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들 ‘신한금투·삼성증권’에 집단 소송…‘LP의 괴리율 고의적 방치’가 쟁점
원유 ETN(상장지수증권)에 투자해 대규모 손실을 본 개인투자자들이 신한금융투자와 삼성증권을 상대로 집단소송에 나선다. 지난 3월 코스피지수가 1500 아래로 떨어진 날의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사진=박정훈 기자
지난 3월 원유 공급 과잉과 코로나19 여파로 국제 유가가 급락하자 유가 반등을 점친 투자자들이 원유 ETN에 몰렸다. 투자자들이 몰리자 ETN의 괴리율(지표가치와 시장가격 간 차이)이 치솟았다. ETN의 시장가격이 기초자산인 원유의 실제 가치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높게 거래된 것. 그러나 4월 20일 국제유가가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괴리율이 최대 2000%(실제 가치의 20배)까지 급등했으나 ETN 가격은 폭락하며 시장이 혼란에 빠졌다.
#원유 ETN ‘개미무덤’ 된 까닭
ETN은 기초지수의 변동과 수익률이 연동되도록 한 지수 추적형 상품으로, 증권회사가 발행하고 거래소에 상장돼 거래되는 파생결합증권이다. 복잡한 상품 구조와 달리, ETN 거래를 위한 증권계좌만 개설하면 주식처럼 손쉽게 거래가 가능하다.
투자자들이 문제를 제기한 상품은 신한금융투자와 삼성증권이 발행한 ‘레버리지 WTI 원유 선물 ETN’이다. 원유 중 하나인 WTI(서부텍사스유)의 원유 선물을 기초자산으로, 레버리지를 활용해 선물 가격변동의 2배를 추종하는 상품이다. 최근 WTI 기준 원유 가격이 배럴당 30달러 후반에서 40달러 초반으로 안정되고 괴리율도 축소됐지만 투자자들의 손실 만회는 요원하다. 두 상품은 ‘동전주(9월 3일 종가 기준 신한 315원, 삼성 390원)’ 신세로 추락한 상황이다.
ETN 발행사인 증권사는 LP 역할을 겸한다. 거래소에서 발행사로 하여금 추가 발행이나 환매를 받아주거나 장중에 양방향 호가를 제공해 유동성을 공급하도록 하고 있다. 증권사는 발행사로서 ETN을 상장하고 상품 관련 주요 공시정보와 투자 참고지표를 제공하며, 동시에 LP로서 ETN의 실질가치인 지표가치와 시장가격이 괴리되지 않도록 호가를 제출해야 한다. 가격이 지나치게 고평가 되었을 경우 재고를 팔아서 가격을 낮추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삼성증권은 상품투자설명서를 통해 “발행회사는 본 증권의 유동성공급자로서 자사를 지정해 직접 투자자에게 유동성을 제공할 예정”이라며 “각 증권의 상장일로부터 최종거래일까지 호가스프레드비율이 신고스프레드비율인 2.0% 이내가 유지되도록 본 증권에 대한 매도호가나 매수호가를 제출할 것”이라고 명시했다.
신한금융투자 또한 투자설명서에 “본 증권 발행인은 유동성공급자를 발행인인 신한금융투자로 지정해 유동성을 제공할 예정”이라며 “최대 호가스프레드비율(2.0%)을 초과하는 경우, 5분 이내에 매도/매수호가별로 매매수량단위의 100배 이상으로 유동성공급호가를 제출할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원유 ETN 사태의 경우 원유 가격 폭락으로 폭발적으로 수요가 몰리면서 발행사들이 보유 물량 부족 등의 이유로 괴리율을 잡지 못했다. 괴리율 급증에 따라 거래정지와 재개가 반복됐고, 이 과정에서 손절매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면서 투자자들의 손실이 커졌다. 거래소는 괴리율이 30% 이상 벌어지면 3거래일간 거래를 정지하도록 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증권사가 LP 의무를 해태하며 원유 ETN 괴리율이 폭증했고, 시장이 이미 과열된 상태에서 LP가 물량을 매도하며 수익을 창출했다고 지적한다. 지난 3월 서울 시내의 한 주유소 모습. 사진=고성준 기자
#법리다툼 주요 쟁점 ‘괴리율 고의적 방치’
투자자들은 “3월 중순부터 원유선물시장의 붕괴가 예상됐음에도 불구하고 증권사들이 투자자 손실을 방치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가 지난 4월 3일부터 15일까지 세 차례에 걸쳐 마이너스 유가 가능성을 경고했으나 안일한 대처로 LP 보유 물량을 확보하지 않은 탓에 괴리율 폭증을 막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집단소송에 참여중인 한 투자자는 “시카고상품거래소가 4월 초~중순 마이너스 유가 가능성을 경고하는 공문을 증권사들에게 보냈고, 국내 ETN 상품보다 더 널리 알려진 UVW(미국 ETN 원유선물상품)는 3월 23일 상장폐지를 결정했다”며 “증권사들은 충분히 원유선물 시장에서의 문제 발생을 예상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다른 투자자는 “지난 4월 초부터 괴리율이 폭증했지만 당시 증권사들의 LP 보유 수량이 하나도 없는 것을 확인했다”며 “이후 괴리율이 정점을 찍고 나서야 LP가 물량을 조절해 풀면서 높은 가격에 물량을 매도해 수익을 얻었지만, 정작 괴리율은 잡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증권사들이 의도적으로 괴리율이 벌어지는 것을 방치한 것 아니냐”고 강조했다.
소송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또한 이 부분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것으로 전해진다. 키코(KIKO) 사태에서 당시 피해기업을 대리하기도 했던 김성묵 법무법인 대륙아주 파트너 변호사는 “ETN사태가 발생했는데 결과적으로 개인투자자들만 손실을 봤고 증권사들은 이익을 얻었다는 것이 큰 그림”이라며 “증권사들의 LP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잘못이 있었는지 따져보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이와 관련해 법적다툼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 유가가 발생했던 당시 상황이 이례적인 탓이다. 거래소 또한 이 같은 상황을 참작해 2분기 LP 평가에서 ETN 괴리율을 크게 문제 삼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거래소는 지난 7월 31일 ETN LP 2분기 평가에서 신한금융투자와 삼성증권에 ‘우수’등급을 부여했다고 밝혔다.
한 자본시장 전문가는 “마이너스 유가는 시장에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인데다 해외 선물상품으로 연계된 경우 LP가 물량을 더 보유하고 싶어도 선물을 추가로 계약해야 하는 탓에 추가발행이 쉽지 않은 경우가 있다”며 “관리부실로 인해 LP 물량을 보유하지 못했던 경우가 아닌 이상 LP의 관리 책임을 묻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LP가 물량을 낼 수 있었음에도 내지 않았을 경우나 호가를 들여다보지만, LP가 물량을 낼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제재를 하는 것은 아니”라며 “LP 평가에서는 여러 항목을 보기 때문에 ETN 사태가 결정적으로 평가 결과를 좌지우지하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