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앞서가는 시간’ 지나면 특수본 띄울 가능성…검찰 수사 강조한 추 장관 거부권 행사 땐 새 갈등 확산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군 복무 특혜·청탁 의혹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나온 이 발언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지지하는 검찰 내에서 나온 게 아니다. 최근 윤석열 총장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던 더불어민주당 양향자 최고위원이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밝힌 얘기다. 야당에서 특검 수사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자, 기존 수사 주체였던 검찰로 충분하다면서 나온 반응이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상황이 바뀌니 이제 와서 검찰을 띄우는 것도 웃기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도 ‘고심’을 시작했다. 대검찰청은 “특임검사나 특별수사본부 설치 등 별도의 논의를 진행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긋고 있지만 특별수사본부 설치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사진=고성준 기자
윤석열 총장의 ‘대검’도 고심에 들어갔다. 현재 사건이 배당된 곳은 서울동부지검. 하지만 서울동부지검은 △8개월 동안 사건 지연 △일부 핵심 진술 조서 누락 △담당 검사 승진 등으로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윤 총장이 임명하는 검사를 본부장으로 삼는 ‘특별수사본부’ 가능성이 솔솔 거론되고 있다. 인사로 윤 총장의 ‘손발’을 모두 쳐냈던 추미애 장관을 향한 ‘반격’이 시작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9월 8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추 장관 아들 의혹에 대한 철저한 사실관계 확인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그는 특별검사나 특임검사를 통한 수사, 혹은 추미애 장관의 사임을 거론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추 장관 행태는 기가 막힌다. 아들 서 아무개 씨 사건은 추 장관 이야기대로 간단한 사건인데 왜 서울동부지검은 8개월째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느냐”고 비판하며 기존 검찰 수사팀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원희룡 제주지사 역시 “윤석열 검찰총장 찍어내기 작전을 낱낱이 파헤쳐야 한다”며 국정조사와 특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서울동부지검은 추미애 장관 아들 서 씨의 군 동료나 상관으로부터 받은 일부 진술을 조서에 모두 포함시키지 않았거나, 추 장관에게 유리한 내용만 언론에 알려 비판을 받은 상황이다. 또 올해 8월 김관정 동부지검장이 부임한 이후, 사건 담당 부장이었던 양인철 형사2부장이 사건 처리 방향을 놓고 김 지검장과 이견을 보였다는 얘기도 나왔다. 양인철 형사2부장은 8월 말 검찰 중간간부 인사에서 좌천에 해당하는 인권감독관으로 인사가 난 반면, 실제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은 영전했다. 그러자 오히려 여당에서는 윤석열 검찰총장을 비롯해 수사팀을 옹호하는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총대를 메고 나선 것은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그는 추미애 장관 아들과 둘러싼 여러 의혹에 대해 “(야당에서) 특임검사나 특검을 요청하는 것은 지금 검찰 수사 능력을 우롱하고 있는 것”이라며 “검찰이 수사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도리”라고 답했다.
법조계에서는 ‘아이러니’라는 반응이 나온다.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는 “기존 서울동부지검 수사팀이 정권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게 읽히니까 최대한 유리하게 갈 수 있는 현 수사 흐름으로 가자고 하는 게 아니겠느냐”고 비판했다.
의혹이 확대되자 서울동부지검은 앞서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들을 다시 파견 받아 수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추미애 장관도 한껏 몸을 낮췄다. 추미애 장관은 9월 7일 “지금까지 보고받지 않았고, 앞으로도 보고받지 않겠다”며 “검찰에서 신속하고 철저히 수사해 실체 관계를 규명해줄 것을 국회 답변 등을 통해 수차례 표명했다”고 언론에 알렸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9월 7일 “지금까지 보고받지 않았고, 앞으로도 보고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국회예결위의 전체회의에 참석한 추 장관 모습. 사진=이종현 기자
의혹은 계속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추미애 장관이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시절 딸의 비자 관련 내용도 외교부에 문의했다는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시민단체의 고발 등이 이뤄지고 있다. 9일 시민단체 법치주의바로세우기행동연대는 “아들 서 씨의 통역병 선발 청탁, 자대배치 청탁, 딸의 비자발급 청탁 등과 관련해 추 장관을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히고 실행에 옮겼다. 또 추 장관 아들의 자대를 의정부에서 용산으로 이전 배치해 달라고 청탁했다는 의혹도 검찰에 수사의뢰했다.
이에 추 장관의 아들 서 씨 측은 9일 부대 배치 청탁이 있었다고 언급한 당시 주한미군 한국군지원단장과 해당 발언의 녹취 내용을 보도한 SBS 등을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지방경찰청에 고발했다.
윤석열 검찰총장도 ‘고심’을 시작했다. 아직 대검찰청은 언론 등에 “특임검사나 특별수사본부 설치 등 별도의 논의를 진행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긋고 있다. 그럼에도 특별수사본부 설치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특임검사도 야권에서 필요성을 거론하고 있지만, 특임검사의 경우 비리 등 검사의 범죄에 관한 사건에만 예외적으로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의 승인 아래 특정 검사를 임명해 수사·공소제기 등의 권한을 부여하는 제도이기에 가능성이 낮다는 게 중론이다.
재경지역의 한 검사는 “서울동부지검의 기존 수사 방식이 다소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곧바로 수사 주체를 바꾸는 것 역시 윤석열 총장에게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논란이 더 많이 제기돼 대규모 수사 확충이 불가피할 때 특임검사보다는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하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
특별수사본부와 같은 큰 규모를 구성하는 게 내부에서 제기될 수 있는 ‘일선 검사를 못 믿느냐’는 비판을 잠재우기도 더 좋다는 추론이다. 수사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검찰총장을 비롯한 상급자의 지휘나 감독을 받지 않고 최종 수사 결과만 검찰총장에 보고하는 방식의 특별수사본부를 추진할 경우 정치권 등에서 반대하기 힘들다는 점도 거론되는 이유다.
하지만 변수는 추미애 장관의 ‘거부권’이다. 추미애 장관은 이미 “보고를 받지 않겠다”고 대외적으로 선을 그으며 서울동부지검을 수사 주체로 잠정 선택했는데, 윤석열 총장이 자신이 신임하는 특수통 검사가 주체가 된 특별수사본부를 제시했을 때 거부하고 나서면 갈등이 새롭게 확산될 여지가 있다.
앞선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는 “검사들은 지금 같은 상황을 ‘언론이 앞서가는 시간’이라고 표현한다”며 “지금은 언론이 여러 의혹들을 제기하고 또 여론이 만들어지면서 청와대와 국회, 또 검찰 내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윤석열 총장이 대외적으로는 정중동하며 고심하고 있지만, 의혹들이 모두 제기되고 국민적인 분위기가 감지가 됐을 때 언론을 통한 특별수사본부 제안 등 추미애 장관을 향한 반격을 시작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