 영화 제작발표회는 온라인으로만 진행됐다. 하지만 최근 유명 배우들이 출연하는 영화들이 정상적으로 개봉되고 관객들도 극장으로 돌아오며 ‘승리호’가 다시금 오프라인 제작발표회의 출발선을 끊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재확산으로 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한 영화 관계자는 “‘승리호’는 이미 개봉을 한 차례 늦춘 바 있다. 그런데 코로나19 2차 대유행 위험으로 재차 연기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며 “‘승리호’처럼 유명 배우와 감독이 참여한 대규모 영화가 주춤하면 다른 영화들도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걱정했다.
공연업계도 잔뜩 몸을 움츠렸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은 8월 15일 구성원 중 한 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 단원은 사랑제일교회 관련 확진자인 서울예고 학생을 교습하는 과정에서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시향은 단원 전원을 격리 조치하고 코로나19 진단 검사를 실시했다.
시향 측은 “역학조사 결과에 따라 시향 구성원 중 자가격리 및 능동관리 대상자 발생 시 방역당국의 지침에 따라 방역수칙 준수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며 “현재 예정된 8, 9월 공연 및 각종 사업의 추진 여부를 구성원 및 시민의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판단하여 공지드릴 것”이라고 전했다.
이 외에도 뮤지컬 ‘썸씽로튼’과 ‘블러디 사일런스:류진 더 뱀파이어 헌터’는 18일 준비했던 프레스콜을 취소했다.
19일 개봉예정이었던 ‘국제수사’는 모든 일정을 전면 중단했다(왼쪽). 18일 오프라인 행사로 진행할 예정이던 ‘승리호’의 제작발표회도 온라인 행사로 전환됐다. ‘국제수사’와 ‘승리호’의 일정 변경 보도자료.
#“다 닫을 수는 없다”
영화진흥위원회의 한국영화산업 결산 발표에 따르면 4월 극장을 찾은 전체 관객수는 97만 명이었다. 이는 2019년 같은 기간 1237만 명을 동원한 것과 비교하면 92.7%가 감소한 수치다. 산술적으로 지난해 4월 1000명의 관객이 극장을 방문했다면, 올해는 73명만 찾았다는 의미다. 이 시기는 코로나19에 대한 공포심이 극대화되며 대중이 밀집 시설인 극장을 피했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관객 감소를 우려해 신작 개봉이 크게 줄어든 것도 관객 급감을 부추겼다.
이는 다른 공연업계도 마찬가지다. 뮤지컬, 연극, 클래식 공연 역시 무대에 올리는 편수가 크게 줄고 관객도 줄면서 악순환이 꼬리를 물었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그래서 업계 관계자들은 “상반기처럼 모두 다 문을 닫을 수는 없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 차례 타격은 감수했지만 2차 충격이 오면 버틸 힘이 없다는 의미다. 정부나 유관단체의 지원 역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업계 내부에서 자구책을 찾아야 한다.
한 중견 공연기획사 대표는 “코로나19에 대한 공포심이나 경계심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면서 “지난 6개월 동안 각 업체들이 철저한 방역 시스템을 구축했고 안전을 우선시하는 관객들의 수준 역시 높아졌다. 결국 이제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완전히 박멸하는 것이 아니라 슬기롭게 극복해가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박 의견도 만만치 않다. 그동안 여러 대규모 감염 사례에서 봐왔듯, 일단 확산이 시작되면 n차 감염을 막기 어렵다. 불특정 다수가 몰리고 그들의 신상을 일일이 체크하기 힘든 극장이나 공연장의 경우 대규모 감염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공연 관계자는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무조건 공연을 하지 말자는 주장은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면서도 “코로나19 확산 방지가 최우선 과제라는 것을 모두가 공감하고 있는 터라 해법을 찾기 너무 어렵다”고 토로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