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 양강구도 흔들 친문 적자 찾기 움직임 빨라질 듯…정세균 김두관 유시민 이광재 검증대 오르나
11월 6일 오후 김경수 경남지사가 드루킹 사건과 선거법위반 항소심에서 일부유죄판결을 받은 뒤 서울고등법원 청사를 떠나고 있다. 사진=이종현 기자
여권 복수 관계자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친문계 의원 50여 명은 11월 22일 창립 세미나를 목표로 가칭 ‘민주주의 4.0 연구원’을 띄운다. 초대 원장은 도종환 민주당 의원이 맡는다. 친문 직계인 전해철 의원을 비롯해 홍영표 김종민 황희 의원 등이 참여할 예정이다. 이들은 부엉이처럼 밤낮으로 문 대통령을 지킨다는 의미로 ‘부엉이 모임’을 구성했다가, 친문 패권주의 논란에 역풍을 맞고 2018년 공식 해체했다.
당 선거기획단 간사인 정태호 의원도 민주주의 4.0 연구원에 합류했다. 친문계 싱크탱크가 사실상 제2의 부엉이 모임으로 불리는 이유다. 부엉이 모임은 전·현직 법무부 장관인 ‘조국·추미애의 호위무사’로 활약했다. 부엉이 모임에 참여한 이들은 “친문계 사조직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지만, 진보 논객인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친문계 하나회”라고 힐난했다.
현미경 검증에 나설 친문계 최대 과제는 ‘영남 후보 띄우기’다. 빨간 물결인 영남권에 파란 물결 점유율을 높일수록 민주정부 4기의 출범은 가까워진다. 특히 보수 성지인 대구·경북(TK)보다는 독재정권 시절 민주화 바람이 일었던 부산·울산·경남(PK) 후보가 친문 적자 1순위다. 김 지사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독주한 여권 대선 판을 깰 후보로 평가받았던 이유도 ‘PK 후보’라는 메리트 때문이었다.
민주정부 2·3기를 각각 완성한 고 노무현(김해) 전 대통령과 문재인(거제) 대통령도 PK 출신이다. 이 지사가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이낙연 대세론의 균열을 깬 것도 영남 주자라는 메리트가 한몫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친문계와 대척점에 섰던 이 지사의 고향이 경북 안동이라는 점도 민주당 지지층에 어필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지점은 때마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호남 필패론과 맞닿아있다. 고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제외한 호남 대선주자는 ‘필패론 프레임’에 갇혔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 아킬레스건도 호남 주자라는 점이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친문계는 대선 막판까지 영남 후보를 끊임없이 찾을 것”이라며 “여권이 비영남 후보를 내면, 보수진영에 유리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친문계의 고민도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친문계의 작은 인력풀로 김경수 대체재를 찾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김 지사를 빼면 친문계 현역 중 영남권 인사는 김두관 민주당 의원 정도다. 호남을 비롯한 비영남 후보로는 PK 갈라치기를 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친문계의 고민은 한층 깊어질 전망이다. 최근 정치 행보를 재개한 임종석 전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은 전남 장흥 출신이다. 원조 친노계로 분류되는 이광재 민주당 의원은 강원도 평창이 고향이다. 유시민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경북 경주 출신이지만 원외 인사인 데다가, 본인의 의지도 불분명한 상태다.
향후 친문계 행보의 관전 포인트는 △현미경 검증 첫 시기 △이낙연 대세론과 이재명 대망론의 선택 여부 △호남 필패론에 대한 입장 △유시민 카드 베팅 가능성 등으로 요약된다. 친문계의 김경수 대타 찾기는 내년 초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한 중진 의원은 “20대 대선의 전초전인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 전후로 움직이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친문계는 이르면 내년 4월 재보선을 기점으로 먼저 결집력을 선보이면서 존재감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11월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변수는 친문계 분화 여부다. 2년 전 민주당의 경기도지사 경선과 같은 결과를 초래할 땐 친문계 조직력은 공갈포로 전락할 수도 있다. 당시 당내 경선에선 친문 직계인 전해철(이하 득표율 36.80%) 의원이 나섰지만, 이재명(59.96%) 지사에게 무릎을 꿇었다.
진보진영 한 관계자는 “친문계도 다수가 지지하는 후보에게 쏠리는 밴드왜건(편승) 효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점이 증명된 결과였다”고 말했다. 포스트 주자가 없는 친문계도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가 운명의 최대 분수령인 셈이다. 3선인 여당 한 의원은 “서울·부산 보궐선거에서 지면 당의 지역 조직력이 무너질 것”이라며 “당장 1년 뒤 20대 대선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어 당이 전력투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친문계가 이낙연 대세론과 이재명 대망론 중 한쪽을 택할지도 관전 포인트다. 현재는 ‘관망 중’이다. 민주당 관계자들은 “이(이낙연)·이(이재명) 모두 친문계에 딱 들어맞는 스타일의 정치인은 아니다”라고 입을 모은다.
이 대표의 경우 안정감은 있지만, 결단력과 새로운 비전이 2% 부족하다는 의견이 다수다. 이 대표 리더십은 최근 논란이 됐던 1주택자 재산세·주식 양도소득세 요건을 둘러싼 당·정·청 갈등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앞서 이 대표는 정부가 애초 가이드라인으로 삼았던 공시지가 6억 원을 9억 원으로 상향 조정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 문제는 2주일 가까이 헛돌았다. 그사이 당·정·청 갈등은 확산했다. 이 과정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사의를 표명, 논란은 확산됐다.
이 문제를 매듭지은 것은 문 대통령이었다. 문 대통령은 “공시지가 9억 원이 어떻게 중저가 주택이냐”며 이 대표의 안을 사실상 비토했다. 고용진 민주당 의원은 11월 5일 MBC 라디오에 출연해 “문 대통령이 소득세법에 따르면 공시가 6억 원이 고가주택이기 때문에 그 기준이 맞는다(고 했다)”고 전했다. 내년 4월 재보선 승리를 위한 이 대표의 야심 찬 카드를 문 대통령이 직접 꺾은 셈이다. 이 대표가 ‘친문계의 데릴사위에 불과하다’는 혹평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이 지사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는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친문계와 루비콘 강을 건넜다. 최근에는 문재인 정권 비판을 자제하며 로키 행보 중이다. 원조 친노계 일부가 이 지사를 물밑 지원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 지사 측은 “이 지사가 민주당의 정신에 더 맞는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밝혔다. 이 지사 측 내부에선 친문계도 결국 지지도 높은 후보를 외면할 수 없다는 자신감이 깔렸다.
그러나 당 주류가 이 지사를 최종 낙점할지는 미지수다. 친문계 복수의 의원들은 차기 대선에서 이 지사를 지지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선뜻 답하지 못했다. 지난 대선 때 문재인 캠프에서 몸담았던 한 인사는 “친문계 다수는 (이 지사를) 여전히 비토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 지사는 친문계의 반이재명 정서를 극복하는 것이 최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친문계의 제3후보 추대론이 주목받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이 양강구도를 흔들 정치인으론 정세균 국무총리가 꼽힌다. 정 총리는 11월 10일 세종 총리 공관에서 열린 취임 300일 간담회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시대정신은 바로 통합과 포용”이라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을 향해 “자중하라”며 작심 비판했다. 바이든 시대정신을 앞세워 차기 대권 출마를 사실상 시사한 셈이다.
자신의 싱크탱크인 ‘광화문 포럼’도 조기 가동한 그는 최근 식사 정치도 재개했다. 11월 9일에는 국회 정무위 소속 여야 의원들을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으로 초청, 만찬을 했다. 여권에선 정 총리의 대권 걸음이 빨라지면서 연말·연초 개각 폭이 커질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전·현직 의원들의 세 규합도 속속 이뤄지고 있다. 다만 여권 대권의 잔혹사인 ‘호남 필패론’과 2∼3%에 불과한 낮은 지지도는 난제로 꼽힌다.
친문계가 정 총리마저 외면한다면, 친문계의 현미경 검증이 원조 친노계로 좁혀질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전 대통령 오른팔로 불렸던 이광재 민주당 의원을 비롯해 영남권 후보인 김두관 의원, 유시민 이사장 등이 핵심이다. 다만 김 의원의 경우 2012년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문 대통령과 대척점에 섰다는 이유로 여전히 비주류에 머물러 있다. 남은 카드는 ‘이광재·유시민’이다. 당 일각에선 정치 은퇴를 한 유시민 카드를 밀려는 움직임이 여전하다. 여권 전략가로 불리는 한 인사는 “서울시장 보궐선거만 탈환한다면, 유시민 카드로 정권 재창출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