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뿐 아니라 여권 차기 주자들도 반대 입장…당 대표 ‘첫 작품’ 무산되면 작지 않은 타격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 국난극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생각에 잠긴 이낙연 대표. 사진=국회사진취재단
여당과 정부는 코로나19 피해에 따른 2차 긴급재난지원금을 ‘취약계층을 위한 맞춤형 선별 지원’으로 가닥을 잡고 4차 추가경정예산안(추경) 처리를 추진 중이다. 이는 이낙연 대표가 8·29 민주당 전당대회 선거운동 기간 동안 “재난지원금을 꼭 필요한 국민에게 두텁게, 선별적으로 지원하겠다”며 일관되게 내세웠던 입장이다.
하지만 이후 민주당은 추가로 ‘전 국민 통신비 2만 원 지급’ 방안을 꺼내들었다. 만 13세 이상 전 국민을 대상으로 현재 보유 중인 이동통신 1인 1회선에 대해 9월 통신비 2만 원을 10월에 차감하는 방식으로 지원하는 정책이다. 약 9300억 원 예산 규모로 추정된다.
9월 6일 고위 당정청 협의회에서 4차 추경 세부항목에 통신비 지원 방안이 포함됐고, 민주당 지도부가 방법을 확정해 9월 9일 청와대 간담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에 제안해 정부가 수용했다. 이낙연 대표는 “액수가 크지 않더라도 코로나로 지친 국민들에게 4차 추경안에서 통신비를 지원해주는 것이 다소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일괄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도 “같은 생각”이라며 “코로나로 인해 다수 국민의 비대면 활동이 급증한 만큼 통신비는 구분 없이 일률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좋겠다”고 화답했다. 문 대통령은 이튿날 제8차 비상경제회의에서도 “작은 위로이자 정성”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번 추경에 전국민 통신비 2만 원 지급안을 포함시키면서 정치권 논쟁이 불거졌다. 국민의힘(옛 미래통합당)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취약계층을 위한 맞춤형 지원’이라는 4차 추경 취지에도 벗어나고, 대기업 통신사의 손실만 메워준다는 것이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9월 11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국민 혈세를 걷어서 1조 원에 가까운 돈을 의미 없이 쓰는 것”이라며 “제정신을 가지고 할 일이 아니다”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국민의힘은 이 예산을 ‘전국민 독감 백신 무료 접종’으로 돌리자고 주장했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 역시 9월 14일 국회에서 열린 상무위원회에서 “정부의 이번 방침에 대해 국민 10명 중 6명이 ‘잘못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께서 통신비 지급을 ‘작은 위로이자 정성’이라고 말씀하셨지만, 국민들은 선심성 낭비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며 “예산 9300억 원은 정부가 원래 계획했던 지원하는 취지를 살려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정리해고 칼바람을 맞고 있는 노동자들과 실업으로 내몰리는 시민들을 고려해 ‘긴급고용안정 자금’으로 확충할 것을 제안한다”고 했다.
범여권으로 분류되는 열린민주당도 이 정책에 대해 실효성이 없다며 반대하는 입장이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는 9월 16일 국회에서 열린 ‘4차 추경 정책 제안 기자회견’에서 “통신비 2만 원 지원은 철회하는 것이 좋겠다”며 “취약계층에게 두텁게 지원하자는 취지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보편적 지원 측면에서도 실질적 효과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의 돈을 갖고 정부가 선심 쓴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여권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9월 10일 KBS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영세 자영업자나 동네 골목의 매출을 늘려주는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며 “통신비는 직접 통신사로 들어가 버리니 승수효과가 없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앞서 이재명 지사는 이낙연 대표와 달리 줄기차게 ‘보편 복지’ 의견을 표해왔다.
김경수 경남도지사 역시 9월 12일 자신의 SNS를 통해 “통신비 2만 원 지급을 두고 말이 많다”며 “야당에서 반대하고, 국민들 일부에서도 비판적인 여론이 있다면 ‘통신비 부담 완화’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다른 대안도 함께 검토해보면 어떨까 싶다”고 운을 뗐다. 그 대안으로 “예산 9000억 원으로 전국에 무료 와이파이망 확대 사업에 투자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국민여론 역시 ‘전 국민 통신비 2만 원 지급’에 대해 부정적 평가가 더 높았다.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YTN ‘더 뉴스’ 의뢰로 9월 11일 조사한 결과 응답자 58.2%가 ‘잘못한 일’이라고 답했다. 반면 ‘잘한 일’은 37.8%, ‘잘 모르겠다’는 4.0%로 조사됐다(리얼미터의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여론조사업체 홈페이지 및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민주당은 전 국민 통신비 지원 방안에 대한 부정적 기류와 갑론을박에 곤혹스러운 모습이다. 실제 9월 13일 민주당이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긴급 소집하면서, ‘전국민 통신비 2만 원 지급’에 대한 재논의가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 자리에서 이 안건에 대해 따로 언급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야당이 계속 반대하면 추경안 통과에 차질을 빚어질 수 있어 민주당에서도 “여야 합의가 이뤄지면 수정할 수 있다”고 다소 완화된 입장을 보였다. 그럼에도 ‘전 국민 통신비 지급’ 방안을 철회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낙연 대표 리더십에 균열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낙연 대표가 당대표로서 제안한 ‘첫 작품’으로 청와대가 화답까지 했는데, 당이 먼저 철회하게 되면 ‘준비되지 않은 정책을 제안한 것이냐’는 비판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 당 안팎에선 이번 논쟁의 책임 소재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일각에서는 당초 방안을 김태년 원내대표, 한정애 정책위의장이 강하게 밀어붙였고 이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달만 한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이 당초 브리핑을 통해 “이 대표가 요청했다”고 발표한 만큼 이 대표가 직접 수습에 나서야 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민주당 원내지도부 한 관계자는 “자세한 내막은 고위급 회의에 참석한 당사자들만 알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에서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이낙연 대표(오른쪽)와 이재명 경기도지사. 7월 30일 수원시 경기도청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정치권에서는 이낙연 대표가 통신비 지원 방안을 꺼내든 것은 이재명 지사의 ‘보편 복지’ 주장에 대한 대응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2차 재난지원금 선별지급 결정에 대한 불만 여론을 의식해, ‘보편 복지’ 가치에 동떨어져 있다는 인식을 지우기 위한 포석이라는 것이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전 국민 통신비 지원은 이낙연 대표가 당대표로 내놓은 첫 번째 아이디어다. 하지만 이번 방안은 긴급성 재난성 성격도 맞지 않다. 오히려 환심을 사려 한다는 오해를 부르고 있다.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에게도 부정적 의견이 높다”며 “이럴 때는 정책을 철회하는 것이 역설적이지만 리더십 유지에 좋다. 철회하고 이 예산을 어떻게 쓸 것인지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 반대가 높은 정책을 강행하면 장기적으로 두고두고 리더십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일을 이낙연 대표는 당대표로서, 유력 대선주자로서 어떤 정책이 내놔 리더십을 구축할지 생각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