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맞교환 물류·콘텐츠 시너지효과 기대…독과점 우려·택배 노동자 논란 해소 숙제
네이버와 CJ그룹은 최근 사업 협력 방안을 합의하고 마지막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네이버와 CJ의 3대 계열사인 CJ대한통운, CJ ENM, 스튜디오드래곤이 주식을 서로 맞바꿔(스와프) 사업 제휴를 맺는 방식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이 경우 서로가 투자한 회사의 주주가 되고 의결권도 갖게 되는 만큼 동등하고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된다. 각자의 대표 사업인 물류·이커머스·콘텐츠 분야에서 협력이 이뤄질 전망이다.
경기도 성남시 네이버 본사. 사진=일요신문DB
재계와 관련 업계는 두 업체의 동맹 추진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이다. 네이버와 CJ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난해 말부터 협력 방안을 조율해 왔는데, 최근까지 전혀 알려진 내용이 없었다. 양측은 별도의 투자은행(IB) 등 자문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물밑에서 논의를 이어왔고, 소수의 임원 및 경영진들만 내용을 공유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CJ 입장에선 이번이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도 관심이 쏠린다. 과거 삼성에서 분리된 이후 대규모 지분 스와프를 통해 협력 관계를 맺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필요하면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워 인수합병(M&A)을 통해 흡수하는 방식을 주로 추진해왔다.
네이버와 CJ 관계자들은 협력 방안에 대해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정해진 내용은 없다고 했다.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고, 추후 그 내용이 확정되는 시점이나 1개월 이내에 공시하겠다는 입장이다. 양측은 향후 협의가 마무리 되면 이사회에서 이 안건을 최종 결정할 계획이다. 이사회 일정은 아직 미정이다.
국내 최대 플랫폼 업체 네이버와 물류-콘텐츠 업계 1위 CJ의 동맹은 한 순간에 증권가와 관련 업계의 빅이슈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 가운데 특히 주목 받는 건 네이버가 물류 분야에서 얻게 될 시너지다.
지난해 네이버는 거래액 기준으로 국내 이커머스 1위에 올라섰다. 거래액 20조 9250억 원을 기록했는데, 쿠팡(17조 770억 원)과 이베이코리아(16조 9770억 원)를 크게 앞섰다. 다만 한 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네이버는 그동안 네이버 플랫폼을 활용한 상품 광고와 검색, 네이버페이 결제 형태의 시스템으로 이커머스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해왔는데, 재고 관리나 배송 등을 포괄하는 물류 시스템은 자체적으로 갖추지 못했다. 네이버쇼핑 입점 업체들은 자체적으로 택배사와 배송 계약을 맺고 알아서 물건을 전달해야 했다. 다른 이커머스 업체들보다 배송이 늦고, 교환 및 환불, 상품 파손 등의 문제 처리에도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CJ대한통운과 협력을 맺으면 이 문제가 해결된다. CJ대한통운은 2018년 3800억 원을 들여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에 축구장 16개 면적(11만 5700㎡) 규모 풀필먼트센터를 완공했다. 사업 제휴를 통해 CJ대한통운의 풀필먼트 서비스(포장·배송·관리를 모두 처리해주는 시스템)를 활용하면 배송 경쟁력이 높아져 네이버의 시장 점유율은 더 높아질 수 있다. 막대한 물류 시스템 구축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점 역시 상당한 이익이다.
서울 중구 CJ제일제당. 사진=일요신문DB
콘텐츠 분야에서도 네이버는 마지막 한 조각이 부족했다. 이커머스와 함께 네이버의 또 다른 한 축은 콘텐츠 사업이다. 올해 IP(지적재산권) 확장이 네이버의 최대 과제였는데, 단순 자금력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제작 역량이 발목을 잡고 있었다. CJ ENM과 스튜디오드래곤은 모두 콘텐츠 제작사다. CJ ENM은 영화와 예능, 디지털 콘텐츠 제작에, 스튜디오드래곤은 드라마 제작에 각각 강점이 있다. 이들과 사업 제휴를 맺게 되면 네이버는 네이버웹툰 IP 등을 활용해 영화, 드라마, 디지털 콘텐츠 등으로 확장할 수 있다.
CJ 입장에서도 네이버와 한 배를 타는 게 반가운 일이다. 물류 업계에서 CJ대한통운이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할 수 있게 된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의 36만여 곳의 입점 업체들과 강력한 검색 플랫폼 속 택배 이용자들이 전부 잠재 고객이다. 현재 경쟁 업체들과 택배 물량을 나누고 있지만 사업 제휴가 맺어지면 이를 모두 가져올 수도 있다.
콘텐츠 분야에서도 영향력이 더욱 커질 것으로 관측된다. CJ는 콘텐츠 제작에는 강점을 가지고 있지만 이를 유통하는 방식은 TV채널과 극장으로 제한돼 있다. 올해 코로나19 사태에 따라 언택트 문화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자체 플랫폼 ‘티빙’ 외에도 다른 방식의 유통 채널이 절실했다. 네이버와 협력하면 적은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낼 수 있다.
양측의 이익 계산서와 함께 지분 교환 방식에도 이목이 쏠린다. 자사주가 활용될 가능성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네이버는 자사주 1890만 주(11.5%)를 보유하고 있고, CJ대한통운은 466만 주(20.4%), CJ ENM이 230만 주(10.5%)를 가지고 있다. 스튜디오드래곤은 자사주는 없지만 CJ ENM이 대주주(58.18%)다. 증권가에선 CJ ENM이 가진 지분 가운데 5~8%가 교환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네이버가 CJ대한통운, CJ ENM, 스튜디오드래곤의 주식을 취득하고 CJ 계열사 3곳은 그에 상응하는 네이버 주식을 받게 될 것으로 관측된다. 자사주 중심으로 교환될 경우 네이버는 CJ제일제당(40.16%)에 이어 CJ대한통운의 2대 주주, 지주사 CJ(40.07%)에 이어 CJ ENM의 2대 주주가 될 가능성이 높다. 네이버는 스튜디오드래곤에서는 교환 비율에 따라 CJ ENM에 이은 2대 주주, 또는 현재 2대 주주인 넷플릭스(4.99%)에 이어 3대 주주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지분 교환의 방식과 비율은 교환 시점 전후 주가에 따라 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중구 서소문동 CJ대한통운빌딩. 사진=일요신문DB
다만 주식 맞교환 규모에 따라 숙제가 생긴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매출액 또는 자산총액이 한 쪽은 3000억 원, 다른 한 쪽은 300억 원 이상인 기업 사이에 총 주식의 15% 이상 인수가 이뤄지면 의무적으로 기업결합 신고를 해야 한다. 이에 따라 네이버가 CJ대한통운의 지분 15% 이상을 확보하고 2대 주주에 오르면 공정위 승인을 받아야 한다. 양측이 업계 최대 업체들인 만큼 독점적 지위에 대한 우려가 나올 수 있다.
넘어야 할 산은 또 있다. 최근 잇따라 발생한 택배기사 사망과 관련, CJ대한통운을 둘러싼 논란이다. 최근 박근희 CJ대한통운 대표이사가 직접 사과하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 시행하겠다고 밝혔지만, 이제 막 조치를 시작한 단계다. 네이버와 협업이 결정되면 택배 물류 폭증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만큼, 축포를 쏘기 전 현재 지적 받는 부분들의 해소가 우선돼야 한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편 재계와 투자은행 업계에선 다른 지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그동안 네이버의 창업자 이해진 씨의 지분(3.73%)이 낮았는데, 향후 CJ그룹을 우호 지분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 2018년 CJ제일제당의 미국 냉동식품업체 슈완스 인수 이후 2년 동안 내실다지기에 집중했던 CJ가 이번 지분 교환을 통해 대규모 현금을 확보하고 다시 M&A 시장에 등판할 수도 있다는 점 등이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다만 CJ의 M&A 시장 재등판 시나리오가 적용되려면 단순 지분 맞교환보다는 현금도 함께 거래돼야 한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