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자회사 CLS에 편입 예정’ 쿠친들에 공지…쿠팡 “택배 전환돼도 주 52시간 근무 적용”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과로로 사망했다고 추정되는 택배기사가 13명에 다다르는 가운데, 쿠팡이 ‘쿠팡친구’(쿠친·구 쿠팡맨)의 택배기사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일요신문DB
신지혜 기본소득당 대표에 따르면, 쿠팡은 10월 11일 쿠팡맨에게 보낸 공지에서 “쿠팡 로지스틱스서비스 재허가 추진에 대한 안내를 드린다”며 “송파 지역을 포함한 5개 지역의 캠프부터 CLS로 전환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어 쿠팡은 “CLS는 타 택배사와는 달리 직고용을 기본으로 운영하며, 이는 쿠팡과 동일하다”며 “물론 CLS는 국토교통부의 지정 택배사 심사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허가를 받지 못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단, 허가를 받게 되어 CLS 전적이 이뤄진다면 동의서를 받을 계획이며, 동의하지 않은 직원은 타 캠프로 배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토부 지정 택배사 심사를 통과한다는 건 ‘택배 면허’(육상운송사업자 면허)를 발급받는 것을 뜻한다. ‘택배기사 과로사’ 문제로 쿠팡 자회사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의 엄성환 전무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증인으로 채택되자, 쿠팡은 택배운송사업자가 아닌데 증인으로 채택돼 억울하다는 입장을 견지했지만 그 뒤에선 택배운송사업자를 준비하고 있었던 셈이다.
쿠팡은 과거에도 지금과 같은 시도를 했었다. 물류 자회사 CLS를 앞세워 국토부로부터 택배 면허를 따낸 쿠팡은 2018년 10월 대구 지역 쿠친을 CLS에 강제로 편입시켜 10개월 동안 운영했다. 당시 근로기준법 개정에 따른 주 52시간을 피해가기 위한 꼼수가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지자 쿠팡은 CLS에 편입된 배송 인력을 다시 쿠친으로 고용한 뒤 2019년 8월 택배 면허를 국토부에 반납했다(관련기사 [단독] 쿠팡맨의 택배기사 전환 강제하는 쿠팡).
쿠팡은 10월 11일 쿠팡맨에게 보낸 공지에서 “쿠팡 로지스틱스서비스 재허가 추진에 대한 안내를 드린다”며 “송파 지역을 포함한 5개 지역의 캠프부터 CLS로 전환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사진=신지혜 기본소득당 대표 제공
강은미 정의당 의원에 따르면 쿠팡은 최근 다시 국토부에 택배 면허를 신청했다. 물류 자회사 CLS를 부활시키겠다는 뜻이다. 택배 면허를 받은 CLS는 택배운송사업자로서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화물자동차법) 3조에 따라 화물운송자격증이 있는 택배기사를 고용해야 한다. 택배기사는 근로기준법상 59조 특례법 적용을 받아 노사 합의 하에 60시간 이상 일할 수 있다. 특례법에 따라 육상운송업, 수상운송업, 항공운송업, 보건업, 운송 관련 서비스업 등 5개 업종은 회사가 근로자 대표와 서면합의를 하면 법정 근로시간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업계 관계자들은 쿠팡이 쿠친을 택배기사로 전환하려는 시도를 결국 배송 비용 절감을 꾀하겠다는 의도로 해석한다. 도·소매 판매물류업으로 분류돼 주 52시간 근로제 적용을 받고 있던 쿠팡은 그동안 쏟아지는 택배 물량을 처리하기 위해 ‘쿠팡플렉스’를 도입해왔다. 일반인을 활용한 쿠팡플렉스의 물건 한 개당 처리 단가는 쿠친의 단가와 비교해 월등히 높다고 알려져 있다. 결국 쿠친을 물류 자회사 CLS 택배기사로 전환해 늘어난 근무 시간 동안 현재 쿠팡플렉스가 처리하는 물량을 처리하게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쿠팡 관계자는 과거 일요신문에 “배송 물량 증가에 비해 쿠팡맨은 유지도 안 되고 뽑아도 퇴사하는 경우가 많아 쿠팡플렉스를 대안으로 삼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는 향후 택배사업자로서 제3자 물류까지 발을 넓힐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인력을 늘리는 것이 가장 적절한 방식이라는 것을 모르진 않지만 적자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택배사업 전환은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지역의 한 쿠팡친구는 “플렉스의 물량이 넘어올 게 뻔하고, 그렇게 되면 정말로 하루 12시간 이상 근무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 걱정”이라며 “쿠친 때와 같은 대우를 해준다고 해도 당연히 쿠팡에 직고용된 쿠친으로 남고 싶다. 동의서를 쓰지 않으면 다른 캠프로 보내겠다는데 이건 그만두라는 말”이라고 말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국정감사 증인으로 쿠팡 자회사 쿠팡풀필먼트서비스의 엄성환 전무를 증인으로 채택했다. 강 의원은 “그동안 쿠팡은 직접 매입한 상품을 직접 고용한 쿠팡맨을 통해 배송, 화물자동차법을 피해왔다. 하지만 쿠팡의 행태는 택배운송사업자와 다를 바 없었다”며 “쿠팡은 뒤에서 택배운송사업자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번 국감 증인으로 나서기에 충분하다”고 꼬집었다.사진=이종현 기자
신지혜 기본소득당 대표는 “쿠팡이 항상 주장해왔던 것이 배송 인력을 직고용해 주 52시간 근무를 준수한다는 것이었다. 배송 인력이 자회사로 넘어가게 되면 주 52시간 근무제가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플렉스가 감당해오던 업무를 자회사 소속의 택배기사가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택배기사의 안타까운 죽음이 이어지면서 ‘택배기사 과로사’가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국정감사의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국정감사 증인으로 쿠팡 자회사 쿠팡풀필먼트서비스의 엄성환 전무를 증인으로 채택했다. 일각에선 택배운송사업자가 아닌 쿠팡 관계자를 증인으로 부르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지만, 위 지적은 쿠팡이 택배운송사업자를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힘을 잃는 모양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그동안 쿠팡은 매입한 상품을 직접 고용한 쿠팡맨을 통해 배송하는 방식으로 화물자동차법을 피해왔다. 하지만 쿠팡의 행태는 이미 택배운송사업자와 다를 바 없었다”며 “쿠팡은 뒤에서 택배운송사업자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번 국감 증인으로 나서기에 충분하며 물류센터의 산업안전 문제도 다룰 예정”이라고 꼬집었다.
다만 쿠팡 관계자는 쿠친의 택배기사 전환이 배송 인력들을 과로의 위험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한 입장을 묻는 말에 “CLS로 전환된 쿠팡친구들도 직고용, 주 52시간 근무 등 지금과 동일한 조건으로 근무하게 된다”고 답했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