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속 시원” 반면 “정치적 발언” 우려도…박순철 남부지검장 사의 표명 ‘뒤숭숭’
허나, 후폭풍이 만만찮다. 검찰 대부분에서는 “독립적 지위를 보장해줘야 한다는 맥락에서 검찰총장의 기개를 보여줬다”는 반응이 나오지만, 일각에서는 “두 사람(추미애 장관과 윤석열 총장) 사이의 갈등에서부터 비롯된 게 아니냐. 검찰을 더 정치적으로 보이게 할 소지가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국감을 앞두고 나온 박순철 서울남부지검장 사의 표명은 검찰 내에 더 큰 파장이 예상된다.
10월 22일 대검찰청 국정감사에 출석한 윤석열 검찰총장은 “사실관계는 정확하게 해야 한다”며 거의 모든 질의에 반박했다. 사진=이종현 기자
#몇몇 발언에는 아쉽다 지적도
“예전에는 저한테 그러지 않으셨잖아요”라며 여당에 아쉬움을 토로하는가 하면, “중상모략이라는 표현은 제가 쓸 수 있는 가장 점잖은 단어”라며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비판한 윤석열 총장. 검찰 내부에서는 “속이 시원했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특수 수사 경험이 있는 한 평검사는 “그동안 정치권이 검찰을 흔들 때 윤석열 총장이 나서지 못하게 하는 상황들이 있어서 아쉬웠는데 이번에 ‘총장’으로 검찰의 목소리를 제대로 낸 것 같다”며 “내부에서도 다들 국감을 보면서 윤 총장의 반박에 ‘할 말을 잘 했다’는 반응이더라”고 평했다. 간부급 검사 역시 “윤 총장의 리더십을 무조건 좋게 평가해 왔던 것은 아니지만, 작심하고 발언한 부분들이나 검찰이라는 조직이 잘못된 방향으로 정치권에 흔들리는 상황에서 평소 스타일대로, 조직원의 입장을 잘 얘기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몇몇 발언은 검찰 내에서도 사뭇 다른 목소리가 들린다. 특히 “검찰총장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는 발언은 여러 의견이 나오고 있다. 윤 총장은 이날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에 대해 “법리적으로 보면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라며 “검찰총장이 장관의 부하라면 수사·소추가 정치인의 지휘에 떨어지게 된다”고 반발했다. 추 장관은 라임자산운용 로비 의혹과 총장 가족 의혹 등 5개 사건에서 윤 총장을 배제하는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는데, 이를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다.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라는 발언은 법리적으로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법조계에서는 해석된다. 검찰청은 외청의 형태를 띠지만 사무관할에 있어 준사법기관으로 분류된다. 더구나 검사는 법적으로 개개인이 독립 관청의 지위를 부여받는다. 부하라는 개념을 ‘모든 업무에서 지시를 받는 것’으로 정의한다면,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해석이 나온다.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는 “검찰총장의 업무는 일반적 사무에 대한 업무와 사건 지휘에서는 구분되어야 한다”며 “행정부 성격을 띠는 부분들은 법무부의 관할에 있고 인사권 등에서는 법무부에서 결정이 내려오지만 개별 사건 진행 및 결정에 대해서는 법무부에 개입권이 없기 때문에 부하라는 개념으로 보기에는 어려워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업무지시와 감독권이 법에 규정돼 있기 때문에 부하라고 볼 소지가 있다는 반박도 나온다. 추 장관 역시 국감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즉각 반발했다. 추 장관은 페이스북에 “검찰총장은 법상 법무부 장관의 지휘감독을 받는 공무원입니다”라고 적었다. 진혜원 서울동부지검 부부장 검사 역시 “오늘 중앙정부기구 소속 청 수장 한 분이 국정감사장에 출석하여 ‘나는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는데 사실이라면 문제가 있다”고 했다.
라임자산운용 펀드 사기 사건을 수사 중인 박순철 서울남부지검장이 사의를 표명한 것도 검찰 내 적지 않은 여파를 미치고 있다. 사진=이종현 기자
#남부지검장 사의에 더 뒤숭숭
그런 가운데 라임자산운용(라임) 펀드 사기 사건을 수사 중인 박순철 서울남부지검장이 사의를 표명한 것도 검찰 내 적지 않은 여파를 미치고 있다. ‘반발’이 확산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 지검장은 10월 22일 국감이 열리기 5분 전인 오전 9시 55분, 검찰 내부 통신망에 ‘라임 사태에 대한 입장’이란 제목의 글을 통해 “정치가 검찰을 덮어버렸다”며 사의를 밝혔다. 그는 “법무부 장관의 수사 지휘에 따라 남부지검은 제기된 의혹에 대해 검찰총장의 수사 지휘를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수사를 진행해야만 한다”며 “그런데 총장 지휘 배제의 주요 의혹들은 사실과 거리가 있다”며 추미애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강원 출신에 서울대 법학과를 나온 박 지검장은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 부부장과 특별수사3부장, 대검 형사정책단장 등을 역임했다. 당초 윤석열 총장 라인으로 분류되기보다는, 정권에 가깝다는 평을 받았던 박 지검장의 사의 표명에 검찰 내에서는 ‘소신 있는 결정’이라는 응원이 나온다.
박 지검장의 사의 표명 글에는 “뜻을 철회해 달라”거나 “정치적 압력에 굴하지 말라”는 응원의 댓글이 달리고 있다. 앞선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급급한 사람들도 많은데 박 지검장의 사표는 ‘잘못된 것을 바로 잡기 위한 소신 있는 발언이자 행동’이지 않느냐”며 “쉽지 않았을 결정이었겠지만, 이를 보고 검사들이 하나둘 더 불만을 공개적으로 내놓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