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기사 과로사·인권침해 관련 질문에 기계적 답변…송옥주 위원장 “반성 전혀 없다” 일침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 이후 과로사로 추정되는 택배기사가 13명에 이르는 가운데, ‘택배기사 과로사’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의 화두로 떠올랐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의 증인 신청으로 쿠팡 자회사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의 엄성환 전무는 10월 27일 국감장에 나왔다.
10월 26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가 있었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 이후 과로사로 추정되는 택배기사가 13명에 이르는 가운데, ‘택배기사 과로사’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의 화두로 떠올랐다. 환노위 위원들은 ‘택배 기사님들! #늦어도_괜찮아요’ 문구를 들고 나왔다. 사진=연합뉴스
변호사를 대동한 엄성환 전무는 감사위원들의 질의에 국어책 읽듯 준비된 답변을 했다. 환노위 위원들은 질의 시간 내내 직원 과로사 여부, 유가족에 대한 사과 의사, 코로나19 방역 책임 인정 여부 등을 엄성환 전무에게 물었다. 임종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올해 쿠팡에서 2명의 택배노동자가 사망했다. 말할 것도 없이 이는 쿠팡의 책임이다”라고 말하자 엄성환 전무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관련 기관에서 조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답했다.
이어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칠곡물류센터에서 사망한 노동자 과로사인가 아닌가”라고 묻자 엄성환 전무는 앞서와 같이 “과로사에 대한 부분은 근로복지공단에서 판단하는 문제”라고 했다. 강 의원이 “그런데 왜 과로사가 아니라고 보도자료를 냈느냐”고 따져 묻자 엄 전무는 “과로사가 아니라고 보도자료를 낸 게 아니라 사실에 입각한 (보도자료를 냈다)”고 말했다.
쿠팡을 증인 신청한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엄성환 쿠팡 풀필먼트서비스 전무에게 질의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에 쿠팡은 국감이 있던 바로 다음 날인 10월 27일 설명 자료를 내고 “근로기준법에 따른 고인의 주당 근무시간은 평균 44시간이다. 가장 많이 근무했을 때 주 52.5시간 근무했다”며 “대구물류센터 단기직 사원의 사망과 관련된 사실 왜곡을 중단해 달라”고 주장했다.
쿠팡은 물류센터 직원의 코로나19 확진 사실을 숨겨 피해를 키웠던 점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강은미 의원은 “코로나19에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가 84명 감염됐고, 지역 감염자가 68명, 총 152명이 감염됐다”며 “한 노동자는 자신으로 인해 남편이 감염됐고, 그 남편이 두 달 동안 뇌사상태다. 잘못 없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엄성환 전무는 “저희 회사는 정부 방역 지침에 따랐다”고 주장했다.
엄성환 전무의 말과는 달리 쿠팡은 지난 5월 부천신선물류센터에서 확진자가 나왔지만 이를 숨기고 나머지 직원들을 정상 근무하게 하면서 코로나19 피해를 키웠다. 쿠팡은 5월 23일 오후 1시 15분과 다음 날인 5월 24일 오전 7시 5분에 직원의 확진 판정 사실을 통보받았지만 다음 날인 5월 25일 오전·오후 조 인원들을 정상 근무하게 했다.
쿠팡 칠곡 물류센터에서 근무한 뒤 집에서 갑작스럽게 숨진 고 장덕준 씨 어머니 박미숙 씨가 10월 26일 고용노동부 국정감사가 열린 정부세종청사 고용부에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의원들과 면담을 갖고 아들이 근무했던 일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미향 의원은 “화장실 갈 때 이름과 전화번호를 기록해야 하는 인권침해가 이뤄지고 있다. 또 한 시간당 몇 개를 처리하는지 UPH를 측정한다. 사람이 설비도 아닌데 설비가동률이라는 용어를 쓰면서 마치 사람을 기계처럼 이용하는 것도 인권침해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엄성환 전무는 “UPH는 물류회사에서 사용하는 일반적인 좌표로 사용하고 있다”라고 답하면서도 앞서 지적한 노동자 화장실 통제 부분과 관련해선 답을 피했다. 쿠팡은 10월 27일 낸 설명 자료에서 “휴게시간이 보장돼 있고 화장실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과를 요구하는 위원들의 직접적인 요구에 쿠팡은 끝까지 버텼다. 강은미 의원은 “스물일곱 살이 야간 근무한 뒤 쓰러져서 죽었다. 그런데 회사는 우리 책임이 아니다 버티고 있다. 고인과 유가족에게 사과하길 바란다”고 요구했다. 엄성환 전무는 “고인과 그의 가족 분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달 드린다”고 답했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위로를 드린다고 하는데 사과 뜻이죠?”라고 묻자 엄성환 전무는 “심심한 애도를 표한다”고 버텼다. 윤준병 의원이 다시 한 번 “그게 사과의 뜻이죠?”라고 물었지만 엄성환 전무는 “말씀 그대로 이해해달라”고만 말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위원들이 10월 26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국정감사 점심시간 중 10월 12일 쿠팡 칠곡물류센터에서 근무한 뒤 집에서 갑작스럽게 숨진 고 장덕준 씨 유가족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 장 씨의 아버지가 무릎을 꿇고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달라고 애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엄성환 전무가 준비해온 답변만 하다 보니 국감장에 12초 동안 정적이 흐르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했다.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망한 27세 노동자를 가리키며 “계산을 해보니까 고인의 주 근무시간이 58시간, 62시간, 60시간 이런 경우가 허다하다. 52시간이 넘는 경우만이 아니라, 1년 내내 야간 근무하는 건 신체상으로 굉장히 큰 어려움이다, 교대제를 적극 도입할 의향은 없나”라고 물었다.
이에 엄성환 전무는 “지금 고인은 단기직 근무자로서 본인이 근무 시간과 근무 날짜를 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며 엉뚱한 답변을 내놨다. 양이원영 의원이 보충 설명을 기다리자 엄성환 전무는 13초 동안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가 개선할 점이 없는지 찾아보고 개선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이에 양이원영 의원 또한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사업장에서 스물일곱 살짜리가 죽어나가는데, 그렇게 답변하면 되느냐”며 지적했다.
쿠팡과 관련한 질의가 끝나자 보다 못한 송옥주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이 엄성환 전무에게 일침을 날렸다. 송옥주 위원장은 “쿠팡이 택배 노동자 사망 사고뿐만 아니라 코로나19 방역 대책과 관련해서도 문제가 많다고 들었다”며 “잘못 알고 있다면 진실규명을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송 위원장은 “증인께서 답변하는 태도를 온 국민이 보고 있다. 이렇게 불성실하게 답변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사과나 반성이 전혀 없다고 판단된다. 사람을 우선하고 노동을 우선해서 일을 해야 한다. 기계적으로 답변하면 안 된다. 쿠팡에 대한 기업 이미지가 많이 훼손됐다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엄성환 쿠팡풀필먼트서비스 전무가 10월 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쿠팡 칠곡물류센터에서 근무 후 집에서 숨진 고 장덕준 씨와 관련된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날 쿠팡 국감을 바라본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한 전·현직 노동자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고건 쿠팡발코로나19피해자모임 대표는 “쿠팡의 기계적 답변은 노동자들에게 일상이었다. 노동자들의 요구엔 형식적으로 법망을 피해 가는 답변을 내놓던 쿠팡의 민낯이 드러났다. 노동자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 태도가 노동자들이 가장 분노했던 지점”이라고 전했다.
앞서 강은미 의원이 쿠팡발 코로나의 피해자로 언급한 전 아무개 씨는 “쿠팡이 내게 했던 말을 국감장에서 똑같이 하더라. 하지만 다른 점은 나와 통화할 땐 여유가 넘치더니 의원님들 앞에선 잔뜩 겁먹은 것 같이 말하더라”며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할 줄 아는 기업이면 애초에 이런 문제를 안 만들었을 것”이라고 답했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