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사모펀드 사태에 금융감독체계 개편 당위성 강조…“게이트 확산 막으려는 정치권 의도 포함” 분석도
수많은 투자자를 허탈과 분노에 빠트린 라임·옵티머스 사태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만들려는 일부의 움직임이 감지돼 금융권이 주목하고 있다.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금융당국을 질타하는 과정에서 엉뚱하게도 금융감독체계 개편론이 불쑥 등장했기 때문이다.
최근 진행된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대상 국정감사에서는 사모펀드 사태가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야당은 주로 금융당국의 사모펀드 감독 실패 문제, 정치권 인사 연루설 등을 제기했다. 옵티머스 사태가 터지기 전부터 금융당국에 민원이 수차례 제기됐으며, 라임 사태 이후 진행된 사모펀드 운용사 조사에서 옵티머스의 부실 징후를 포착하는 등 사전에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도 뒷북 대응으로 일관했다는 질타를 쏟아냈다.
반면 여당의 반응은 묘했다. 금융당국을 질타하는 면에서는 한목소리를 내면서도 문제의 원인을 금융감독체계로 규정한 것.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감에서 “국내 금융감독체계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감독과 집행이 분리돼 있어 신속성이 떨어지는 데 있다”며 “사모펀드 현황과 그에 따른 금융당국의 대처를 시간대별로 확인해 보면 금융위와 금감원의 엇박자를 확인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금융감독체계 개편 필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사진=이종현 기자
그런 뒤 곧바로 ‘본론’이 등장했다. 유 의원은 “금융위원회의 금융산업 정책을 기획재정부로 옮기고 금융감독 기능은 총리실 산하에 금융감독위원회를 둬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금융정책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이 맡고 감독은 금감위가 맡던 과거 금감위 운영 방식과 거의 일치한다. 현재는 금융위가 국내 금융에 대한 정책과 감독을, 기획재정부는 국제금융에 대한 전반을, 금융감독원은 감독 및 집행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감위를 설치하자는 것은 결국 DJ 시절의 시스템으로 돌아가자는 뜻인 셈이다.
이에 대한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답변은 더욱 의미심장했다. 은 위원장은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정부조직 개편과 함께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금융감독체계 개편론을 진화하기는커녕 오히려 범정부 차원에서 작업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판을 키운 것이다. 이어진 은 위원장의 발언은 쐐기를 박았다. 그는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금융감독 체계 개편 논의가 필요하다”는 감사원 지적 사항에 대해 “조치를 이행 중”이라고 말했다.
감사원은 최근 ‘금융소비자 보호 시책 추진 실태’를 주제로 진행한 감사결과를 금융위에 통보했는데, 여기에는 주로 금감원의 실책을 지적하는 내용이 담겼다. 감사원은 “금감원이 금융소비자 보호 업무를 적절히 수행하는지 관리·감독을 철저하게 해야 한다”며 “장기적으로 금융소비자 보호 정책이 실효성 있는 방향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금융감독체계 개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별도로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예방을 위한 금감원의 검사·감독이 제대로 이뤄졌고 제재가 적정했는지 대한 감사에도 착수했다.
금융위 내부에서는 감사원의 ‘권고’가 있었던데다 때마침(?) 사모펀드 사태까지 터지면서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위한 당위성이 무르익었다는 판단이 내려진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감독 체계 개편을 둘러싼 밑그림들이 그려지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주된 내용은 분산된 감독 기능을 흡수함으로써 금융감독체계를 일원화하자는 것으로, 금감위를 부활시켜 과거로 돌아가자는 정부 및 여당의 생각과 일치하는 방식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는 은성수 금융위원장. 사진=박은숙 기자
금감위가 주축인 금융감독체계가 만들어진 계기는 국내 금융권을 뿌리부터 뒤흔든 1997년 외환위기였다. 그 전까지 국내 금융사들에 대한 감독체계는 업종별 감독기관들과 정부기관들로 구성된 이원감독 구조였다. 은행의 경우 은행감독원과 한국은행 은행감독국이 같이 관리·감독을 맡았고, 증권사는 증권감독원과 재경부 증권감독부서가 함께 감독 권한을 보유하는 형태였다.
그러나 외환위기로 금융사들의 파산이 줄을 잇자 국가적 위기 극복과 금융산업에 대한 통합감독을 위해 금융개혁위원회가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됐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금융감독위원회였다. 초대 수장에 임명된 이헌재 금감위원장은 금융권은 물론 대기업의 생사여탈권까지 쥐고 흔들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행사했다. 이 때문에 그는 ‘금융 대통령’으로, 금감위는 ‘금융 청와대’라 불리기도 했다. 이후 2008년 MB 정부가 출범하면서 금감위는 재정경제부로부터 금융 및 외국환업무 취급기관의 건전성 사무를 이관 받아 금융위를 출범시켰고, 원래 갖고 있던 감독 기능은 그대로 금감원으로 존속시켰다.
과거 금감위의 위세를 기억하는 금융권은 긴장감과 함께 ‘왜 하필 지금인지’에 관한 의문도 제기하고 있다. 대형 금융사고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핵심 권력이 연루된 ‘금융 게이트’ 의혹이 불거지는 와중에 금융감독체계에 손을 대는 것은 다른 목적으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다. 이와 관련해 금융권의 한 최고위 관계자는 “게이트로 번지는 것을 막으려는 정치권과 금융권력을 원하는 당국의 이해관계가 묘하게 맞아떨어진 느낌”이라면서 “감독체계가 미비해서 금융산업 경쟁력이 떨어지고 각종 사고가 빈발한다고 믿는 금융인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