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장 임기 변경, 행추위원장 자리 놓고 마찰…이동빈 현 행장 연임 여부 ‘정부 뜻’이 관건
지난 9월 25일 마감된 차기 챙장 공개 모집에는 수협은행 전현직 임원, 외부 출신 인사 등 5명이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중 1차 면접 대상자를 추려 10월 12일 면접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동빈 현 수협은행장은 오는 10월 24일 임기가 만료된다.
겉으로만 보면 큰 문제없이 최고경영자(CEO) 선임이 이뤄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만만찮은 수싸움이 전개되고 있다. 민간은행도 아니고 국책 금융기관도 아닌, 어찌보면 ‘어정쩡한’ 위치에 있는 수협은행의 정체성이 대주주와 정부 간의 힘겨루기를 불러왔다.
차기 수협은행장을 뽑는 작업이 진통 끝에 출발선에 섰다. 사진=최준필 기자
수협은행은 지난 9월 11일 행장추천위원회(행추위)를 열었다. 이동빈 행장의 임기를 고려할 때 다소 늦은 감이 있는 출발이다. 수협 정관에 행장 임기 만료일 60일 전부터 40일 전 사이에 경영승계 절차를 개시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는 점을 감안하면 가까스로 규정을 지킨 셈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했다. 수협은행이 행장 임기를 바꾸는 내용의 정관개정안을 들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동빈 행장을 포함해 기존 수협은행장은 임기가 3년이다. 연임 여부에 대해서는 별다른 규정이 없었다. 성과에 따라 연임이 결정되는 이른바 ‘열린 규정’이었다. 그런데 개정안은 행장 임기를 3년에서 2년으로 줄이고 연임 규정을 포함시켰다. 개정안에는 ‘은행장, 사외이사 및 비상임이사의 임기는 2년으로 하되, 각각 연임할 수 있다’는 내용이 명시됐다.
수협은행 정관 변경은 해수부 인가 대상이다. 수협은행은 행추위 직전 이사회와 임시주주총회를 열어 해수부에 인가를 요청해 정관 변경을 승인받았다, 수협은행이 행장 임기를 손질한 이유는 ‘책임 경영 강화’ 차원이다. 개정된 정관은 차기 행장부터 적용된다.
예정에 없던 행장 임기 변경이 안건으로 올라오면서 행추위는 시작하자마자 삐걱댔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 측 인사들이 행추위원장 자리를 맡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에 수협은행은 위원장은 당연히 최대주주인 자신들의 몫이라고 맞서면서 파열음이 났다.
결국 이사회 투표 결과, 결국 행장 임기는 2년으로 줄었다. 수협은행 이사회는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예금보험공사, 해양수산부 등 정부 측 이사들과 수협중앙회 측 이사 2명, 이동빈 수협은행장 등 7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 가운데 기재부와 금융위, 예보는 반대표를 던졌지만 해수부 측 이사와 수협중앙회 측 이사 2명, 이동빈 현 수협은행장이 찬성하면서 행장 임기 조정안은 4 대 3으로 통과됐다. 해수부는 부처 특성상 수협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데다가 이미 사전인가 과정에서 의견조율을 마친 상태였기 때문에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1차 회의에서는 정부 측 이사들이 밀렸지만, 2차 회의에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 9월 17일 열린 두 번째 행추위에서는 기재부 추천 사외이사인 김윤석 전 기획예산처 재정기획관이 행추위원장으로 뽑혔다. 장군멍군을 주고받은 양측은 향후 진행될 은행장 선임 과정에서 본격적인 힘대결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수협중앙회와 정부가 수협은행을 놓고 줄다리기를 이어가는 배경에는 수협은행의 독특한 지배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기본적으로 수협은행은 발행주식 100%를 수협중앙회가 소유하고 있는 완전 자회사다. 인사권을 포함해 경영전반에 관해 수협중앙회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다. 문제는 수협중앙회가 금융위기 당시 정부로부터 공적자금을 수혈받았다는 점이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사는 금융위와 예보 측이 파견한 인사로부터 경영 현황을 관리·감독받는다. 이로 인해 수협은행에 대한 중앙회의 영향력은 제한되면서, 이에 대한 불만이 정부와 충돌로 이어졌다. 특히 CEO를 포함한 경영진 선임 과정에서는 파열음이 외부로 노출되면서 경영공백까지 발생하기도 했다.
이동빈 현 행장 선임 과정이 대표적인 사례다. 2017년 새로운 행장 선임을 앞두고 정부와 중앙회는 서로 자신의 입맞에 맞는 은행장 후보를 내세우며 양보 없는 일전을 벌였다. 중앙회와 정부 측 의견이 통일되지 않아 6개월 넘게 행장 자리가 비어있는 파행 경영이 이어졌고, 3번의 공모를 거친 뒤에야 겨우 이동빈 행장이 선임됐다. 올해 1월에는 감사 자리를 놓고 중앙회와 정부가 또 맞섰고, 네 차례의 공모 끝에 겨우 홍재문 은행연합회 전무를 선임할 수 있었다.
이번 차기 행장 선임과정에 수협중앙회가 은행장 임기를 줄이고 연임 조항을 신설한 것도 이런 구조와 맞닿아있다는 분석이다. 은행장의 ‘입지’에 개입함으로써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행추위원은 기재부·해수부·금융위 추천 사외이사 3명, 수협중앙회 추천 2명 등 5명으로 구성된다. 은행장이 되려면 행추위의 3분의 2, 즉 5명 중 4명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사실상 정부의 허락을 얻지 못하면 은행장 선임이 불가능한 셈이다.
금융권은 수협중앙회의 구상과 정부의 의중이 일치할 수 있을지 의문을 품고 있다. 금융권 한 고위 관계자는 “행추위원장을 기재부 추천 인사가 꿰찬 것을 보면 정부의 뜻이 무언지 읽을 수 있지 않겠나”라면서 “수협은행장을 민간 출신 CEO가 이어갈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고 내다봤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