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기능 약화된 대형 언론 대신 굵직한 정치계 특종 뻥뻥…구로카와 의혹 다룬 잡지 완판, 대장염 재발 보도로 아베 퇴진 쐐기
주간문춘의 신타니 마나부 편집국장은 “과거 일본에서 주간지는 미디어계 최하층의 존재였다”고 말한다. 예컨대 “피라미드 정점은 NHK, 그 다음이 메이저 신문, TV 순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입장은 역전됐다. TV도 신문도 주간문춘의 특종을 인용 보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구로카와 고검장의 내기 마작을 보도한 주간문춘 5월 28일호 지면. 구로카와는 잡지 발매와 동시에 사임했다.
최근 몇 년간 일본 사회를 뒤흔든, 정치 스캔들 대부분은 주간지들의 특종이었다. “대형 언론은 뒤늦게 뛰어들어 소동을 확대시키는 역할만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양상은 2012년 아베 신조가 총리로 재등극하면서 짙어졌다. 이른바 ‘아베 1강’ 체제가 장기화되면서부터다.
일간지 중 판매부수가 가장 많은 요미우리신문과 산케이신문 등은 아베 정권의 특정비밀보호법, 집단자위권 행사 허용, 안보법제 등 우파적 방침을 옹호하기 바빴다. 언론의 최대 사명이라 할 수 있는 ‘권력 감시’를 다하지 못한 셈이다. 설상가상 반대편 진영의 아사히신문은 잇따른 오보 파문으로 급속히 힘을 잃어갔다.
일본 특유의 ‘기자클럽(출입기자단) 제도’도 기자들의 손발을 묶었다. 공공기관이 하는 기자회견이나 브리핑 등에 ‘기자클럽에 소속된 회원들만 참가’할 수 있도록 제한한 제도로, ‘정계 실력자나 관공서를 공격하면 정보 제공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여기는 보도 관계자가 적지 않았다.
물론 “정부기관의 공식적인 발표를 빠르게 전달한다”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언론의 비판 기능을 크게 약화시킨 것만은 분명하다. 기자들은 권력자들이 제공한 틀 안에서만 세상을 바라보고, 정권의 어두운 면을 밝히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게 됐다.
이와 달리, 주간문춘은 정치계의 굵직한 비리 의혹을 캐내는 데 집중했다. ‘특종이야말로 인쇄매체가 살아남는 길’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지난해와 올해의 활약은 눈부셨다. 주간문춘이 터트린 특종을 보면, 가히 ‘아베 정권의 킬러’라 부를 만하다. TV에서도 야당 의원들이 주간문춘 기사를 인용하며 아베 내각을 공격하는 모습이 곧잘 전파를 탔다.
주간문춘이 특종 보도한 구로카와 고검장의 내기 마작 뉴스를 인용 보도한 NHK 뉴스.
일례로 2019년 10월 스가와라 잇슈 경제산업장관과 가와이 가쓰유키 법무장관이 연달아 사표를 제출했다.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는 의혹을 주간문춘이 제기하자, 사의를 표명한 것이다. 아베 총리가 새 내각을 꾸려 출범한 지 한 달 보름 만의 일이었다. 각료의 연이은 사임으로 총리의 인선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아베 총리를 궁지로 몰아놓은 ‘모리토모학원 스캔들(아베 총리 지인 사학이 국유지를 헐값에 사들인 의혹)’도 빼놓을 수 없다. 관련 스캔들은 2017년 아사히신문이 최초로 보도했으나, 구로카와 히로무 도쿄고등검찰청장이 수완을 발휘해 흐지부지 마무리되던 참이었다.
하지만, 올해 3월 26일호 주간문춘은 ‘스캔들에 관련된 전 재무성 직원의 유서’를 전격 공개했다. “국유지 헐값 매각 서류 조작에 상사의 강요가 있었다”는 유서 내용이 공개되자 열도는 또 한 번 들썩였다. 스캔들에서 잘 도망쳤다고 생각하던 아베 총리 부부는 어쩌면 간담이 서늘해졌을 터다.
더욱이 5월 21일 발매한 주간문춘(5월 28일호)에서는 ‘아베 총리의 수호신’이라 불리던 구로카와 히로무 도쿄고등검찰청장의 의혹을 다뤘다. “구로카와 고검장이 코로나19로 인한 자숙기간에 산케이신문 기자 자택에서 내기 마작을 했다”는 보도였다. 구로카와는 잡지 발매와 동시에 즉시 사임한 것으로 전해진다.
무리하게 법 해석을 변경하면서까지 구로카와를 검찰총장으로 기용하려던 아베 총리에겐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가 됐다. 주간문춘에 의하면 “구로카와의 ‘내기 마작’을 폭로한 잡지는 52만 1000부가 완판될 정도로 관심이 뜨거웠다”고 한다.
주간문춘의 특종은 아베 정권의 실망스러운 코로나19 대책과 맞물려 파급력이 더욱 세졌다. 급기야 아베 정권의 지지율은 30%대로 급락했고, 정권의 존속마저 위협받는 사태로 치달았다. 아시히신문이 5월 말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아베 내각 지지율은 29%로 2012년 12월 아베 정권 출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당시 교도통신은 지지율을 두고 “코로나19 대책과 내기 마작을 했다가 사직한 구로카와 히로무 전 도쿄고검장 문제에 대한 엄격한 평가가 영향을 미쳤다”고 풀이했다.
올해 3월 주간문춘은 모리토모학원 스캔들에 관련된 전 재무상 직원의 유서를 공개했다.
흔히 “언론사의 특종은 제보에서 나온다”고들 한다. 지난 8월 초 “아베 총리가 피를 토했다”고 보도한 주간지 ‘플래시’ 또한 제보를 기사화 했다. 이 기사가 아베 총리의 건강이상설에 불을 지폈지만, 총리 측은 시원하게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다 주간문춘이 결정적으로 “아베 신조 13년 전 악몽재현, 궤양성 대장염이 재발됐다”는 기사를 터트리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결국 아베 총리는 8월 28일 기자회견을 통해 “지병인 궤양성 대장염이 재발했다”며 “국정에 지장을 주는 것을 피하기 위해 총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다만 후임이 결정될 때까지는 총리직 및 집권 자민당 총재직은 유지한다.
주간지에 특종 제보가 이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신문이나 TV는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잘 다루지 않는다. 주간지의 강점은 소문이 시작되는 단계부터 추궁해 나간다는 것이다. 특히 주간문춘의 경우 ‘특종에 강하다’는 브랜드 파워를 구축해 와서 온라인 제보의 양이 비약적으로 높은 편이다. ‘상대가 아무리 강해도 굴하지 않고 싸워준다’는 신뢰가 쌓였기 때문에 정보가 더욱 모이고, 이것이 다시 특종을 낳는 선순환 구조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신타니 마나부 주간문춘 편집국장은 “불편한 진실을 파헤치고 있는 탓에 사방이 적들뿐”이라고 웃음 짓는다. 그럼에도 “강한 상대에게 맞서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고, 그것이 비즈니스로 성립한다면 한층 더 좋은 일”이라고 말한다. 주간문춘의 장점에 대해 신타니 편집국장은 “저격 대상이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는 점을 꼽았다.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쓸 말이 있으면 가차없이 쓴다. 그는 “한쪽에 치우치면 독자 절반을 포기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요즘은 알아서 강자들의 눈치를 보고, 뜻을 살핀다. 비록 돈키호테일지언정 어떤 상대에게도 ‘팩트’로 무장한 채 끝까지 맞서는 미디어가 하나쯤 있어도 괜찮지 않나. 고작 주간지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계속 맞서 싸우면 언젠간 주변 풍경이 달라진다고 믿는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