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경찰·소방처럼 공공의료도 전략적 자원…인력 수급? 희생만 강요하면 의사들 아무도 안와”
‘코로나19 정국’을 맞이하면서 공공병원(국공립병원)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주목받고 있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상임대표가 발간한 자료집 ‘공공보건의료공단 설립 필요성 및 효과’에 따르면 공공병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의료기관의 5% 정도다. 병상 수로도 전체 8~9% 수준에 불과한 공공병원이 코로나 환자 80%를 수용했다고 알려졌다.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민간병원은 한발 물러서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반증이기도 하다. 일요신문은 ‘공공보건의료 체계’ 전문가들에게 우리나라 공공보건의료 체계의 현실과 나아갈 방향에 관해 물었다. |
[일요신문] “쉽게 말해 공공병원이 적으면 사망자가 늘어난다. 국가는 군대, 경찰, 소방 등 재난에 대비해 전략적 자원을 운영한다. 정부가 이제 공공의료 또한 전략적 자원으로 운영해야 한다.”
지난 9월 17일 김창보 서울시 공공보건의료재단 대표는 “공공병원 역할은 재난이 터지면 민관이 힘을 합치기 전까지 시간을 벌어주는 거다. 전쟁이 나면 전방에서 시간을 끄는 GOP(일반전초) 같은 셈”이라며 “이번 사랑제일교회 사태 때 아슬아슬했다. 만약 그때보다 2배의 유행이 왔을 경우를 생각한다면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어 벌써 걱정”이라고 전했다.
지난 9월 17일 김창보 서울시 공공보건의료재단 대표는 “이번 사랑제일교회 사태 때 아슬아슬했다. 이번의 두 배의 유행이 왔을 때를 생각한다면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어 벌써 걱정”이라고 전했다. 사진=최준필 기자
이어 김 대표는 “GOP 투입된 병사가 수준이 낮으면 시간을 끌 수 없다. 공공병원도 대학병원급의 번듯한 종합병원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대부분 코로나19 환자를 수용하는 병원은 환자가 기존에 갖고 있던 기저질환을 함께 진료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 공공병원 수준은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김창보 대표는 서울시 시민건강국장으로 재직하며 2015년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 서울시 방역을 이끈 인물이다. 보건복지부 장관 정책보좌관을 지냈고, 신한대학교 병원행정과 교수를 역임해 공공보건의료 및 건강정책 분야 전문가로 평가된다. 2020년 2월 서울시 공공보건의료재단 대표로 임명됐다. 의료재단은 서울시 공공보건의료 정책의 싱크탱크와 서울시 산하 시립병원이나 보건소 컨설팅 지원 등의 역할을 한다.
―재난에 가까운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공공병원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는데.
“공공의료가 정책적으로 필요하다는 논의가 시작된 건 얼마 안 됐다. 2000년부터 2010년까진 신자유주의 분위기가 강했다. 민간의료 중심으로 모든 게 이뤄졌다. 공공의료는 민간의료가 수익이 남지 않아 시장에 공급하지 않는 것, 부족한 의료 서비스를 메워주는 정도로 여겨졌다. 보조적 수단이었다. 공공병원 가운데 요양병원, 정신병원 등이 많은 이유다. 지금은 완전히 상황이 바뀌었다.”
―공공의료에 관한 인식이 어떻게 바뀌었나.
“2015년 메르스를 경험하고, 이번에 코로나19를 경험하면서 공공병원이 이런 특수 병원 형태로 있어선 대응이 안 된다는 걸 느끼게 됐다. 예를 들어 메르스 때 임신부가 감염된 사례가 있었다. 임신부라는 점에 맞게 치료를 해야 하는데, 공공병원은 그저 감염병만 진료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번에도 비슷한 일들이 많다. 기저 질환을 갖고 있는데, 코로나에 감염된 경우 두 질병을 모두 치료하기 위해선 공공병원이 종합병원으로 존재해야 대응이 가능하다. 그에 맞는 진료 역량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김창보 대표는 “지금까지 이야기했던 K-방역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감염 경로를 알 수 없는 환자가 20%를 넘어섰다”며 “감염 규모가 몇 배로 커지면 K-방역으로 감당이 가능하냐고 봤을 때 또 다른 버전의 K-방역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최준필 기자
―민간병원 협조가 어렵나.
“민간병원이 위기 대응을 잘해주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수익을 내야 운영되는 민간병원 시스템에서 감염병 환자를 많이 꺼린다. 메르스 때 삼성의료원에서 대량의 환자가 발생해 삼성의료원이 고생한 전례가 있다. 이를 본보기로 빅5 병원이 코로나 환자를 두려워하고 꺼려하는 경향이 기저에 있다. 대외 명분으론 공공병원이 코로나 환자를 봐주니까 다른 환자는 우리가 보겠다는 건데, 속으로는 솔직히 보고 싶지 않아 한다.”
―사랑제일교회발 코로나 사태를 이겨냈는데.
“이번에도 위험할 뻔했다. 아슬아슬했다. 알다시피 코로나 환자 80%가 경증이다. 생활치료센터로 분산시키면서 겨우 중증환자 병상을 마련했다. 물론 그사이에 병상이 부족하고 사망자도 계속해서 느는 문제도 분명 있었다. 지금 규모의 2배에 해당하는 유행이 오면 어떻게 될까에 대한 걱정이 많다. 중앙방역대책본부가 민간병원과 긴밀히 논의해 내년 3월까지 중증병상 600개를 만들겠다고 하는데, 그게 말처럼 잘 될까 우려스럽다. 민간병원은 그때 사정에 따라 움직일 텐데, 아무리 돈으로 유인책을 쓴다고 해도 쉽지 않을 거다. 사랑제일교회발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확실하게 느낀 점이 있다. 지금까지 이야기했던 K 방역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대표적으로 감염 경로를 알 수 없는 환자가 20% 수준으로 점점 늘어나고 있다. 치료제나 백신이 없는 상태에서 겨울로 접어들고 있다. 감염 규모가 몇 배로 커지면 K 방역으로 감당이 가능하냐고 봤을 때 또 다른 버전의 K 방역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생활치료센터가 병상 부담을 줄여줄 수 있지 않나.
“생활치료센터는 새로 만들어진 개념이다. 그러니까 사실 의료기관이 아닌 곳에 환자를 넣고 치료하는 최초의 경험이었다. 이게 굉장히 큰 도움이 됐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게 코로나19에만 적용이 되는 거다. 특수한 상황에 맞아떨어진 거다. 메르스 같은 치명률이 높은 감염이 돌면 생활치료센터에서 당연히 감당할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어느 상황에서든 보편적으로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거다.”
―코로나 재유행 혹은 또 다른 위기에 대비해 무엇을 해야 하나.
김창보 대표는 5년, 10년이 걸리더라도 공공병원을 늘리기 위한 노력을 지금이라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최준필 기자
―공공의료 인력 수급이 어렵다고 안다.
“일단 의사 절대 수가 부족하다. 지금 갈등이 있지만 장기적으론 일단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 1000명 당 의사 수가 2.3명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인 3.4명에 못 미친다. 외래진료 건수는 16.6건으로 OECD 평균인 7.1건의 2배 이상이다. 의사를 공공의료 인력으로 끌어오려면 당연히 공공의료 인력 대우도 달리해야 한다. 지금 있는 공공병원에서 일하는 의사들은 적은 급여, 불투명한 전망, 열악한 근무 여건 속에 놓여있다. 이런 상황을 민간의 의사들이 다 보고 있다. 희생을 강요하면 아무도 안 온다. 또 하나는 개인이 의사가 되기까지 정부가 뭘 해줬냐는 거다. 의대를 가기까지 들어가는 학원비, 학습량을 오롯이 개인이 감당한다. 비싼 등록금 내고 의대에 들어가 의사 면허를 따기까지도 마찬가지다. 개업을 할 때도 그렇다. 모두 개인이 감당한다. 이제 와서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하면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정부가 뭘 해야 한다고 보나.
“돈도 좋지만 정부가 공공의료 인력이 존중받고 존경받을 수 있는 사회로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공공의료 인력에게 표창을 주거나, 혜택을 주는 등 위상을 높여주고 인정받게 할 필요가 있다. 성적 1등인 사람이 의사가 되는 사회가 아닌, 우리 사회에 어떤 의사가 필요한지 초·중·고 교육에서부터 관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의 학생들이 공익성을 몸소 느끼고 고민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올해 7월 정부가 발표한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에도 ‘공공의료 강화’ 예산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내년 예산에도 공공의료 인프라 강화를 위한 예산은 거의 안 들어가 있다. 예산안 심사 때 보건복지부나 각 지자체가 먼저 나서서 관련 논의를 해야 한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