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론 흔들린 이후 문 대통령과의 차별화 여부 고민…여권 주류 친문계 반발하면 대권 도전 어려울 수도
8월 29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당사에서 열린 ‘제4차 전국대의원대회’에서 신임 당대표로 선출된 이낙연 의원이 자가격리로 인해 자택에서 수락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더불어민주당 제공
정치 전문가들은 그동안 이낙연 대표가 1위를 차지할 것이란 데엔 이견을 달지 않았다. 다만, 득표율을 놓고 전망이 엇갈렸다. 전대 막판 대세론이 흔들리면서 지지율 50%를 넘기기 힘들 것이고, 이는 이 대표의 정치적 입지 약화로 이어질 것이란 얘기가 확산되기도 했다. 결과는 60.77%. 2위인 김부겸 의원(21.37%)보다 3배 가까이 높은 수치였다. “이겨도 본전”이라던 이 대표 측에서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기류가 감지됐다.
전대 직후 통화한 민주당 한 의원은 “50% 안팎으로 봤는데, 예상보다 높게 나왔다”면서 “(높은 득표율은) 이 대표가 다시 한 번 치고 올라갈 수 있는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했다. 다른 의원도 “계파를 떠나 이 대표에게로 표가 쏠렸다. 이낙연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본다”고 했다. 자택에서 자가격리 중인 이 대표는 “여러분의 결정에 감사드린다”며 “여러분 명령을 무거운 책임감으로 수락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집권당 수장으로 올라선 이 대표의 알람시계는 2022년 3월 대선에 맞춰져 있다. 당 대표로서의 역할도 차기 플랜과 맞물려 돌아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주변 여건은 녹록하지 않다. 우선 각종 악재로 정부 여당에 대한 세간의 여론은 예전만 못하다는 평이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율도 하락 추세다. 그러자 당청 관계에서 파열음이 분출하는 모양새다. 전당대회 흥행 실패로 최소한의 ‘컨벤션 효과’조차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 대표의 더 큰 고민은 더 이상 대세론이 유효하지 않다는 부분이다. 총리 재직 시부터 차기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압도적인 1위 자리를 지켜왔던 이 대표는 최근 이재명 경기지사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몇몇 조사에선 이 지사가 이 대표를 앞서기도 했다. 그러자 수면 아래에 있던 ‘총리 잔혹사’ ‘호남 필패론’과 같은 부정적인 단어들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낙연 대표의 고민은 더 이상 대세론이 유효하지 않다는 점이다. 7월 30일 경기도청에서 만난 이재명 경기지사와 이낙연 대표. 사진=임준선 기자
‘미니 대선’으로 격상한 내년 4월 재보궐 선거도 이 대표 차기 도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우선 공천 여부를 두고 계파 간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를 이 대표가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관심이 모아진다. ‘이낙연 리더십’의 시험대인 셈이다. 자칫 선거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 책임론에서도 자유롭기 힘들다. 서울시장·부산시장 모두 민주당이 장담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 대표에게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임기는 짧지만 이 대표 앞날은 험난하기만 하다. 전당대회 막판 이 대표 주변에서 ‘대선 직행’을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나왔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실익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지난 4월 총선 승리 후 이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를 두고 저울질 했었다. 당초 불출마 쪽에 무게가 실렸다고 한다. 당권‧대권 분리 규정에 따라 중도하차해야 하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당 안팎의 출마 요구, 차기 도전을 위한 세 구축 등의 이유로 출사표를 던졌다. 이 대표 측근 인사는 이렇게 얘기했다.
“NY(이낙연)에게 전당대회 결과는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어차피 1위는 확실했다. 다만, 7개월간의 대표 기간이 대권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따져본 것이었다. 출마를 결심했을 때만 하더라도 여권 분위기는 그야말로 파죽지세였다. 집권당 대표로서 ‘기본’만 하더라도 플러스가 될 것으로 봤다. 문 대통령이 당 대표를 거쳐 대권을 거머쥔 케이스도 염두에 뒀다. 그런데 상황이 급격히 악화됐다. 당 대표로서의 메리트는커녕 여차하면 지지율만 갉아먹게 생겼다. 무조건 성과를 내야 하는 처지인데, 그마저도 쉽지 않아 보인다는 걱정이 있다.”
문재인 정부 후반기 집권당을 이끌 ‘이낙연호’가 예전의 당청관계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읽힌다. 이낙연 대표가 국무총리 출신 여당 대표가 아닌, 차기주자로서의 스탠스를 가져갈 경우 당청 사이엔 긴장감이 조성될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 들어 초재선 의원 중심으로 ‘더 이상 청와대 거수기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확산되는 것도 이러한 관측에 무게를 더한다.
이낙연 대표는 대권주자로서 문재인 대통령과 각을 세우면서도 한편으론 친문 진영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문 대통령이 ‘제4차 전국대의원대회’에서 영상으로 인사말을 하는 모습. 사진=더불어민주당 제공
앞서의 이 대표 측근은 “선택을 해야 할 시기다. 대통령과 공동운명체가 되느냐, 아니면 ‘마이 웨이’를 가느냐다”면서 “국민들이 NY 정치 스타일에 대해 다소 식상해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특히 최근 이재명 지사와 비교되면서 더욱 그런 것 같다. 이 대표 측에서도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채비를 하고 있다. 당 대표로서 청와대에 끌려 다니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문재인을 넘어야 살 수 있다는 주장들이 내부에서 높은 것은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집권당 유력 주자가 자기 정치를 하게 되면 현직 대통령 힘은 빠질 수밖에 없다. 여권 권력의 무게추도 ‘미래권력’으로 급격히 쏠린다. 대통령 레임덕은 내부에서부터 시작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친문 진영에선 우려감이 나온다. 한 친문 의원은 “당원들이 왜 압도적인 표로 이 대표를 밀어줬겠느냐. 문 대통령을 도와 개혁 입법을 완성하라는 뜻”이라면서 “지금은 차기 행보가 아니라 당청이 힘을 하나로 모을 때”라고 했다. 이 대표가 문 대통령과 각을 세울 경우 좌시하지 않을 것이란 발언으로 해석된다.
친문계의 이러한 기류는 이 대표에게 딜레마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문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통해 제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데엔 고개를 끄덕이지만, 여권 주류이자 최대 세력인 친문 진영 도움 없이 대권에 도전하긴 힘들어 보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도 당내 기반이 부족한 이 대표가 친문계와 등을 돌리면서까지 자기 정치에 나설 수 있을까에 대해선 회의감이 높은 상태다.
이에 대해 이 대표 측 또 다른 인사는 “지지율 싸움이다. 이 대표 지지율이 1위를 달리자 비문 친문 할 것 없이 사람이 모여들었다. 영원한 계파는 없는 법”이라면서 “친문도 차기 주자 지지를 놓고 분화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실제 여권 내에서는 친문 인사들이 벌써부터 이낙연 이재명 ‘빅2’에 줄을 서고 있는 듯한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이와 함께 정치권에서는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도 이 후보 스탠스를 가를 중요 변수로 꼽는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