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금융 지주사 부회장직 신설 움직임…하나 함영주 부회장 재판 핵심 변수, 우리·KB는 뚜렷한 2인자 없어
하지만 물밑을 들여다보면 사정이 조금 다르다. 금융지주 회장 상당수가 각종 재판을 받고 있는 데다, 당국이 ‘셀프 연임’을 손보겠다는 의지를 거두지 않고 있어 돌발변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인지 최근 대형 금융그룹에서는 ‘회장 유고’에 대비한 후계자 키우기 작업이 한창이다.
각 금융지주 은행 본점 전경. 사진=일요신문DB·연합뉴스
최근 금융권에서 가장 관심을 모으는 금융그룹은 단연 신한이다. 전례가 없던 ‘지주 부회장’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신한금융은 10년여 전 이른바 신한사태(라응찬 전 회장과 신상훈 전 사장 간 권력다툼) 이후 ‘2인자’를 두지 않고 있다.
게다가 부회장은 과거 신한생명 등 일부 계열사에나 있던 자리였다.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인 지주사는 과거에는 회장-사장 체제였고, 신한사태 이후에는 줄곧 ‘회장 1인 천하’로 유지돼 왔다. 1인자를 보좌하라고 만든 자리가 오히려 권좌를 위협하는 리스크로 돌변하는 상황을 겪었기 때문이다. 신한금융은 2010년까지 지주 사장직을 뒀으나, 신한사태 이후 지주 사장을 없앴다.
그런 신한금융이 갑자기 지주사 부회장직을 신설하려고 하자 금융권은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신한금융그룹의 규모가 과거에 비해 커졌다는 점이 이 같은 움직임의 배경으로 꼽히지만, 쟁쟁한 각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오히려 다가올 회장 교체 시기에 대비해 과거와 같은 내분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목적이 아니냐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현재 가장 유력한 신한금융 차기 회장 후보는 진옥동 신한은행장이다. 핵심 계열사 CEO로 그룹 내 권력 서열로 따진다면 2인자에 해당한다. 시야를 조금 넓혀보면 임영진 신한카드 사장이 눈에 띈다. 계열사 매출 순위 등으로 따진다면 ‘3인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를 들여다보면 묘한 대목이 발견된다. 진옥동 행장과 임영진 사장은 모두 신한금융지주 부사장을 거치며 경영자 코스를 밟은 엘리트다. 그런데 임 사장은 2016년 1월부터 2017년 3월까지 신한지주 부사장을 맡았고, 그의 후임으로 진 행장이 2018년 말까지 부사장직을 수행했다. 임 사장이 지주 부사장일 당시 진 행장은 신한은행 부행장으로 사실상 임 사장의 지휘를 받는 입장이었다. 나이도 임 사장은 1960년생, 진 행장은 1961년생으로 임 사장이 한 살 위다.
이런 상황에서 부회장 자리를 만드는 만큼 향후 신한금융의 권력구도가 어떻게 달라질지는 쉽사리 예측하기 어렵다. 현재 서열대로라면 진 행장이 회장, 임 사장이 부회장이 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다소 특수한 두 사람의 관계를 고려하면 거꾸로 임 사장이 회장이 되고 진 행장이 부회장이 되는 그림도 배제할 수는 없다.
문제는 어떤 경우든 권력 다툼이 재발할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싸움을 막자고 만든 제도가 오히려 분쟁의 불씨를 품는 셈이다. 금융권 한 고위 관계자는 “신한금융은 더 이상 라응찬 회장 라인이 요직을 독식하는 시대가 아니다”라면서 “진 행장의 대항마를 키우려는 의도로 보이는데, 자칫 헤게모니 다툼으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나금융 차기 회장 1순위로 꼽히는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왼쪽)과 최근 다크호스로 거론되는 지성규 하나은행장. 사진=최준필 기자
하나금융지주 후계 구도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현 김정태 회장 임기는 올해 말까지인데, 하나금융은 내규에는 ‘재임 기간 회장의 나이가 만 70세를 넘겨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다. 68세인 김 회장이 내년에 연임을 하더라도 1년밖에 재임할 수 없는 셈이다. 더구나 김정태 회장은 이미 “추가 연임을 할 생각이 없다”는 뜻을 밝혔다.
문제는 차기 회장 후보가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함영주 하나금융 부회장이 단연 1순위 후보지만, 그는 채용비리 의혹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불구속기소돼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게다가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로 금융당국의 ‘문책경고’도 받은 상태다. 이 역시 법원의 효력정지는 얻어냈지만 행정소송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두 사건에 대한 법원 판단에 따라 차기 구도가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는 셈이다.
함 부회장이 안 될 경우 하나금융투자 사장을 겸하고 있는 이진국 하나금융 부회장이 서열상 2순위지만 경쟁 그룹인 신한금융 출신에다 그룹 전체를 장악하기에는 존재감이나 경험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평가가 많다. 지성규 하나은행장의 이름도 거론되지만 하나은행 안팎에서는 연임 가능성에 더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런 상황들 때문에 하나금융은 ‘포스트 김정태’ 체제의 밑그림을 그리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 금융권 다른 고위 관계자는 “과거 김승유 전 회장에서 현 김정태 회장으로 권좌의 주인이 바뀌면서 하나금융의 주류가 바뀌는 등 내부 권력구도가 큰 변화를 겪었다”면서 “김정태 회장의 고민이 많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들뿐 아니라 우리금융과 KB금융도 후계 문제를 놓고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외풍’에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 우리금융은 뚜렷한 2인자가 없는 상태다. 손태승 회장은 라임 펀드 판매회사 제재 결과에 따라 진퇴가 갈릴 수도 있는 상황이다.
1순위는 권강석 우리은행장이지만 변수가 적지 않다. 우선 내부 경쟁자들이 만만치 않다. 권 행장과 함께 은행장 자리를 놓고 경쟁했던 김정기 우리금융 부사장, 지주사의 유일한 등기이사인 이원덕 우리금융 부사장 등이 버티고 있다. 그리고 은행권답게 ‘출신’이 거론된다. 권 행장과 김정기 부사장은 상업은행 출신이고 이원덕 부사장은 한일은행 출신이다. 손 회장도 한일은행 출신이다.
그나마 KB금융은 금융그룹 중 가장 안정적인 상태로 평가된다. 지난 9월 윤종규 회장이 3연임을 확정지으면서 후계 문제는 사실상 관심에서 멀어졌다. 당초 지주 사장직 신설 가능성도 제기됐으나 윤 회장 연임으로 수면 아래로 내려간 상태다. 허인 KB국민은행장까지 연임에 성공하면 당분간 이동철 KB국민카드 사장, 양종희 KB손해보험 사장 등 트로이카 시대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