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병원 OECD 평균 73%인데 우리는 5% 불과…국민적 공감대 형성된 지금 정부가 비전 내놔야”
‘코로나19 정국’을 맞이하면서 공공병원(국공립병원)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주목받고 있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상임대표가 발간한 자료집 ‘공공보건의료공단 설립 필요성 및 효과’에 따르면 공공병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의료기관의 5% 정도다. 병상 수로도 전체 8~9% 수준에 불과한 공공병원이 코로나 환자의 80%를 수용했다고 알려졌다.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민간병원은 한발 물러서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반증이기도 하다. 일요신문은 ‘공공보건의료 체계’ 전문가들에게 우리나라 공공보건의료 체계의 현실과 나아갈 방향에 관해 물었다. |
[일요신문] “전체 의료기관의 5%에 불과한 공공병원이 80%의 코로나19 환자를 수용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탄탄한 공공보건의료 시스템이 코로나19 방역을 성공으로 이끈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부족한 병상 수를 넘어설 만큼 환자 수가 나오지 않았을 뿐이다. 밤낮 방역에 힘쓴 공무원과 군말 없이 숨어 지냈던 국민들이 만들어낸 결과다.”
지난 9월 16일 인천의료원에서 만난 조승연 인천의료원장은 우리나라 공공의료 체계는 처참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조승연 원장은 “코로나19 환자가 유럽이나 미국처럼 늘어났다면 우리 공공의료 체계는 견디지 못했을 것”이라며 “어쩌면 코로나19는 우리나라 공공의료 체계를 뜯어고치라며 하늘에서 준 절호의 기회이자 마지막 경고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9월 16일 인천의료원에서 만난 조승연 인천의료원장은 우리나라 공공의료 체계는 처참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조 원장은 “코로나19 환자가 유럽이나 미국처럼 늘어났다면 우리 공공의료 체계는 견디지 못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최준필 기자
이어 조 원장은 “코로나19와 같은 국가적 위기 상황에 병상을 비우고 코로나 환자를 받을 순 있는 건 공공병원밖에 없다. 수익을 우선하는 민간병원에선 가능하지 않다”면서도 “대부분 공공병원은 코로나 이후 지원금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까 걱정하는 상황이다. 코로나 전쟁에 올인해도 모자랄 판에 직원들 월급을 줄 수 있을까 가슴 졸여야 하는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조승연 원장은 공공병원에서만 14년을 몸담은 보기 드문 의사이자 ‘공공의료 전문가’로 꼽힌다. 가천대 길병원에서 외과의로 시작한 조 원장은 2006년 당시 주변 만류에도 불구하고 50병상밖에 되지 않는 인천적십자병원장으로 옮겼다. 돈 걱정 없이 진료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던 탓이다. 이후 인천의료원장, 초대 성남의료원장을 역임했고 다시 인천의료원으로 옮겨 병원장을 맡고 있다. 동시에 현재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 회장이다.
―공공의료라는 말이 생소하다.
“그게 맞는 말이다. 일반 국민도 모르고, 정치인들도 모르고, 심지어 의사들도 잘 모른다. 사전적 정의는 국민 생활에 필요한 필수 의료 서비스를 보편적으로, 지역이나 계층이나 분야에 관계없이 평등하게 제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강원도 산간지역에서 아기를 낳으려면 두 시간씩 나오다가 사고가 나는 일은 없게 하는 것, 가난한 사람이 오든 부자가 오든 똑같은 병에 걸렸다면 똑같은 치료를 해주겠다는 거다.”
―공공병원이 코로나19 방역에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를 받는다.
“공공병원이 코로나19 환자 대부분을 받은 건 맞다. 하지만 잘 정비된 우리나라 공공의료 시스템이 작동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방역은 밤낮없이 확진자와 접촉자를 추려낸 공무원과 집에 있으라는 말을 군소리 없이 따른 국민들이 다 한 거다.”
전체 의료기관 가운데 공공병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OECE 평균 73% 정도다. 우리나라는 5%에 그친다. 사진=최준필 기자
―왜 그런가.
“우리나라 공공병원은 전체 의료기관의 5%를 차지한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꼴찌다. 이만저만 꼴찌가 아니다. OECD 평균은 73%다. 유럽은 100%에 가깝다. 후진적이라고 평가 받는 미국이나 일본도 30% 정도다. 미국과 일본과 비교해도 6분의 1 수준이다. 환자가 적게 나와서 버틸 수 있었던 거다. 한 예로 대구 신천지 사태를 보자. 대구는 공공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편에 속한다. 당시 확진자가 3주 동안 5700명이 나왔다. 현재 유럽과 비교해 봐도 훨씬 적은 수인데도, 당시 난리가 났다. 입원을 대기하다가 사망한 사람도 나왔다.”
―우리나라엔 공공병원이 왜 이렇게 적나.
“애초에 일제강점기 중심의 보건의료 시스템을 받아들였다. 대만이 우리나라와 비슷한 경우다. 점점 재원이 사적 의료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병원은 돈 버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영리 목적으로 병원을 운영하다 보면 과잉 진료를 항상 하게 돼 있다. 또 교통사고 처치 등 필수 의료 서비스는 찬밥이 될 수밖에 없다.”
―공공병원을 운영하면서 어려운 점은.
“공공병원의 법적 지위는 민간병원과 같다. 비영리 의료법인이다. 기본적으로 자기가 벌어서 자기가 쓰는 독립 경영제다. 손실이 나면 정부나 지자체가 보전해주는 구조다. 하지만 정부나 지자체는 손실을 죄악시하는 경향이 있다. 국민도 그렇다. 손실이 나면 자구 노력을 하라고 요구한다. 돈을 벌라는 말이다. 공공병원을 지어 놓고 수지를 맞추라는 건 정말 엉터리 개념이다. 감기로 공공병원을 찾은 국민에게 영양제 끼워 팔기식의 장사를 하라는 건 말이 안 된다. 이런저런 이유로 지원이 제때 나오지 않고, 그럼 직원들에게 월급을 못 줄까 걱정한다. 지금도 똑같다. 정부가 다급하니까 지원을 많이 하지만 병원장들은 지원이 언제 어떻게 끊길지 모른다는 불안을 갖고 있다. 어떻게 하면 지원금을 좀 더 탈 수 있을까 궁리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쟁에 나가서 전투에 이길 생각은 하지 않고 총알을 어떻게 하면 더 챙길 수 있을까 걱정하는 것과 같다.”
―공공병원 자립도는 얼마나 되나.
“우리나라 공공병원의 경우 보통 90%를 벌어서 쓰고 10%를 지원받는다. 이 정도 수치를 간단히 해석하면 공공병원도 돈 벌기에 혈안이 돼 있다는 말이다. 적자가 나면 문을 닫으라고 하니 그럴 수밖에 없는 거다. 진주의료원이 문 닫은 이유도 적자 때문 아닌가.”
―공공병원이 많아야 하는 이유는.
조승연 원장은 현 정부가 말뿐이 아닌 정책적으로 디테일을 내놔야 한다고 강력히 촉구했다. 사진=최준필 기자
―공공의료의 부작용도 있지 않나. 대표적으로 영국에선 감기약도 제때 처방 못 받는다는데.
“극단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80세 노인이 다리가 부러지면 영국에선 3개월 정도 기다려야 치료를 받는다. 그런 나라가 어디 있나 싶다. 하지만 50세 이하인 사람이 암에 걸리면 2주 내로 모든 치료를 받을 수 있다. 공공의료란 그런 거다. 선진국에선 이미 국민적 합의에 의해서 재원을 어디에 어떻게 투입할지 우선순위를 정해둔 거다. 젊은 층을 빨리 치료하는 게 더 사회에 득이 된다고 본 거다. 무엇이 좋다 나쁘다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공공의료는 정부가 개입해 한정된 재정의 효율을 따져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현재 정부의 공공의료 정책을 평가한다면.
“답답하다. 노무현 정부 때 4조 3000억 원을 들여 공공병원을 30%까지 늘리겠다고 계획했지만 탄핵 국면에 들어서면서 해보지도 못하고 접었다. 지금 정부는 전국을 70여 곳 진료권으로 나누고 ‘책임병원’을 짓겠다고 공략했다. 이 말 대로라면 인천은 네 군데 정도 필요하다. 한 군데가 인천의료원이니까 나머지 세 군데가 필요한데, 어디에 지을지도, 예산 계획도 없다. 말로만 70여 군데 한다고 하면 뭐 하느냐, 이제 디테일을 보여줄 때다. 추경을 해서 전 국민 통신비 지원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1조 원이면 예닐곱 군데 공공병원을 만들 수 있다. 이를 보건복지부나 관련 부처에 계속 건의하지만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덧붙일 말이 있다면.
“지금 하늘이 ‘이래도 정신 못 차려?’라며 코로나 위기를 준 것과 같다. 지금까진 다행히 환자 수가 적어서 버틸 수 있었다. 정부가 비전을 내놔야 한다. 큰 틀에선 의사 수를 확충하는 게 맞다. 정부가 의사들과 소통해 오해를 풀고 소통해 의사 수를 늘리고, 공공의료 확충과 관련한 예산안을 꼼꼼하게 정해야 한다. 공공병원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지금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시점이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