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 뽑아야 마음 안정 ‘발모벽’ 멈출 수 없는 강박장애…심리적 기아 ‘절도광’ 환자 생리적 기아 ‘섭식장애’ 동반
쓰치야 미쓰코는 습관적으로 머리카락을 뽑는, 이른바 ‘발모벽’을 앓고 있다. 사진=쓰치야 미쓰코 페이스북
쓰치야 미쓰코(여·40)는 머리카락이 한 올도 없는 대머리다. 습관적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뽑는, 이른바 ‘발모벽’을 앓고 있다. 미쓰코가 머리카락을 뽑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생 시절이었다. “상한 머리카락을 다듬는 언니를 따라한 것이 계기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머리카락을 뽑을 때 통증보다는 묘한 만족감이 들었던 것.
이후 미쓰코는 충동적으로 머리카락을 뜯는 버릇이 생겼다. 퍼뜩 정신을 차려보면 책상 위로 머리카락이 수북이 쌓여 있곤 했다. 빠진 머리카락은 다시 자라나지만, 억지로 뽑다보면 영구 탈모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미쓰코는 “버릇을 없애려고 부단히도 노력했다”고 밝혔다. 손에 목장갑을 끼고 양손을 테이프로 감아보기까지 했다. 하지만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이러한 증상에 대해, 정신과 전문의 다치카와 히데키는 “발모벽은 학교생활이나 친구관계, 부모의 이혼 등 주로 정서적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가령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무언가 통제할 수 있는 걸 찾으면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 발모벽의 경우 스스로 털을 뽑는 행위를 통해 위안을 삼으려는 것이다. 실제로 미쓰코 또한 “부모님의 별거로 불안감이 커졌던 무렵 발모벽이 나타났다”고 전했다.
미쓰코가 고등학교에 올라가자 발모벽은 더욱 심해져 맞춤가발을 쓰지 않으면 안됐다. 가격이 비싼 데다 소모품이라 2년에 한 번씩 교체해야 했는데, 지금까지 가발에 사용한 금액만도 수천만 원에 이른다. 정신과에서 항우울제 같은 처방도 받아봤지만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렇게 20여 년. 미쓰코는 남모를 아픔을 겪어오던 중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된다.
남편은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빠진 모습도 개의치 않아 했고, 온전히 받아들여줬다. 미쓰코는 “이러한 관계를 통해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다”고 했다. 이후 삭발을 감행한 미쓰코는 그동안 꽁꽁 숨겨왔던 비밀인 ‘발모벽’을 자신의 블로그에 솔직하게 털어놨다. 가발을 벗고 대머리를 드러낸 용기에 많은 사람들의 응원이 이어졌고, 이는 곧 미쓰코가 모델로서 활동하는 계기가 됐다.
현재 미쓰코는 다양한 이유로 머리카락이 빠진 여성들을 지원하는 단체 ASPJ(Alopecia Style Project Japan)를 운영 중이다. 이제는 의존증과의 싸움에서 탈출했으리라 생각되지만, 미쓰코는 “머리카락을 뽑는 버릇은 여전하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다치카와 전문의는 “강박장애화된 발모벽”이라 진단했다. 바보 같고 의미 없다는 걸 본인 스스로 잘 알고 있으나 행동을 멈출 수가 없다. 이것이 강박장애의 특징이다. 덧붙여 다치카와 전문의는 “노력해도 강박장애가 잘 고쳐지지 않는 건 뇌에 원인이 있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는 “뇌의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의 움직임에 이상이 생겨 강박증상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치료를 위해서는 세로토닌 조절제를 쓰는 등 증상에 맞는 전문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상당한 확률로 증상을 완화시키는 것도 가능하단다. 이 같은 설명을 듣자, 미쓰코는 “병이 낫는다는 미래를 그릴 수 있으므로 희망이 생겼다”며 웃어보였다.
스릴과 쾌감 때문에 절도를 그만두지 못하는 R 씨. 사진=후지TV ‘신소우사카가미’
#물건을 훔치며 만족감을 얻는 ‘절도광’
즉흥적으로 물건을 훔치고 쾌감을 얻는 절도광(병적도벽)은 충동조절장애 중 하나다. 후지TV는 그런 도벽으로 인해 4차례나 교도소에 들어간 R 씨(여·46)의 사연을 전했다. R 씨는 “충동을 억제할 수 없어 항상 폭탄을 껴안고 살아가는 기분”이라고 말한다. 그는 일주일에 한 번씩 군마현에 위치한 아카기코겐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고 있다. 일본 내 유명한 중독전문치료기관이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병적도벽에 빠지는 사람들은 대체로 어린 시절 무언가에 좌절했다든지, 이별이나 상실감, 사랑받지 못한 경험 등등 심리적 요인이 크다. “이런 경험들이 성인이 됐을 때 스트레스와 결합하면 병적도벽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얘기다.
R 씨의 경우 아버지로부터 받은 학대가 그를 극한으로 몰고 갔다. 중학교 2학년 땐 폭주족에 들어가 절도, 미성년자 음주·흡연 같은 비행을 반복했다. 그러다 17세에 덜컥 미혼모가 되면서 심경에 변화가 생겼다.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겠다’고 다짐하며 비행에서 발을 빼게 된 것이다.
하지만 25세 때 ‘전신홍반루푸스(SLE)’가 발병하면서 다시 물건을 훔치기 시작했다. 전신홍반루푸스란 여러 장기에 염증을 일으키는 질환으로, 관절통뿐만 아니라 피부발진, 발열, 전신 나른함 등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R 씨는 “병을 고치기 위해 매일 약을 복용했는데, 약의 부작용으로 인해 식욕을 억제할 수 없게 됐다”고 전했다.
비정상적으로 음식을 섭취한 후 구토하는 섭식장애까지 더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R 씨는 “쇼핑을 하다 문득 ‘돈을 내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고 한다. 지갑에 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원 몰래 1000원짜리 빵을 훔치고 말았다. 엄청난 쾌감이 밀려들었다.
아카기코겐 병원의 다케무라 미치오 원장은 “병적도벽과 섭식장애가 큰 연관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한 연구에 따르면 “섭식장애 환자의 12~24%가 절도를 반복한다”는 결과가 나와 있다. 또한 병적도벽 환자 중에서도 섭식장애 때문에 과식이나 구토를 반복하다 3년 이내 도벽을 시작하는 것이 가장 흔한 패턴이다. 심리적 기아감과 생리적 기아감이 더해진 결과인데, 가령 돈을 가지고 있어도 줄어드는 것이 두려워 훔치고 싶어진다.
훔치기 직전에 느끼는, 극한의 긴장감과 훔치고 난 후 해소되는 쾌감도 병적도벽에 빠지게끔 한다. R 씨는 “훔치는 행동에 죄책감이 들어 괴롭지만, 쾌감이 그것을 뛰어넘기 때문에 결코 도둑질을 멈출 수 없다”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마트나 백화점을 돌며 식료품, 의류, 신발 등 딱히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을 닥치는 대로 훔쳤다. 경찰로부터 여러 번 주의처분을 받았으나 멈추지 못해 34세에 징역 1년 8월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이후에도 또 다시 체포됐다. R 씨는 지금까지 무려 4차례나 복역한 것으로 전해진다.
병적도벽은 물건을 훔친 직후 다량의 도파민이 분비돼 엄청난 쾌감을 느낀다. 그래서 그것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걸 알지만 자꾸 반복하게 된다. 이에 다케무라 원장은 “병적도벽은 치료해야 할 질병”임을 강조했다. “먼저 상담과 치료를 통해 충동조절능력을 회복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조언이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