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여권에서 ‘원칙주의자’로 극찬받았지만…월성1호기 감사로 정부와 갈등 ‘제2 윤석열’
지난 7월 국회에서 열린 법사위 전체회의에 참석한 최재형 감사원장. 사진=이종현 기자
#군인집안에서 태어난 엘리트 법조인
최재형 원장은 1956년 9월 2일 최영섭 예비역 해군 대령의 4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부친 최영섭 대령은 한국전쟁에서 한국 해군의 최초의 해전이자 첫 승전인 ‘대한해협 해전’에서 백두산함의 갑판사관 겸 항해사·포술사로 참전, 승전의 실질적인 주역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최재형 원장은 경남 진해시에서 태어난 직후 최영섭 대령이 서울의 해군본부로 발령이 나면서 이사, 서울에서 자랐다.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 소위 말하는 ‘KS’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최 원장은 1981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 13기로 수료했다. 13기에는 유명한 동기들이 많다.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와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 대표적이다. 조대환 전 청와대 민정수석, 박한철 전 헌법재판소장, 한상대 전 검찰총장, 최성준 전 방송통신위원장, 허익범 드루킹 특별검사팀 특별검사도 최 원장과 동기다.
최 감사원장은 1986년 판사로 임용돼, 줄곧 판사의 길을 걸었다. 서울지법 동부지원 판사(1986년)를 시작으로 서울민사지법 판사(1989년), 청주지법 충주지원 판사(1991년), 서울지법 서부지원 판사(1993년), 서울고법 판사(1994년), 서울지법 판사(1998년)를 지냈다.
이어 춘천지법 원주지원장(1999년)과 서울지법 부장판사(2003년), 대구고법 부장판사(2006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2006년), 대전지법 법원장(2012년), 서울가정법원 법원장(2014년) 등을 역임했다. 2000년 사법연수원에서 교수직으로 재임한 데 이어 2017년 2월에는 사법연수원 원장에 임명됐다.
지난 2014년 서울가정법원 법원장 재직 당시 최재형 감사원장. 사진=연합뉴스
#원칙주의자 판사
법조계에서는 최재형 원장에 대해 ‘외유내강’ 리더십을 가졌다고 평가한다. 또한 단호한 ‘원칙주의자’의 모습도 보인다고 전했다. 군인 출신의 부친 영향이 있었다고 유추해볼 수 있다.
최 원장은 서울고법 부장판사 재직 당시 박정희 정권에서 발생한 군 쿠데타 모의 의혹 숙청 사건인 ‘윤필용 사건’에 연루돼 징역형을 선고 받은 전직 장성의 재심에서 강압수사로 인한 허위자백이었음을 인정해 무죄를 선고했다. 도로를 관리하는 지자체가 인도를 제대로 설치하지 않아 발생한 자동차 사고에 지자체 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도 내렸다.
2011년부터 1년 6개월여 동안 서울고법 성폭력전담재판부 재판장 겸 형사재판연구회장을 맡아 성범죄 양형기준 등을 실무에 정착시키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서울가정법원장으로 재직하던 2014년에는 여성가족부 학계 전문가 등 외부인사를 초청, 의견을 적극 수렴해 현실화된 양육비 산정 기준표를 공표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미담’ 제조기
최재형 원장 개인에 대한 ‘미담’이 많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알려졌다. 경기고 재학 시절에는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한 한 살 터울 친구를 등에 업고 2년간 등교시킨 일화가 있다. 최 원장은 나중에 그 친구와 서울대 법학과도 함께 다니고, 나란히 사법시험에 합격하자 사법연수원에서도 같은 일을 반복했다. 그 친구가 최 원장의 ‘평생지기’인 강명훈 변호사다.
최재형 원장은 슬하에 2남 2녀를 뒀다. 두 명의 딸은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고, 2000년과 2006년 각각 9개월과 11세 남자 아이를 입양했다. 또한 자녀 두 명과 함께 최근 5년간 13개 구호단체에 4000만여 원을 기부하는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였다. 교회 등에서 진행하는 봉사활동에도 솔선수범해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흠결 없이 인사청문회 통과
이러한 긍정적 평가를 바탕으로 사법연수원장에 임명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2017년 12월 7일 문재인 정부 첫 감사원장 후보자에 지명됐다.
윤영찬 당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최 원장의 감사원장 후보자 지명에 대해 “최재형 후보자는 30여 년간 민·형사, 헌법 등 다양한 영역에서 법관으로서 소신에 따라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권익 보호,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노력해온 법조인”이라며 “감사원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수호하면서 헌법상 부여된 회계감사와 직무감찰을 엄정히 수행해 감사운영의 독립성과 투명성, 공정성을 강화하고 공공부문 내 불합리한 부분을 걷어내 깨끗하고 바른 공직사회와 신뢰받는 정부를 실현해 나갈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당시 청와대에서 황찬현 감사원장 후임 인사를 위해 고민이 많았다. 고사하는 후보자도 많고, 인사청문회 검증 통과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선이 계속 미뤄졌다”며 “결국 사법연수원장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은 최재형 원장을 추천한 것으로 안다. 법조계에서 최재형 원장을 두고 나쁜 말을 나오지 않을 만큼 흠결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최 원장도 처음에 거절했는데, 조국 당시 민정수석이 직접 연락해 적임자로 추천한 것으로 전해진다”고 밝혔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1994년과 1995년 두 차례 위장전입한 사실이 밝혀졌지만, 문재인 정부 청와대가 위장전입은 인사청문회가 장관급까지 확대된 2007년 이후부터 배제하겠다고 원칙을 세운 바 있어 여야 모두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는 인사청문회를 거쳐 당일 보고서를 채택, 12월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찬성 231명 반대 12명 기권 3명으로 임명동의안이 가결됐다. 이어 이듬해 1월 2일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장을 수여하며 최재형 원장은 임기 4년의 제24대 감사원장에 올랐다.
그는 감사원장으로서도 성과를 냈다. 최 원장은 취임 뒤 2018년 7월 이전 감사원에서 문제가 없었다고 결론 내린 ‘이명박 정부 4대강 사업’의 불필요한 공사 추진 사실을 밝혀냈다. 2.5~3m 최소 수심이면 홍수 예방과 물 부족 대처를 할 수 있다는 국토부 보고에도, 이명박 전 대통령이 낙동강 최소 수심을 6m로 하라고 지시했다는 내용이었다.
다만 감사 결과에서 이 전 대통령 책임을 묻지는 않았다. 대통령 직무행위는 감찰대상이 아니고, 위법사항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다. 관련 책임자 역시 절차상 하자 등 위법사례 적발에도 징계시효와 공소시효가 지나 징계나 수사를 요구하지 않았다. 이에 과거 감사원의 부실감사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최재형호 감사원은 국가정보원에 대해 첫 기관운영감사를 2018년 말부터 2019년 초까지 시행했다. 앞서 국정원은 과거 중앙정보부 창설 1961년 이후 한 번도 감사원 감사를 받지 않았다.
국정원 감사에서 감사원은 17건의 지적사항을 적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직·인사 분야 4건, 예산·기획 분야 9건, 국유재산·수입금 분야 4건 등이다. 최재형 원장은 권력기관도 언제든 감사원 감사를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만드는 중요한 첫걸음이라고 평가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코로나19 전 세계적 확산에 따른 정부와 지자체, 공공기관의 위기 대처와 관련해 감사원은 지난 3월 ‘경제위기 대응 지원을 위한 감사운영 방안’을 발표, 코로나19 대응업무에 대한 면책 방칙을 밝히며 공직사회의 적극행정을 당부하기도 했다.
최재형 원장은 “그동안 공직자의 소극적 행동을 유발하는 중요 원인 중 하나가 감사 행태라는 지적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며 “이번 위기상황 극복에서 선례가 없다거나 관례 규정이 미비하다는 이유로 소극적 업무를 수행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사후 감사’가 부담으로 작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월성1호기’ 감사 두고 갈등
최재형 원장이 여권과 불편한 관계가 된 것은 월성 1호기 감사 때문이었다. 국회는 2019년 9월 한국수력원자력의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조기폐쇄 결정이 타당했는지 등에 대해 감사를 요구했고, 감사원은 10월 감사에 착수했다.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고 있었기 때문에 감사 결과에 관심이 모아졌다.
국회법에 따르면 감사원은 감사요구를 받은 날부터 3개월 안에 결과를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 하지만 월성 1호기 감사는 법정기한인 2020년 2월을 넘긴 데 이어 4월 감사원이 ‘보완 감사’ 결정을 내렸다. 이를 두고 여러 해석이 나왔다. 결과를 놓고 감사원 내부에서조차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는 얘기도 뒤를 이었다.
그러던 중 최재형 원장이 지난 4월 백운규 당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상대로 직권심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대선에서 41%의 지지밖에 받지 못한 정부의 국정과제가 국민의 합의를 얻었다고 할 수 있겠느냐”라는 발언을 했다는 의혹이 7월 뒤늦게 불거졌다.
이에 대해 최재형 원장은 국회 법사위 업무보고에 출석해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에서 41% 정도의 득표를 받으신 걸로 알고 있는데, 이를 국민 대다수라 일반화할 있겠느냐”라고 반론을 제기한 것뿐, 정부의 정통성 등 정치적 의견을 개진하진 않았다고 반박했다. 그럼에도 최재형 원장이 탈원전 정책에 반대하며 문재인 정부에 반기를 든 것이라는 반응이 끊이지 않았다.
감사보고서 의결을 위한 감사위원회 회의에서 의결이 번번이 무산돼, 4월과 10월 총 9차례나 심의한 것을 두고도 최재형 원장이 ‘친여 성향’ 감사위원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는 말이 나왔다.
또 공석인 감사위원 자리에 청와대가 김오수 전 법무부 차관을 제청해 달라고 두 차례나 요구했지만, 최 원장이 ‘친정부 인사’라는 이유로 거부한 것으로 알려져 갈등설에 불을 붙였다. 감사위원은 지난 4월 이준호 전 감사위원이 퇴임한 후 한 석이 공석으로 남아있다. 4개월여 동안 감사위원을 임명하지 않은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결국 감사원 ‘월성 1호기 조기폐쇄 결정 적절성’ 감사 보고서가 10월 19일 1년이 넘은 385일 만에 의결돼, 20일 발표됐다. 감사원은 월성 1호기 경제성이 불합리하게 낮게 평가됐다고 결론을 내렸다. 다만, 해당 원전의 조기폐쇄 결정 자체의 타당성에 대해선 감사 범위를 넘어선다며 판단을 유보했다.
최재형 원장은 10월 15일 국회 법사위의 감사원 국감에 출석해 “국회의 감사 요구 이후 산업부 공무원이 관계 자료를 모두 삭제했다. 이를 복구하고 진술을 받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며 “감사원장이 되고 이렇게 (피감사자들의) 저항이 심한 것은 처음 봤다”고 토로했다.
논란이 된 감사위원들과의 불화설, 일부 감사위원의 정치적 편향성 문제에 대해서도 “감사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을 정치적 성향의 프레임으로 단정 짓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10월 21일 서울 종로구 감사원으로 출근하고 있는 최재형 감사원장. 사진=연합뉴스
#정치권 입성 여부 관심
여권에서는 최재형 원장의 정치적 중립성을 문제 삼으며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반면 야권에서는 윤석열 검찰총장과 함께 ‘문재인 정부 항명 논란의 양대 축’으로 “강단 있는 분”으로 평가한다. 국민의힘의 영입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가 높이 평가해 임명해놓고, 자신들의 정책에 반기를 든다고 비판하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의 핍박에 감사원장직에서 사퇴한다면 잠재적으로 대선주자나 서울시장 후보로 떠오를 수 있다. 당 내부에서도 타진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 원장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한다. 성품 자체도 정치인 스타일은 아니라고 알려졌다. 아쉬울 따름”이라고 귀띔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