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이청용 선발, 서울 기성용 교체로 뛰어 “이번이 아니면 또 언제…” 경기 후 기념사진 촬영 눈길
경기 전 그라운드에서 마주친 이청용(오른쪽)과 기성용은 벤치에 앉아 대화를 하기도 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국내로 돌아온 두 스타
2009년 7월 19일 이청용은 FC 서울 소속으로 강원 FC 경기를 마지막으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로 떠났다. 한 팀에서 K리그 무대를 주름잡던 기성용도 오래지 않아 유럽으로 진출했다. 기성용은 1년 6개월 뒤인 2009시즌을 마치고 스코틀랜드 셀틱 유니폼을 입었다.
이후 두 사람은 각각 볼튼 원더러스, 셀틱 소속으로 2010 남아공 월드컵에 동반 출전했고 이청용은 2골, 기성용은 2도움을 기록하며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을 달성했다. 10여 년 동안 대표팀의 주축 선수로, 축구 본고장 유럽의 한가운데서 활약했다.
2019-2020시즌, 변화가 감지됐다. 이청용은 분데스리가2 보훔에서 활약 중이었지만 계약 만료를 앞두고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기성용은 뉴캐슬 유나이티드서 주전 경쟁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쌍용’으로 불리던 한국 축구를 상징하는 두 선수가 국내 무대로 돌아올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돌아오겠다’는 말을 해왔기에 더욱 이목이 쏠렸다.
하지만 돌아온 선수는 이청용뿐이었다. 기성용은 전 소속팀 FC 서울과 협상이 이뤄지지 못했다. 이청용도 복귀 팀으로 친정팀 서울이 아닌 울산 현대를 선택했다. 이에 일부 팬들은 서울 구단에 대한 지탄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이들 모두 서울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했고 해외에서도 팀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쌍용 중 이청용만 홀로 국내 무대에서 뛰기 시작했다. 여전한 기량을 보이는 이청용에게 찬사가 쏟아졌다. 기성용은 가장 절친한 친구의 행보를 곧 뒤따랐다. 서울과 극적인 협상 끝에 11년 만에 팀에 돌아온 것이다.
지난 7월 22일 기성용은 첫 공식석상에서 서울 유니폼을 입고 입단 소감을 밝혔다. 코로나19 여파 등으로 오랜 기간 경기를 뛰지 않은 탓에 경기에 바로 나설 몸 상태는 아니라고 밝혔다. 한 달가량 지난 지난 8월 30일. 이날은 울산과 서울의 경기가 예정된 날이었다. 다시 말해 이청용과 기성용의 만남이 성사될 수 있는 날이었다. 서울과 수원, 울산과 포항 등 별다른 라이벌 의식이 없는 서울과 울산의 경기에 ‘쌍용 더비’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이청용은 울산 입단 이후 연일 화려한 경기력을 뽐내고 있다. 서울전에서도 그는 선제골로 팀 승리에 기여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4060일 만의 재회
경기를 앞두고 분위기는 더욱 고조됐다. 리그 전반기 서울전에서 부상으로 빠졌던 이청용은 이번만큼은 출전에 무리가 없는 상황이었다.
기성용은 꾸준히 몸 상태를 끌어 올리고 있었다. 서울은 공식 경기 외 연습경기도 치르며 기성용 몸만들기에 노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지난 30일 울산전을 앞두고 기성용은 복귀 후 최초로 원정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경기 전 몸을 풀러 양 팀 선수들이 운동장에 나선 순간, 이청용과 기성용의 재회가 성사됐다. 이들은 한참 서로 마주보고 대화를 나눴다. 이날 경기에 이청용은 선발, 기성용은 교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선발로 나선 이청용은 출전하지 못한 전반기 서울전을 떠올리며 한풀이라도 하듯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오른쪽 측면에 포진했지만 실제 플레이는 공격 전 지역을 가리지 않고 공격을 이끌었다. 수비 시에는 페널티 박스 부근까지 내려와 넓은 활동 폭을 보였다. 그는 이날 승부를 결정짓는 선제 결승골까지 기록하며 신바람을 냈다. 전반 18분 코너킥에서 혼전상황 끝에 이청용에게 공이 튀었고 이를 이청용이 침착하게 골로 성공시켰다.
벤치에서 또 다른 절친 박주영과 대화를 나누던 기성용은 하프타임에서야 다시 운동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박주영 고요한 김진야 등 다른 교체 자원과 함께 패스게임으로 몸을 풀었다. 함께 몸을 풀던 선수들이 라커룸으로 향한 시점에도 고요한과 따로 남아 킥 감각을 조율했다. 전 국가대표 주장다운 예리한 킥이 둘 사이를 오갔다.
이어진 후반 초반부터 기성용은 사이드라인에서 워밍업을 하며 경기에 나설 준비를 했다. 후반 13분께는 김호영 서울 감독대행이 기성용을 벤치 앞으로 따로 불러 2분가량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마침내 기성용은 후반 20분 정현철을 대신해 경기장을 밟았다. 2009년 11월 이후 10년 9개월 만이었다.
지난 3월 이후 처음으로 실전에 나선 기성용은 ‘몸 상태가 온전치 않다’는 우려가 무색하게 남다른 기량을 선보였다. 한창 좋을 때의 폼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우월한 키핑력과 시야, 패스로 팀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사령탑 김호영 감독대행이 “보셨다시피 퀄리티가 다른 선수”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럼에도 벌어진 경기를 뒤집는 것은 힘들었다. 서울은 두 베테랑 기성용과 고요한을 모두 투입했지만 리그 1위팀 울산에 0-3으로 완패했다.
기성용은 부상 등으로 공백이 길었음에도 여전한 경기력을 선보였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또 언제 만날지 모른다”
전후반 90분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린 이후 이색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양 팀 선수가 인사를 나눈 이후 일부 선수들이 함께 기념사진을 남긴 것이다.
그 주인공은 서울의 고요한 박주영 기성용, 울산의 고명진 이청용이었다. 이들은 2000년대 중후반 서울에서 한솥밥을 먹던 선수들이다. 특히 2008년 서울의 준우승에 이들 모두 크고 작은 힘을 보탰다. 비록 챔피언 결정전에서 석패로 준우승에 그쳤지만 정규리그 승점은 1위와 동률이었다. 젊은 선수들을 주축으로 한 서울의 경기력은 찬사를 받기에 충분했다. 당시 활약했던 5명이 나란히 서서 사진을 남기는 모습은 마치 ‘동창회’를 연상케 했다.
이들은 한 팀에서 활약하다 고요한을 제외하고 해외 무대로 뿔뿔이 흩어진 바 있다. 박주영은 프랑스, 이청용은 잉글랜드, 기성용은 스코틀랜드, 고명진은 카타르로 떠났다. 2015년 박주영이 친정팀 서울로 복귀한 데 이어 이청용 기성용 고명진이 이번 시즌 일제히 K리그로 돌아와 이들이 한 경기에서 만났다.
경기 후 기자회견에 나선 이청용은 “그들이 나와 가장 친한 선수들”이라고 소개했다. 고명진과 함께 먼저 서울 선수들에게 사진 촬영을 제안했다고도 밝혔다. 이어 “어린 시절 정말 축구를 재밌게 함께 했다. 나에게는 굉장히 특별한 사람들이다. 이번이 아니라면 또 언제 이렇게 한 자리에 모일지 모른다”고 말했다.
과거 서울에서 함께 뛰던 선수들은 경기 후 서로 다른 유니폼을 입은 채 함께 사진을 남기는 모습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화제를 남긴 이청용과 기성용의 재회는 이번 시즌 내 다시 이뤄질지 알 수 없다. 시즌 초반부터 꾸준히 선두경쟁을 벌이고 있는 울산과 달리 서울은 중하위권을 오가고 있다. 서울이 6위 이내에 들어야만 파이널 라운드에서 울산과 다시 맞붙는 상황이 연출된다.
다만 ‘쌍용 더비’가 올 시즌으로 마무리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이번 시즌 K리그로 돌아오며 이청용은 3년, 기성용은 3년 6개월의 계약기간에 서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10여 년 전 K리그를 뜨겁게 달궜던 어린 유망주들이 이제는 베테랑으로서 앞으로 어떤 스토리를 써내려갈지 팬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고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