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야당 협치 필요한 상황 속 ‘밀어붙이기’ 쉽지 않아…윤 총장, 여당 강행 땐 반발 가능성
하지만 7월 말부터 분위기가 급변했다. 7월 15일 출범 예정일을 넘기면서 공수처가 ‘기약 없는 조직’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9월 1일 정기국회가 열렸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을 이번 정기국회 기간(100일) 통과시킬 계획이다. 개정안을 통해 야당 협조 없이도 공수처를 밀어붙인다는 전략이다.
반면 야당은 ‘시간끌기’ 전략을 펼치고 있어 공수처 설치까지 난항이 예상된다. 특히 코로나19 재확산이 변수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매일 200~300여 명의 확진자가 나오며 좀처럼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공수처법 개정안을 마냥 밀어붙이기는 쉽지 않다. 일각에선 잇따른 추미애 법무부 장관 발 견제에도 윤석열 검찰총장이 정중동하는 것은 여당의 공수처 강행에 대한 반발을 위함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여당 간사인 백혜련 의원은 “개정안 발의를 이제 검토한다”고 밝혔다. 8월 24일 백혜련 간사를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 법사위원들이 공수처장 후보자추천위원회 위원추천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일단 문은 열었는데…
9월 1일 정기국회가 열리자마자 여당은 공수처 설치에 불을 붙였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여당 간사인 백혜련 의원은 몇몇 언론에 “개정안 발의를 이제 검토한다”며 “김태년 원내대표도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입장으로 알고 있다. 처리는 모르겠지만 발의할 법안에 대한 논의의 시작”이라고 밝혔다.
당초 공수처 출범일이었던 7월 15일을 50여 일 넘긴 가운데, 야당이 지속적으로 협조하지 않자 결국 ‘강행’ 가능성을 시사했다. 실제 국민의힘(옛 미래통합당)은 박병석 국회의장이 제시한 ‘정기국회 개회식 전’까지 후보추천위원을 내지 않았다. 여당 내에서는 “야당이 협조하지 않더라도 강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작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 여당은 개정안을 통해 ‘야당 몫 후보추천위원을 내지 않는 방식으로 보이콧을 할 수 있도록 한 부분을 손보는 것’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공수처법으로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과 법원행정처장,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등 당연직 3명과 여야 교섭단체가 각각 추천하는 위원 2명 등 모두 7명으로 구성된다. 민주당은 이미 자당 몫의 추천위원을 냈지만 국민의힘은 공수처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심판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우선이라며 이를 거부하고 있다.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공수처법 개정안은 여당과 야당 각 2명인 추천위원을 국회 전체 4명으로 바꿔 야당의 무력화 전략을 무산시키는 게 골자다. 또 공수처장 후보 추천 요건을 위원 7명 가운데 6명 동의에서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바꿨다.
#코로나19 재확산이 큰 변수
코로나19 재확산은 큰 변수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신임 대표는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9월 1일 만난 자리에서, 4차 추가경정(추경)예산안을 통한 2차 재난지원금 ‘선별 지급’에 공감대를 마련하는 데 집중했다. 정기국회 기간 공수처 관련 여야 격돌이 불가피하지만, 여당이 야당의 ‘협치’를 이끌어 내야 하는 우선순위가 코로나19 관련 2차 긴급재난지원금과 추경 예산안 등이라는 분석이다.
국민의힘은 시간을 끌며 기다리겠다는 전략이다. 헌법재판소에 제기한 공수처법 헌법소원심판 청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자당 몫의 추천위원을 추천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면서 청와대 특별감찰관이 공석인 점을 문제 삼아, 역공을 펼치고 있다. 실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8월 30일 페이스북에 올린 이낙연 민주당 대표에게 보내는 글에서 “야당에게 공수처장 비토권을 부여한, 시행도 해보지 않은 공수처법을 고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성숙한 의회민주주의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억지이고 힘자랑”이라고 문제 삼았다.
어느 정도 예상됐던 흐름이기도 하다. 공수처법에서 야당 몫의 후보를 2명 둔 것은 ‘협치’를 염두에 둔 모델이기 때문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여당이 총선 완승 후 그 기세를 몰아 부동산 3법을 강행했다가 지지율이 급락하는 등 견제를 받지 않았느냐”며 “코로나19가 잠잠해지지 않는 상황에서 여당 홀로 공수처를 밀어붙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신임 대표는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9월 1일 만난 자리에서 4차 추가경정예산안을 통한 2차 재난지원금 ‘선별 지급’에 공감대를 마련하는 데 집중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총장은 명분 쌓기 중?
검찰주의자 윤석열 총장의 반발 가능성도 열려 있다. 윤석열 총장은 그동안 추미애 장관을 필두로 이뤄진, 여당 발 견제에도 침묵하고 있던 상황이다. 공수처 법안 통과 과정에서도 “국회의 뜻을 존중한다”면서도, 일부 조항에 대해 ‘독소조항’이라며 격노했던 윤 총장은 현재까지 공수처에 대해서는 ‘입장 없음’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내부에서는 윤석열 총장이 공수처 등 검찰 관련 이슈에 대해 마지막 한 방을 꺼내들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추미애 장관 발 윤석열 총장 견제에도 일절 대응하지 않는 것은 이를 위한 ‘수싸움’이라는 관측이다.
윤석열 총장과 가까운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윤석열 총장은 명분을 쌓고 가는 것을 중시하는데 현재 윤 총장이 각종 정치권의 공세에도 가만히 있는 것은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만큼은 관철시키기 위함일 것”이라며 “국회가 돌아가는 흐름을 지켜보다가 국회에서 추진하는 개정안 등에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면 과감하게 한 방을 던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올해 넘기면 ‘선거’ 이슈에 묻힐 듯
여당에서는 이번 정기국회 기간 공수처 신설을 우선순위로 놓고 추진 중이지만, 법조계에서는 연내 공수처 설치를 못할 경우 더욱 기약이 없어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내년 4월 7일로 예정된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있기 때문이다. 내년 1월 즈음부터는 여당과 야당 모두 시장 후보 추천 및 선거 운동으로 급격하게 쏠릴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월부터 시작되는 공천 절차를 예상하면 4월까지는 선거가 블랙홀처럼 모든 이슈를 빨아들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보궐선거에서 서울시와 부산시 모두 야당이 승리할 경우 여당이 공수처를 밀어붙일 힘은 사라질 것이라는 해석이다.
앞선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야당이 헌재를 핑계로 시간을 끄는 것도, 여당이 이번 정기국회 안에 공수처 신설을 강행하려는 것도 결국 내년부터 시작될 선거를 염두에 둔 것 아니겠느냐”며 “올해 안에 공수처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공수처 관련 흐름이 어떻게 바뀔지는 선거에 달렸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