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나이에 선수 은퇴, 에이전트 등 ‘1인 다역’ 활약…축구 모든 분야 전문가 꿈 “경험 쌓아가는 단계”
2020시즌 K리그 중계진으로 첫 선을 보인 강성주 해설위원을 만났다. 사진=최준필 기자
인터뷰를 위해 강성주 해설위원에게 연락을 취하는 순간, 그의 휴대폰 번호가 깊은 인상을 남겼다. 마지막 네 자리가 ‘2002’였기 때문이다. 열렬한 축구 사랑으로 유명한 방송인 김흥국 씨의 번호 역시 월드컵 개최 이전부터 2002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강 해설위원을 직접 만나 번호에 대해 물으니 “김흥국 씨도 그렇겠지만 우리 세대에서도 2002 한일 월드컵은 정말 특별한 기억 아닌가.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며 “에이전트 일을 시작할 때 회사 사장님 뒷번호가 2002였다. 자연스레 나도 따르게 됐다”며 웃었다.
강성주 해설위원은 차범근 축구대상 장려상을 수상한 유망주 출신이기도 하다. 사진=최준필 기자
2020시즌 들어 중계 채널이 더욱 다양해지며 강성주 위원은 K리그에 첫 발을 내디뎠다. 그는 내셔널리그나 아마추어 무대에서 꾸준히 해설위원 활동을 해왔지만 유독 올해 K리그 무대가 부담이 됐다고 털어놨다.
“K리그가 큰 무대라 부담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시다시피 대다수 경기가 무관중 경기로 진행됐다. 내가 하나라도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면 모든 팬들이 그렇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실수하지 않으려 더 집중했고 경기 준비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강 위원의 프로 무대 첫 해설 시즌, 생소한 목소리일 수 있지만 팬들은 그에게 호의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는 “갑자기 해설로 나섰으면 이 정도 관심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아무래도 이주헌 해설위원이 운영하는 팟캐스트, 유튜브 채널 등에 출연하며 얼굴과 이름을 많이 알릴 수 있었다. 부족한 나를 기용해준 이주헌 형님께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단지 유튜브 등 ‘과외활동’으로 긍정적 평가가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강 위원은 “항상 축구를 보시는 분들이 재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목소리를 밝은 톤으로 유지하려고 노력한다”면서도 “내가 선수 출신이지만 국가대표 출신 유명 선수들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다. 유명하신 해설가분들은 선수들의 플레이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을 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쉽다’는 표현을 할 수는 있지만 선수들의 좋은 점을 많이 찾으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본격적으로 해설위원으로 나서기 전에는 해설가 양성과정 교육을 받으며 준비를 하기도 했다. 그는 “운이 좋게도 문체부 산하 인재육성재단에서 운영했던 교육 과정을 이수했다”며 “전체 종목에서 30명을 선발했는데 유명 선수 출신으로는 정수근 씨도 계셨다. 내 자랑 하나 하자면 그중에 해설 활동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전문적으로 방송을 배우지는 않았기에 개인적 노력도 지금까지 하고 있다. 캐스터 분들에게 자문을 받기도 하고 매번 방송을 모니터한다”고도 말했다.
#차범근 축구상 수상했던 ‘유망주’ 강성주
강성주 해설위원은 현재 해설가 활동 이전에 축구선수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 이동국(1991), 박지성(1992), 기성용(2001), 황희찬(2009) 등 당대의 ‘축구 천재’들만 받는다는 차범근 축구대상 수상자(2000년도 장려상)이기도 하다. 그는 “어릴 때 좀 잘했다. 학교 다닐 때 못한 선수가 어디 있겠나”라며 웃었다.
그는 소위 ‘축구 명문’으로 불리는 학교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연령별 대표팀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 시절 중학교를 중퇴하고 프로에 입단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한동원, 신영록, 이청용 등과 같은 또래다. 나는 고등학교 입학이 예정돼 있었기에 고교 졸업 직후 프로에 간다는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프로 선수가 될 것으로 믿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고등학생 시절 전국 단위 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3학년 때는 주장을 맡았다. 공격수로 활약하며 대학 팀들과 연습경기에서도 자주 골을 기록했다. 그는 “대학과 연습경기는 일종의 평가전인데 나는 대학에 갈 생각이 없으니까 오히려 부담 없이 하게 되더라”며 “그러다 ‘강성주가 호남대에 간다’는 소문이 돌았다. 아버지께 여쭤보니 그렇게 결정이 됐다고 하더라. 어린 나이에 실망감이 들었고 건방을 떨기도 했다. 특별대우를 받으며 대학에 입학했다”고 설명했다.
신입생임에도 FA컵에 나서 프로팀을 꺾고 8강까지 진출하는 등 성과를 냈지만 대학생활이 오래 가지는 못했다. 유럽 진출을 도모했기 때문이다.
“정식 입학 전 크로아티아 전지훈련을 갔다가 연습경기를 하며 현지 팀들에 계약 제의를 받기도 했다. 자신감이 생겨 1학년을 마치고 크로아티아로 건너갔다. ‘해외파’ 타이틀을 단다는 생각에 들뜬 마음으로 갔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3부리그 팀과 훈련을 하고 연습경기에 나섰지만 사전에 이야기가 있었던 명문팀 ‘디나모 자그레브’와 계약에 이르지는 못했다.”
부상이 발목을 잡기도 했다. “무릎에 같은 수술만 5번을 받았다. 마지막 수술을 받으며 축구를 그만두겠다고 결심했다. 그때가 23세였다. 마음의 상처가 컸다”고 털어놨다.
해설위원, 에이전트 외에도 경기감독관, 장내아나운서, 스포츠마케터 등의 경험이 있는 강성주 해설위원은 “축구에 대해 다방면에서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사진=최준필 기자
#에이전트, 경기감독관, 장내 아나운서까지
가장 사랑했던 축구를 그만둔 이후 다시는 축구와 마주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다른 분야에 도전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지만 결국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축구계로 돌아왔다.
“해외를 오간 경험이 있어 에이전트들을 옆에서 많이 지켜봤고 외향적인 내 성격과도 맞는 것 같아 나도 에이전트에 뛰어들었다. 부족한 부분이라고 생각되는 영어공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에이전트 회사 사장님을 찾아가 ‘월급을 받지 않을 테니 일을 배우게 해달라’고 말했고 정말 3년간 월급 없이 일했다. 차비가 없어서 사무실에서 신문지를 깔고 자기도 했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사장님이 회사 규모를 줄인 시점이었기에 신입임에도 비중 있는 일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해설위원 일도 에이전트 일을 하며 시작했다. 그는 “축구계에서 에이전트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있다. 일부에선 ‘사기꾼’으로 불리기도 하고 실제 소수의 에이전트는 감옥에 가기도 했다”면서 “그래서 이미지를 바꿔보고 싶었다. 작은 대회라도 해설가 활동을 하면 관계자, 지도자, 선수 부모님들에게 더 편하게 다가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해설위원, 에이전트 활동 이외에도 아마추어 실업 무대 등에서 경기감독관, 장내아나운서 역할을 맡기도 했다. 그는 “감독관이나 장내아나운서는 내가 ‘직업’으로 했다기에는 무리가 있다”면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기회가 생기면 무슨 일이든 하려고 한다. 에이전트로서 어차피 다양한 현장에 많이 다니기에 협회 등에서 일을 주셨다. 다양한 일을 했지만 아직 돈은 별로 못벌었다”며 웃었다.
해설위원으로서 “A대표팀 중계가 목표는 아니다”라는 그는 무명 실업 선수 출신이자 방송사 주최 오디션 프로그램 우승으로 해설위원 타이틀을 따낸 이주헌 해설위원(오른쪽)에 대한 애정과 존경심을 드러냈다. 사진=이스타TV 유튜브 캡처
#“길잡이 역할 하겠다” ‘축구인’ 강성주의 포부
이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은 그의 목표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길이기도 하다. 그는 “다방면의 경험은 축구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갖게 한다. 경기장 내에서만 축구를 바라보는 시각도 있겠지만 해설자, 스포츠마케터로서 시각이 각각 다르다. 스포츠마케팅 회사에 근무한 경험도 있기에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잔디 관리, 각종 용품, 광고판, 티켓 분배, 매점 운영 경호팀 등 1경기가 열리는 데 신경써야 할 부분이 많다. 이런 시각이 중계를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의 목표는 축구에 대해 ‘토털 패키지’와 같은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강 위원은 “지금은 부족하다. 5년 정도가 지나면 좀 더 깊이가 있는 전문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아직은 경험을 쌓아가는 단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해설위원으로서 포부도 밝혔다. 그는 “거창한 꿈은 없다. 대표선수 출신도 아니기에 대표팀 경기에 나선다든지 월드컵 등 메이저 대회 해설을 하고 싶다는 꿈은 없다. 단지 현재 위치에서 계속 축구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즐거움을 드리고 싶다”고 했다.
스스로 ‘본업’으로 부르는 에이전트 일과 관련해선 더욱 진지한 자세를 보였다.
“앞으로 좀 더 냉철하게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직은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감정에 이끌려 일을 하는 경우도 있다. 앞으로 목표도 조금은 감성적이다(웃음). 현재 관리 중인 박용우(상무)와 학창 시절부터 프로 데뷔, 이적, 군입대까지 함께해왔다. 이 선수가 현역 생활을 마무리하고 지도자가 되는 날까지도 에이전트로 곁을 지키고 싶다.”
축구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일종의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는 인물로서 소망을 밝히기도 했다.
“과거 내가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할 때 우연히 이주헌 해설위원의 인터뷰를 보고 감명을 받았다. ‘실패마저 즐긴 남자’가 타이틀이었다. 그 글을 읽었을 때는 개인적 친분이 생기기 전이었다. 축구를 하다 실패한 축구계 비주류 출신이지만 지금은 축구 미디어에서 시각에 따라 ‘톱’으로 꼽히는 해설가가 됐다. 나도 실패를 맛본 사람들에게 하나의 길을 제시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