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 탓 신규 프로그램 론칭 부담 속 ‘여은파’ ‘운동뚱’ 등 파생 작품 인기…방송사 측 “가성비 굿”
유튜브를 기반으로 한 쇼트 폼(Short Form) 예능이 대세로 자리매김하고, 단순한 재미를 넘어 하나의 세계관을 형성해가는 콘텐츠를 선호하는 분위기와 맞물린 현상이라 볼 수 있다.
MBC 간판 예능인 ‘나 혼자 산다’의 여성 회원인 박나래와 한혜진, 화사 등은 ‘여자들의 은밀한 파티-여은파’(여은파)로 뭉쳤다. ‘여은파’는 표현 수위 역시 높였다. ‘매운맛’ 버전이 이를 의미한다. 사진=‘여자들의 은밀한 파티-여은파’ 방송 화면 캡처
#여은파·운동뚱·이식당을 아시나요?
MBC 간판 예능인 ‘나 혼자 산다’의 여성 회원인 박나래와 한혜진, 화사 등은 ‘여자들의 은밀한 파티-여은파’(여은파)로 뭉쳤다. 이들은 각각 조지나, 사만다, 마리아라는 부(副) 캐릭터로 등장한다. 이들이 등장하는 쇼트 폼 ‘여은파’의 회당 조회수는 높게는 500만 뷰가 넘고, 누적 조회수는 2000만 뷰에 육박한다.
‘여은파’는 표현 수위 역시 높였다. ‘매운맛’ 버전이 이를 의미한다. TV에서는 심의규정 상 다룰 수 없는 다소 민감한 일상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화끈한 입담도 과시한다. 이러한 차별화를 통해 ‘나 혼자 산다’의 팬들을 ‘여은파’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먹방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케이블채널 코미디TV의 ‘맛있는 녀석들’은 요즘 ‘시켜서 한다! 오늘부터 운동뚱’(운동뚱)으로 더 유명하다. 이 코너는 먹는 것을 즐기는 멤버들이 더 건강하게 마음껏 먹기 위해 운동을 해야 한다는 취지로 접근한다. 그런데 홍일점인 개그우먼 김민경의 빼어난 운동신경에 출연진뿐 아니라 대중 역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김민경은 의외의 운동실력과 유연성 등을 앞세워 필라테스, 종합격투기 등을 섭렵했다. 김민경이 참여하는 ‘운동뚱’의 편당 조회수는 300만 뷰 안팎이다. ‘운동뚱’의 인기에 힘입어 ‘맛있는 녀석들’의 공식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100만 명을 돌파했다. 스핀오프 예능이 오리지널 프로그램까지 견인하는 모양새다.
먹방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케이블채널 코미디TV의 ‘맛있는 녀석들’은 요즘 ‘시켜서 한다! 오늘부터 운동뚱’(운동뚱)으로 더 유명하다. 김민경은 의외의 운동실력과 유연성 등을 앞세워 필라테스, 종합격투기 등을 섭렵했다. 사진=‘시켜서 한다! 오늘부터 운동뚱’ 방송 화면 캡처
대한민국 방송가에 스핀오프 예능을 정착시킨 선구자는 나영석 PD라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히트작인 tvN ‘삼시세끼’와 ‘신서유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전파하고 있다. ‘삼시세끼 : 아이슬란드로 간 세끼’, 강호동의 ‘라끼남’(라면 끼리는 남자), 젝스키스 합숙 예능 ‘삼시세네끼’, 위너 민호와 블락비 피오의 패션예능 ‘마포멋쟁이’를 비롯해 ‘윤식당’은 ‘강식당’을 거쳐 요즘은 ‘나홀로 이식당’으로 배턴을 이어줬다.
JTBC의 인기 예능인 ‘뭉쳐야 찬다’와 ‘아는 형님’도 스핀오프 행렬에 동참했다. ‘감독님이 보고 계셔-오싹한 과외’와 ‘아는 형님 방과후 활동’ 등을 선보인 것. 오리지널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이 그대로 참여하면서 대중이 관심을 보일 만한 포인트를 적재적소에 넣는 터라 스핀오프 예능은 후발 주자임에도 쇼트 폼 콘텐츠로서 빠르게 자리잡아가는 모양새다.
#왜 스핀오프 예능인가
스핀오프 예능의 인기는 일종의 유행일까. 한 지상파 예능국 PD는 이에 대해 “하나의 흐름이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지상파, 케이블채널, 종합편성채널 등 기성 매체들의 영향력 약화와 맞물려 있다.
TV로 콘텐츠를 즐기던 시절, 이들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방송사 플랫폼이 없으면 대중에게 콘텐츠를 소개할 수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다. 스마트폰이 보급화되고 이를 통해 즐기는 쇼트 폼 콘텐츠가 각광을 받으며 러닝타임 1시간이 넘는 프로그램을 만들던 TV 기반 채널들의 힘이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존 채널들이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 SNS에 맞춘 콘텐츠 제작으로 방향을 선회하긴 어렵다. 여전히 TV와 롱 폼 콘텐츠에 익숙한 중장년층들이 TV 시청률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의 입맛에 맞추는 동시에 스마트폰 세대를 붙잡기 위해 인기 예능에서 파생된 이야기를 다룬 쇼트 폼 콘텐츠로서 스핀오프 예능이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제작비를 아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기성 채널들은 영향력 약화에 코로나19로 인한 광고 시장 위축까지 겹치며 신규 프로그램 론칭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게다가 새로운 프로그램이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오리지널 프로그램의 인기에 기댄 스핀오프 예능은 가성비가 아주 높다. 게다가 오리지널 프로그램과 연결고리를 만들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또 다른 방송 관계자는 “새 프로그램을 정착시키고 대중에게 알리기까지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반면 스핀오프 예능은 그 자체로 화제를 모을 수 있고 관련 기사도 쏟아진다. 대중에게 익숙하기에 홍보가 쉽다는 의미”라며 “결국 스핀오프 예능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것은 기성 플랫폼들이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이라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