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입지·가격 전략 엇나간 데다 시장 과열…2년 전부터 매각 추진했지만 인주자 못 찾아
오랜 기간 동안 저조한 실적을 이어온 치킨버거 전문 브랜드 ‘파파이스’와 관련해 국내 철수설이 불거지고 있다. 서울 신도림 테크노마트점에 위치한 파파이스 매장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사진=이종현 기자
파파이스는 1994년 서울 압구정 1호점으로 시작해 10년 만에 200호점까지 매장 수를 늘렸다. 국내에선 당시 유일했던 글로벌 치킨 전문 브랜드 KFC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규모였다. 특히 일반적으로 햄버거 하면 떠올리는 소고기 패티가 아닌 치킨버거를 주력 상품으로 내세우면서 시장 내에 탄탄한 입지를 다지기도 했다. 1990년대 말에는 롯데리아에 이은 국내 패스트푸드 지점 수 2위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세를 보였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 다른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의 공격적인 마케팅에 따른 출혈 경쟁과 웰빙 열풍에 힘입은 ‘슬로푸드’ 유행으로 성장이 둔화되더니 2007년부터는 서울 신촌 등 번화가에 자리 잡았던 다수의 지점들이 하나둘 폐점되기 시작했다. 배달보다 점포에서 직접 판매하는 방식으로 운영해 온 특성상 유력 지점들의 폐쇄는 곧 업체 전체의 경영 위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2010년대까지 이어진 적자로 파파이스는 결국 2018년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그러나 10여 년 지속된 파파이스의 저조한 실적과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발 시장 침체 등의 이유로 인수 후보를 찾는 데 난항을 겪으면서 별다른 소식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급기야 철수설까지 제기됐다. 한 파파이스 지점에서 음식을 주문한 고객에게 “파파이스 브랜드가 2020년 11월 한국에서 철수한다”는 내용이 담긴 메모지를 보낸 사실이 알려졌다. 이에 대해 파파이스를 운영하는 한국법인 TS푸드앤시스템은 “해당 가맹점이 계약 만료가 될 뿐 사업 철수는 아니다. 더 이상 확인해줄 수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느냐’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더욱이 파파이스의 국내 매장은 2007년 이후 꾸준히 줄면서 2020년 9월 현재 30개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서울의 경우는 9개 매장만 운영 중이다. 한때 200개 이상 지점을 거느리며 국내 2위 패스트푸드 브랜드 지위를 누렸던 것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을 정도다. 이처럼 지점이 대폭 축소된 브랜드를 두고 인수설보단 철수설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파파이스의 추락은 후발주자이자 실질적인 경쟁 브랜드인 ‘맘스터치’와 비교해 더욱 두드러진다. 맘스터치는 파파이스의 국내 모회사인 TS푸드앤시스템이 1997년 신설한 업체로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파파이스의 운영 노하우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초기에는 큰 성과를 보이지 못하면서 고사 위기에 놓이기도 했으나, 정현식 당시 TS푸드앤시스템 상무(전 해마로푸드서비스 회장)가 2004년 맘스터치를 인수해 독립시킨 뒤부터 큰 성장세를 보였다.
2014년 기준 610억 원 상당이던 해마로푸드서비스의 맘스터치 사업 부문 매출액이 5년 만인 2019년 기준 약 2500억 원으로 4배 상승하며 시장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2020년 현재 맘스터치의 국내 매장 수가 1225개로 확장된 것 역시 이 같은 성장세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한솥밥을 먹던 파파이스와 맘스터치의 희비가 엇갈린 요인으로 상권분석과 가격 설정 등 전략이 거론된다. 맘스터치의 전략은 뚜렷하다. 맘스터치 매장은 주로 학교 중심으로 출점해 저렴한 가격대를 유지하며 타게팅(Targeting)을 확실히 했다. 성인들이 소고기 패티 버거를 선호하는 것과 달리 비교적 어린 연령대의 소비자들은 치킨 패티를 선호하는 성향이 있다는 점을 바탕으로 한 것이기도 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반대로 파파이스는 메뉴와 입지 전략이 어긋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치킨버거를 주력 상품으로 내세웠음에도 어린 소비자층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에 지점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10~20대가 즐겨 찾는 주요 유흥지역의 대형 지점이 모두 폐점된 후 현재 전국 30개에서 운영하고 있는 매장은 대부분 역사 안이나 소비자 연령대가 높은 지역 쇼핑센터, 마트 등에 입점해 있다. 상권 전략이 주력 상품과 정반대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파파이스의 가격 전략 역시 최근 패스트푸드 시장의 가성비 전략과도 동떨어져 있다. 예컨대 파파이스의 대표 메뉴인 케이준통버거 세트는 8800원으로 경쟁사인 맘스터치의 싸이버거 세트메뉴 5800원과 비교해 다소 비싼 편이다.
신세계푸드의 ‘노브랜드 버거’가 부산 1호점인 ‘부산 대연점’을 열었다. 사진=신세계푸드 제공
다른 패스트푸드 브랜드와 비교해서도 마찬가지다. 2019년 출시된 신세계푸드의 ‘노브랜드 버거’의 ‘NBB시그니처 세트’ 가격은 5300원이다. 노브랜드 버거의 전신인 ‘버거플랜트’의 버거 가격보다 1000원 정도 더 저렴하게 출시되며 ‘가성비 버거’로 이름을 알렸다. 신세계푸드 한 관계자는 “당시 버거플랜트도 가성비로 유명했지만,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더욱 강력한 가성비가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범람하는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소비자들의 눈길을 받기 위한 출혈 경쟁이 극심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고가 전략을 고집한 파파이스는 소비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박주영 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 교수는 “매장 수가 30개 이하로 유지되려면 맥주를 함께 판매해 주류로 수익을 끌어올리지 않는 이상 어렵다. 파파이스 같은 곳은 매장 수가 200개 정도가 되지 않으면 규모 경제가 불가하다”며 “사업 모델을 구상할 때부터 잘못됐을 가능성이 있다. 공격적인 연구개발과 마케팅을 통해 소비자와 미국 본사에 영향력을 과시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프랜차이즈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당시 파파이스는 ‘글로벌 브랜드’로서 자부심을 갖고 국내에 상륙했는데 이런 태도 때문인지 국내에서 이뤄진 시장조사가 미흡했다”며 “처음 미국식 치킨버거가 들어왔을 땐 국내 소비자들이 호기심에 반응했지만 이후 수많은 브랜드가 쏟아지면서 관심에서 멀어졌다. 뒤늦게 연구개발에 뛰어들어봤자 이미 맘스터치에 밀린 상황인데 파격적인 변화를 이뤄내지 않는 이상 재도약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