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전체가 ‘잡화 도매상’ 캠프 주문량으로 당락 맞혀…2016년 트럼프 당선 예측, 이번엔 틀렸지만 근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이우지수 발원지는 중국 저장(浙江)성 중부에 위치한 이우(义乌)시다. 이우시는 ‘세계의 슈퍼마켓’이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거대한 잡화 생산라인을 갖춘 도시다. 전 세계 잡화 중 30%가 이우시에서 생산된다. 중국 현지에선 이우시를 “도시 전체가 도매상가나 다름없다”고 평가한다.
미 대선을 두 달 남짓 앞두고 있던 2020년 8월 29일 싱가포르 언론매체 ‘연합조보’는 “중국 저장성 이우시 상인들이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승리를 예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우시 상인들은 ‘트럼프 2020’, ‘미국을 계속 위대하게’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면서 바이든 후보 주문량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숫자의 상품이 수출됐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중국 소식통은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2016년 미국 대선 때도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공화당 후보를 압도했지만, 결과는 트럼프의 대역전승이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우시장은 전 세계 잡화류의 30% 이상을 생산하는 거점이다. 어느 나라건 선거철엔 잡화류 수요가 많아진다. 미국 대선은 이우시장 상인들에게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각 후보의 주문량이 어느 정도인지 그 누구보다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이 이곳 상인들의 특징이다. 결국 주문량이란 수치를 기반으로 한 그들의 직감은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단순히 중국 상인들이 수주한 선거용품 주문량에 따라 대선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다소 터무니없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2016년에 미 대선에서 이우지수가 미국 현지 여론조사보다 높은 적중률을 보이자, 이우시장 상인들의 어깨가 으쓱해졌다는 후문이다. 복수 중국 언론은 ‘이우지수’라는 신조어까지 만들면서 이우시장 선거용품 주문량을 미 대선 결과 예측 바로미터 역할을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세계의 슈퍼’라고 불리는 중국 저장성 이우시의 한 도매상가. 사진=연합뉴스
또 다른 중국 소식통은 지난 10월 중순경 “이우시장 현지에선 이미 트럼프가 바이든을 이겼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 소식통은 “이우시장 상인들은 여론조사 결과는 보지도 않는다”면서 “단순히 자신들에게 들어오는 선거용품 주문 물량을 가지고 선거 결과를 예측한다”고 귀띔했다.
국내 선거 기획자 출신 한 인사는 “한국과 미국의 사정이 다르긴 하겠지만, 본질은 똑같다”면서 “선거 용품 제작에 돈을 많이 들일 수 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선거 이면에서 활발히 진행되는 ‘쩐의 전쟁’에서 우위를 점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우시장 상인들의 예측이 적중하는 이유는 선거전의 기본인 ‘물량전’에서 누가 우위를 점했는지 가장 빨리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 인사는 이우지수의 맹점도 지적했다. 그는 “선거전엔 복합적인 변수가 많다”면서 “단순히 선거용품 주문량을 두고 선거 결과를 예측하기에 미 대선은 상당히 복잡한 성격을 띠고 있다”고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사진=연합뉴스
결과적으로 ‘2020 미국 대선’에서 이우지수는 오답일 가능성이 높다. 11월 5일 기준 미 대선 개표결과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 승리가 유력하기 때문이다. 예측은 틀렸지만 이우지수를 ‘중국 상인들이 받은 주문량’ 정도로 취급하긴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이번 미 대선에서도 여론조사 결과와 무관하게 트럼프 후보가 선전한 까닭이다.
중국 현지 소식통은 “이번 미 대선에서 개표 중반까지 트럼프 후보가 유리한 상황으로 진행됐다”면서 “다시 한번 이우지수가 족집게처럼 선거 결과를 맞히나 싶었으나, 막판 바이든 후보의 뒷심이 굉장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럼에도 이우지수는 유의미한 통계 자료라고 생각한다. 미국 현지 여론조사에서 ‘바이든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여론조사가 놓치고 있던 부분이 분명 있었다. 미국 소비자들의 소비 성향을 반영한 이우지수가 그 부분을 보완한 것이 아닌가 생각도 든다. 결과론적으로만 보면 여론조사와 이우지수의 중간값에서 두 후보가 치열한 접전을 펼치지 않았나.”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