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무개 형사계장 “나는 성실히 일했을 뿐”…다음 공판 이춘재 출석
30여 년 전 화성경찰서에서 일선 수사 형사들을 총괄했던 이 아무개 형사계장이 법정에서 한 말이다.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 재심 공판에 증인으로 나선 이 계장은 마지막으로 20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성여 씨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묻는 말에 “당시 증거를 바탕으로 형사들이 조서를 작성했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이 계장은 ‘만들어진 범인’ 앞에서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수원지방법원 형사12부(박정제 부장판사)는 10월 26일 이춘재 8차 사건 8차 공판을 열었다. 이날은 마지막 남은 핵심 증인인 이 아무개 형사계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당시 사건 조작이 일선 수사 형사들 선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이는 만큼, 당시 8차 사건 담당 검사였던 최 아무개 검사보다 형사들을 총괄했던 이 계장이 더 늦게 증인으로 신청됐다. 당시 사건 기록을 살펴봤을 때 최 검사보다 이 계장이 더 책임 있는 핵심 증인이었던 셈이다.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억울하게 옥살이한 윤성여 씨. 수원지방법원 형사12부(박정제 부장판사)는 10월 26일 이춘재 8차 사건 재심 8차 공판을 열었다. 재심 공판에 증인으로 나선 이 아무개 당시 화성경찰서 형사계장은 마지막으로 20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 씨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묻는 말에 “당시 증거를 바탕으로 형사들이 조서를 작성했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사진=최준필 기자
이 계장은 법정 증언 내내 자신을 적극 변호하다가도 “모르겠다”, “기억나지 않는다” 등의 말로 검사와 변호인의 질문을 밀어냈다.
이 계장은 일선 수사 형사들에게 직접 수사 지시를 한 적 없다고 주장했다. 이 계장은 “평소 같다면 직급 체계상 형사계장인 내가 형사들을 지휘하는 게 맞지만, 당시엔 국가적으로 상당한 관심을 받던 상황이었던 만큼 수사본부가 꾸려졌다. 나는 수사본부에서 팀장이었다. 수사본부 본부장이나 부본부장이 매일 직접 전체회의를 했고 일선 수사 형사들에게 직접 수사 지시를 했다”며 “나는 형사들에게 수사 관련 지시하지 않았고, 수사본부가 있던 태안지서(태안파출소)에 상주하면서 형사들이 전해주는 수사 보고를 취합해 본청과 지방청에 전달하는 역할만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계장은 당시 윤성여 씨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데에 결정적 근거였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체모 방사성동위원소 감정 결과를 일선 형사들에게 알려주는 일 또한 자신이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앞서 증인으로 나섰던 심 아무개 형사, 장 아무개 형사, 이 아무개 형사 모두 체모 감정 결과를 이 계장에게 전해 들었다고 증언한 것과 대조되는 지점이었다.
이 계장은 현장검증 당시 윤 씨에게 시키는 대로 하게끔 한 적 없다며 윤 씨가 피해자 집의 담을 넘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 계장은 당시 현장검증조서를 작성한 인물이다. 이 계장은 조서에서 윤 씨가 피해자 집의 담을 넘었다고 작성했다. 이 계장은 이 조서를 두고 “그런 것까진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시 일선 형사들을 지휘했던 화성경찰서 형사계장 이 아무개 씨. 7월 29일 수원의 한 골프장에서 기자와 만나 자신은 당시 화성경찰에서 근무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하며 관련 내용에 대해 아는 게 없다고 말했다. 사진=박현광 기자
이날 이 계장과 윤 씨의 기억이 일치하는 지점이 존재하기도 했다. 윤 씨는 임의동행 당시 집에서 산기슭을 거쳐 수사본부가 있던 태안파출소를 거쳐 화성경찰서를 갔다고 줄곧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를 기억하거나 증언하는 일선 수사 형사들은 여태까지 없었다. 이 계장은 이 사실을 기억했다.
이 계장은 “형사들이 윤 씨를 임의 동행하던 당시 나는 태안지서에 있었다. 형사들이 (윤 씨를 태운) 봉고를 몰고 태안지서에 왔었다. 한 형사에게 ‘어디로 갈 거냐’고 물었더니 ‘경찰서로 갈 거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윤 씨의 변호를 맡은 박준영 변호사가 ‘경찰서로 가라고 지시한 것 아니냐?’, ‘따라가지 않았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등의 말을 하자 이 계장은 “가라고 지시한 건 아니다. 평소 같으면 갔겠지만 당시 태안 일대 부녀자들의 안전을 지키는 업무를 계속해야 해서 태안지서에 남아 있었다”고 말했다.
이 계장은 윤 씨를 수사하면서 폭행·폭언 등의 가혹행위가 있을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 계장은 “당시에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있었다. 100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1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말라는 인권 수사를 했다”며 “(잠을 안 재우는 등의 수사가 있었단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앞서 증인으로 나선 일선 수사 형사들이 잠을 재우지 않는 등 가혹행위를 동반한 수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부끄럽다”, “미안하다”며 반성과 사과를 한 것과 비교되는 지점이었다. 특히 윤 씨의 첫 자백 진술 조서를 받은 심 형사는 자신이 윤 씨에게 진술 내용을 불러주고 윤 씨가 이를 받아쓰게 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 계장은 ‘이춘재 초등생 살인 사건’ 은폐 의혹에 관해서 “금시초문”이라고 했다. 이 계장은 ‘당시 피해자의 양손이 줄넘기로 결박돼 있던 상태를 보지 않았느냐, 최근 경찰의 재수사를 통해 입건된 적 있지 않느냐’고 따져 묻는 박 변호사에게 “경찰이 짜 맞추기 수사를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춘재 초등생 살인 사건은 1989년 7월 7일 초등학교 2학년이던 김 아무개 양이 화성군 태안읍에서 하굣길에 실종된 사건이다. 당시 경찰은 단순 실종 사건으로 분류했지만 최근 경찰 재수사에서 당시 경찰이 김 양의 유골을 발견하고도 유족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경찰은 이 계장이 당시 김 양의 유골에 손을 댔다고 보고 그를 입건했다.
이 계장은 “나는 꿈을 가지고 경찰에 들어와서 성실하게 일했을 뿐”이라며 마지막으로 윤 씨에게 할 말이 없느냐는 말에 “당시 증거에 의해서 형사들이 조서를 작성했고, 나는 지금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분들이 잘못해서 억울한 범인이 나왔다면 그건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춘재 8차 사건 다음 공판은 11월 2일에 열린다. 이춘재가 증인으로 출석한다.
수원=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