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인 은행장 연임 중론이지만 2+1년 임기 채웠고 다른 계열사 CEO 대거 임기 만료 변수
허인 국민은행장의 임기 만료는 오는 11월 20일이다. 최근 KB금융그룹은 차기 은행장을 선임하기 위한 절차에 돌입했다. 이르면 10월 중순께 새 은행장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관측된다.
KB금융그룹이 차기 국민은행장 선임 절차에 돌입했다. 사진=이종현 기자
KB금융그룹은 통상 임기 만료를 한 달가량 앞두고 관련 절차를 진행해왔지만 올해는 예년보다 그 시기를 앞당겼다. 윤종규 회장과 허인 은행장의 임기가 동시에 만료되기 때문이다. KB금융그룹은 지주 주주총회 결의 사항으로 은행장을 지주 비상임이사로 선임해 이사회에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올해 회장 선임은 11월 20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확정된다.
KB금융그룹 계열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대추위)가 국민은행장 후보를 추천하면, 사외이사 전원이 참여하는 은행장후보추천위원회가 자격을 검증하고 심사한다. 이후 은행 주주총회에서 선임 여부를 결정한다. 구조상 그룹 회장과 사외이사 3명 등으로 구성된 대추위의 권한이 가장 강력하다. 이 때문에 사실상 3기 체제에 돌입한 윤종규 회장의 의중에 따라 갈릴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선 허 행장이 연임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허 행장은 그동안 윤 회장의 ‘복심’으로 손발을 맞춰왔다. KB금융그룹이 윤 회장 체제로 돌입한 이후 국민은행을 이끌어 온 유일한 인물로 꼽힌다. 뚜렷한 성과를 내기도 했다. 지난해 그룹 전체 실적이 신한금융에 밀렸지만, 국민은행만 신한은행 순이익을 앞지르면서 ‘리딩뱅크’ 타이틀을 수성했다. 신한, 하나, 우리 등 경쟁 은행들이 모두 겪은 ‘사모펀드 리스크’도 겪지 않았다. 이 사태와 관련해 금융감독원이 공개적으로 관리가 잘 됐다며 유일하게 칭찬한 곳이 국민은행이다.
윤종규 회장의 3연임을 결정한 회장후보추천위원회의 ‘안정’ 기조도 허 행장 연임에 힘을 싣는다. 앞서 선우석호 회추위원장은 윤 회장 연임 결정에 대해 “6년간 조직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며 KB를 리딩금융그룹으로 자리매김시켰다”며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속 성장을 이어 가려면 윤 회장이 조직을 3년 더 이끌어야 한다는 데 위원들이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코로나19 사태와 경쟁 심화로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운 만큼, 국민은행 최고경영자를 바꿔 변화를 주기보다는 유지하면서 조직의 안정에 방점을 찍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다른 후보로는 이동철 KB국민카드 사장과 양종희 KB손해보험 사장, 박정림 KB증권 대표 등이 있다. 먼저 이동철 KB국민카드 사장은 윤 회장과 함께 차기 KB금융그룹 회장 후보군에 이름을 올린 인물이다. KB국민은행 전략기획부, KB금융지주 경영관리부, KB생명보험 경영관리 부사장 등을 지내는 등, 은행과 비은행 부문을 두루 거쳤다. 2018년 KB국민카드 사장 취임 이후 매년 실적을 끌어 올리고 있다.
양종희 KB손보 사장은 허 행장과 함께 윤 회장이 신임하는 임원이다. 2017년 회장 선임 당시 윤 회장, 김옥찬 당시 KB금융지주 사장과 함께 숏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KB손보 실적은 지난해부터 꾸준히 감소 중이지만 KB금융 보험 부문장으로 푸르덴셜생명 인수를 이끌었다는 점은 강점이다. 윤 회장을 제외하고 KB금융그룹 내에서 최고경영자를 가장 오래 재임하고 있다는 점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박정림 KB증권 대표는 다크호스다. 국내 금융권에서 보기 드문 여성 최고경영자다. 권선주 전 IBK기업은행장 이후 여성 은행장은 한 명도 나오지 않고 있어 유리천장을 깨는 상징성을 가질 수 있다. 박 대표는 2017년부터 KB증권 WM(자산관리)부문장, KB국민은행 WM그룹 부행장, KB금융지주 WM총괄 부사장 등을 지냈고, 2019년부터 KB증권 대표와 KB금융 자본시장부문장을 겸직하고 있다. 그룹 내 ‘WM통’으로 꼽히는데, 윤종규 회장이 제시한 경영목표 가운데 하나가 WM 강화다.
허인 KB국민은행장. 오는 11월 20일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사진=KB국민은행
올해 국민은행 외에도 다른 계열사 최고경영자들의 임기가 대거 만료된다는 점은 또 다른 변수다. 계열사 2곳을 제외한 총 11곳 최고경영자 13명(각자대표 포함) 임기가 끝난다. 이 가운데 9명은 2+1년 임기를 채웠다.
국민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계열사 CEO 인사는 12월에 단행된다. 따라서 이번 차기 은행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계열사 최고경영자들의 연쇄이동 또는 대대적인 세대교체 등 KB금융그룹 임원 전체 인사폭이 결정된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한번에 계열사 최고경영자들이 대거 교체될 경우 윤종규 회장 3기 체제가 흔들릴 수 있다. 그렇다고 자리를 그대로 유지만 하면 인사적체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된다”며 “허 행장의 연임이든 새 은행장 선임이든 결정이 쉽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회장 후계자 양성 문제와도 연결된다. KB금융그룹은 윤 회장 취임 전까지 외풍에 시달려 왔던 만큼 내부 후계자 양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KB금융에는 부회장이나 사장이 없고 각 부문을 총괄하는 부사장만 있다. 은행장이 차차기 회장으로 유력한 자리로 통하는 이유다. 그러나 이번에 허 행장이 연임한다 하더라도 1년씩 연임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만큼, 3년 뒤 회장 선임 시점까지 자리를 유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때문에 최근 KB금융그룹은 부회장 및 사장직 신설 검토 작업에 착수했다. 허 행장은 물론, 양종희 사장과 이동철 사장 등 핵심 최고경영자들이 모두 임기 만료를 앞둔 상황인 만큼 그룹 내 2인자를 은행장이 아닌 부회장 또는 사장으로 만들어 안정적으로 후계자 양성에 나서겠다는 복안이다. 금융권에선 허 행장과 양 사장, 이 사장이 신설된 자리를 두고 삼파전을 벌일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이 경우 은행장 교체는 불가피하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