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부터 증인 출석, 국과수 체모 감정 조작 “우리도 몰랐다”…심 형사만 “잠 안재운 건 잘못” 미안함 내비쳐
이춘재 8차 사건 당시 핵심 수사 담당인 심 아무개 형사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춘재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20년 동안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다며 재심청구서를 제출하기 위해 수원지방법원을 찾는 윤성여 씨. 일요신문이 윤 씨의 동의를 얻어 언론 최초로 모자이크 없이 얼굴을 공개한다. 사진=최준필 기자
30년이 지난 2019년 9월 이춘재는 ‘이춘재 살인사건’의 진범임을 인정하는 동시에 8차 사건도 자신의 범행이라고 털어놨다. 형사들의 폭행과 잠을 안 재우는 등의 가혹행위에 못 이겨 허위 자백했다는 윤 씨의 30년 울분은 그제야 주목받을 수 있었다. 윤 씨는 2019년 11월 재심 청구를 했고, 최근 재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당시 23세였던 윤 씨의 젊음을 앗아간 형사들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특진했다. 화성경찰서 소속 형사 5명이 그 장본인. 심 아무개, 최 이무개, 장 아무개, 이 아무개, 김 아무개 형사다. 이 가운데 최 형사와 김 형사는 이미 고인이 됐다. 남은 심 형사, 장 형사, 이 형사는 8월 11일부터 차례로 8차 사건 재심 재판장에 증인으로 나선다. 당시 특진을 누리진 못 했지만 일선 형사들을 지휘했던 이 아무개 계장도 증인으로 포함됐다.
이들은 최근까지도 자취를 감추고 언론을 피해 다녔다. 언론과 접촉이 있어도 그때 일에 대해서는 철저히 함구했다. 일요신문은 수개월 동안의 접촉 끝에 직접 만나거나 전화 통화를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윤 씨에게 미안함을 드러낸 형사는 심 형사가 유일했다. 하지만 이 또한 반쪽짜리에 그쳤다.
#지워지지 않는 기록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그날의 명확한 진실은 그 시각 그 장소에 있었던 그들만 안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선명한 기록은 존재한다. 1989년 7월 25일 밤 9시 30분쯤 경찰 조사를 받기 시작한 윤성여 씨에 대한 구속 영장 발부는 사흘 뒤인 7월 28일 밤 11시 45분쯤 이뤄졌다. 윤 씨는 72시간 이상 불법 구금된 상태로 조사를 받았다. 조사 자체가 불법이었다.
윤성여 씨가 30여 년 전 경찰 조사에서 쓴 자필 진술서. 사진=이종현 기자
당시 윤 씨를 취조했던 심 형사 또한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7월 30일 일요신문과 만나 “그 당시에는 의심스러우면 데리고 와서 조사하고, 통상 업무 처리가 다 그랬다”고 답했다. 당시 13년 차였던 심 형사는 ‘이춘재 8차 사건’ 수사의 핵심 인물이다. 8차 사건 이후 화성경찰서 형사계장을 역임한 남 아무개 씨는 기자와 만나 “당시엔 고문도 있었던 시절”이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큰 글씨에 삐뚤빼뚤 써 내려간 윤 씨의 자필진술서는 총 3건, A4용지 10쪽 분량이다. 심 형사는 최 형사가 단독 취조해 자필진술서를 받아왔고, 그를 바탕으로 첫 진술 조서를 작성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진술 조서는 허위로 꾸며졌을 가능성이 크다.
진술 조서는 묻고 답하는 문답형식으로 작성돼 있다. 이를 작성한 심 형사는 기자와 만나 ‘윤 씨를 앞에 두고 실제로 물어가면서 조사했느냐’는 질문에 “그럼 그렇게 해야지, 임의대로 쓰나. 그건 아니지. 그럼 내가 허위 공문을 작성하느냐”라고 반문했다. 하지만 일요신문이 입수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심 형사는 지난해 12월 10일 검찰 조사를 받을 땐 “사실은 최 형사가 건네준 진술서와 기존에 있던 수사보고서 내용 등을 바탕으로 하여 제가 조서를 친 다음에 출력해서 윤성여에게 열람을 하도록 해줬다”라고 말했다.
또 진술 조서엔 윤 씨가 일하던 공업사 주인의 남편인 홍 아무개 씨가 함께 입회했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윤 씨의 기억엔 보호자나 법률 조력자와 함께 조사를 받은 적이 없다. 홍 씨 또한 윤 씨의 자백 녹음을 들려주고 서명하라는 경찰의 말에 따랐을 뿐 진술 조서 작성 과정에 참여한 적은 없다고 기억한다. 이에 심 형사는 “홍 씨가 있었으니까 그렇게 기재돼 있는 거지. (홍 씨가 참여한 적이 없다는 것은) 그게 말도 안 되는 거지”라고 잘라 말했다.
#난 잘 모른다…죽은 최 형사가 다 했다
폭행이 관행이던 시절을 지나온 형사들은 당시 폭행 사실을 극구 부인했다. 일선 형사들을 지휘했던 이 계장은 7월 29일 기자와 만나 “아는 게 없다”며 당시 화성경찰서에 근무했던 사실 자체를 부정하기도 했다. 이 계장은 지난해 12월 9일 이 사건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았다.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이 계장은 “강압수사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저희들은 피의자의 인권, 형사소송법 준수만을 강조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일선 형사들을 지휘했던 화성경찰서 형사계장 이 아무개 씨. 기자와 만나 자신은 당시 화성경찰에서 근무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하며 관련 내용에 대해 아는 게 없다고 주장했다. 사진=박현광 기자
1989년 7월 25일 밤 9시가 조금 넘어 경찰서에 붙잡혀 온 윤성여 씨에 대한 본격적인 취조는 자정 무렵 시작됐다. 당시 수사 기록에 따르면 취조실에 4명의 형사가 있었다. 심 형사, 최 형사, 장 형사, 이 형사 등이었다. 윤 씨는 이튿날인 7월 26일 새벽 5시 40분쯤 범행을 자백하는 자필진술서를 썼다. 윤 씨는 취조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다.
“최 형사뿐만 아니라 다른 형사들도 여러 명 같이 있었는데, 조사받는 중에 쪼그려 뛰기, 앉아 일어서를 시켰던 건 기억나요. 내가 다리가 불편해 처음에 못 하겠다고 하니까 경찰관 중 누군가가 발로 걷어찼어요. 내가 한번 해보려고 하다가 한 번도 제대로 못 하고 바닥에 쓰러지니까 같이 있던 경찰관 중에 한 명이 나를 때렸던 기억은 명확합니다. (자필진술서를 쓸 때) 내 앞에 경찰관 누군가가 마주 보고 앉아서 내용을 불러주면서 ‘이렇게 네 글씨로 써라’라고 했어요. 그렇지만 내가 당시 초등학교 3학년도 제대로 마치지 못했기 때문에 맞춤법도 잘 모르고 혼자 힘으로는 진술서를 작성할 수도 없어요.”
산 사람은 죽은 최 형사를 가리켰다. 최 형사와 한 조를 이뤘던 심 형사는 최 형사를 폭행의 주범이라고 했다. 심 형사는 “최 아무개가 윤성여를 두 시간인가 세 시간인가 그건 기억이 잘 안 나. 따로 데리고 나간 뒤에 들어와서 자백을 받은 건 맞아”라며 “사건이 검찰에 송치되고 난 뒤에 최 형사가 자기가 (윤 씨를 따로 취조하는 과정에서) 두세 대 때렸다고 말해서 아는 거야”라고 설명했다.
당시 함께 취조실에 있었던 장 형사는 7월 28일 기자와 통화에서 “나와 이 형사는 구증반(보충수사나 외부수사 담당)이라 윤성여 체포한 날에서 다음 날로 넘어가는 새벽부터는 함께 있지 않아 아는 게 없다”고 입을 닫았다. 지난해 12월 9일 검찰 조사에선 장 형사 역시 “최 형사가 단독으로 자백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당시 윤성여 씨 취조를 전담하고 첫 진술 조서를 작성한 심 형사. 당시 형사들 가운데 유일하게 윤 씨에게 미안한 감정을 내비쳤다. 사진=박현광 기자
당시 최 형사는 2년 차 신임 순경에 불과했다. 신임 순경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를 2~3시간 동안 따로 데려가 조사했단 얘기가 된다. 심 형사는 이를 두고 “최 아무개가 윤성여 음모를 처음 채취해서 위에 올린 거야. (최 형사의) 주공인 거지 주공. 그 당시에도 내가 잡았으면 내가 책임지고 조사해서 자백 받고 그러는 거지. 아니, 내가 잡았는데 딴 사람이 와서, 경장이 와서 ‘내가 하겠습니다’ 한다고? 그건 못 하는 거야”라고 덧붙였다.
실제 최 형사는 윤 씨 체포 3개월 전인 1989년 4월 8일 윤 씨의 음모를 최초로 채취해 국과수 감정을 의뢰했다. 당시엔 김 형사와 같은 조였는데, 이후 심 형사와 같은 조가 됐다. 김 형사 또한 윤 씨 취조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최초 음모 채취한 공을 인정받아 특진했다. 공교롭게도 윤 씨의 음모를 최초로 채취한 두 형사는 현재 고인이다.
#결정적 증거였던 국과수 감정 결과의 조작
윤 씨를 8차 사건 범인으로 몰고 간 결정적 증거였던 국과수 방사성동위원소 체모 감정 결과가 조작됐다는 사실은 수원지방검찰청이 지난해 12월 확인했다. 검찰 조사 결과, 사건 현장에서 나온 체모 성분과 윤 씨의 체모 성분이 불일치했다.
당시 형사들은 1989년 6월 29일 윤 씨의 체모에 대한 방사성동위원소 분석을 국과수에 의뢰했다. 결과는 같은 해 7월 24일 경찰에 통보됐다. 이때 국과수의 감정서 의견은 윤 씨의 체모 성분이 증거 1호 체모 성분과 일치한다는 의견이었다. 이를 토대로 윤 씨가 범인으로 몰렸다.
2019년 12월 11일 수원지방검찰청 브리핑실에서 이진동 2차장 검사가 화성연쇄살인 8차사건 재심과 관련한 브리핑 도중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박현광 기자
하지만 수원지검은 지난해 12월 1989년 7월 24일 작성된 국과수 감정서에 사용된 증거 1호(체모)는 1989년 3월 7일 원자력연구원이 국과수 의뢰를 받아 분석한 사건 현장 체모 성분과 달랐다고 했다.
검찰은 현장 음모 성분 수치는 원자력연구원이 분석 장비 테스트를 위해 쓰는 일반인 음모의 성분 수치였고, 윤 씨 음모 성분 수치는 다른 용의자의 것이었다고 판단했다. 실제 사건 현장 체모에서 나온 칼슘(Ca), 염소(Cl)가 각각 800ppm, 1527ppm인데 반해 윤 씨 체모에서 나온 칼슘(Ca), 염소(Cl)는 각각 307ppm, 170ppm이었다. 검찰은 당시 국과수가 사건과는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의 음모 성분 수치를 활용해 편차가 크게 나왔을 때 큰 수치는 낮추고, 낮은 수치는 높이는 방법으로 두 음모 수치가 비슷하도록 임의로 편차를 줄였다고 밝혔다.
심 형사, 장 형사 그리고 이 계장은 이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했다. 직접 성분 분석표를 보지도 않았고, 결과만 구두로 전해 들었다고 주장했다.
심 형사는 “검찰 조사 때(2019년 12월) 처음 본 거지. 그걸 보고 어이가 없는 거지. 그거를 여태껏 몰랐어. 불일치하면 범인이 아닌데 어떻게 조사를 해? 그 당시에 우리는 말단에서 조사만 하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고 했을 땐데,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알아. 우리는 모르지”라고 했다. 윗선에 속했던 이 계장도 검찰 조사에서 “감정 결과 끝에 있는 ‘동일인의 음모로 볼 수 있음’ 이런 내용만 알고 있다. 동일이라는 결과 부분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라고 답했다.
심 형사는 20년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윤 씨에 대해 미안함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지금이랑 시대가 달랐잖아. 게다가 증거(체모 감정 결과)가 다 있었고. 어떻게 해서든 범인을 잡아야 하는 강박도 있는 거고. (윤 씨에게) 당연히 미안하지. 내가 만나서 사과할 마음도 있고, 법정에 가서 증언할 때 그 당시에 솔직히 말해서 잠 안 재우고 그런 건 잘못했다. 그런 얘기 할 수 있어.”
심 형사와 장 형사는 8월 11일 이춘재 8차 사건 재심 재판에 증인 신분으로 나와 증언할 예정이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