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 하락세 등 위기론 휩싸이자 정면돌파…선거 승리하면 대권가도에 유리하게 작용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1월 5일 국회에서 열린 국난극복 K-뉴딜위원회 경제본부 간담회에 참석,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민주당은 10월 31일부터 11월 1일까지 ‘당헌 개정을 통한 내년 재보궐 선거 후보공천’을 묻는 전당원투표를 실시했다. 부정부패 등 중대한 잘못이 있을 경우 공천을 하지 않는다는 당헌 개정을 묻는 투표였다. 권리당원 26%가량이 투표한 결과 86.64%가 찬성했다. 민주당은 11월 3일 당 중앙위원회에서 이를 최종 의결했다. 기존의 당헌에 ‘단, 전당원투표로 달리 정할 수 있다’는 부칙을 넣은 것인데, 2015년 문재인 대통령 당 대표 시절 만들었던 무공천 당헌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된 셈이다.
당초 민주당 내에서도 공천을 할 것이란 전망이 주를 이루긴 했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서울과 부산이라는 상징성을 감안하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선거였기 때문이다. 이낙연 대표 역시 공천 여부를 묻는 질문에 여러 차례 연말에 결론을 낼 것이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한 친문 의원은 “국민의힘 후보가 어느 정도 윤곽이 난 뒤, 마지못해 우리가 공천을 하는 시나리오가 가장 유력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낙연 대표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이번 전당원 투표의 방식과 시기 등은 이 대표가 직접 정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어차피 사과할 거 당헌을 굳이 바꿔야 하냐는 반론도 있었지만 이 대표는 “공천을 하려면 당헌 개정을 하자”면서 정공법을 택했다고 한다. 시기를 놓고도 이 대표의 한 측근은 “연말에 정하자는 견해가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이 대표가 밀어붙였다. 매를 맞더라도 일찍 맞자는 것 아니겠는가”라고 했다.
민주당이 후보를 내기로 하자 야권에선 일제히 비난을 쏟아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민주당은 정직성을 상실했다”고 했다. 같은 당 배준영 대변인은 “민주당의 이낙연 대표는 ‘무엄하게도’ 문 대통령의 뜻을 뒤집은 것인가”라고 물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이낙연 대표 등 지도부는 두 전직 시장의 성범죄에 대해 광화문 광장에서 석고대죄 해야 한다”고 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곱지 않은 시선이 적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공개 발언은 나오지 않고 있다. 지난해 조국 전 장관 사태 때 당론과 다른 의견을 냈다가 결국 제명까지 당한 금태섭 전 의원의 학습효과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대신 당헌 개정을 정당화하는 주장들이 곳곳에서 나왔다. 이낙연 대표는 “후보를 내는 게 공당으로서의 책임”이라고 했다.
애초에 2015년 당헌이 잘못 만들어졌다는 취지의 발언도 나왔다. 신동근 최고위원은 “국민들도 이미 사실은 시장 후보를 여야 다 낼 것이라고 알고 있다. (당이) 결단해서 바로 현실화시킨 것일 뿐”이라고도 했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당의 이런 상황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당헌을 바꿔가며 공천을 하는 것은 그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우리도 다 사과를 전제로 하지 않느냐. 몇몇 의원들이 궤변과 억지 주장을 늘어놓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고개를 숙여 백 번 천 번 죄송하다고 하면 된다. 이에 대한 심판은 유권자 몫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이번 일에 대해 그 누구도 반대 의견을 얘기하지 않고 있다는 부분이다. 금태섭처럼 불이익을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선 이런 논란이 예상됐음에도 불구하고 당헌 개정을 주도한 이낙연 대표에 관심이 모아진다. 평소 신중한 언행으로 우유부단하다는 지적까지 들었던 이 대표의 평소 스타일과는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앞서의 이 대표 측근은 “어떤 답을 내도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면서 “차기 도전에 있어서 가장 유리한 선택지가 어떤 것인지 깊게 고민했다”고 전했다. 이번 결정이 이 대표의 대권 행보와 맞물려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한때 차기 주자 지지율 1위를 독주했던 이낙연 대표는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경기지사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 10월 19일 경기도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기도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는 이재명 경기지사.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우선 이 대표가 처한 현실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때 차기 주자 지지율 1위를 독주했던 이 대표는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경기지사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추세로만 보면 상승세인 이 지사에 비해 이 대표는 하락세다. 이 대표에게 경선은 ‘형식적 절차’에 불과할 것이라던 정가의 관측은 이제 용도 폐기됐다. 이 대표 주변에선 경선 통과조차 장담할 수 없다는 비관론이 퍼졌다. 이는 여권 핵심이자 절대 다수 지지층인 친문계의 선택이 차기 구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변수로 꼽히는 이유다.
그동안 친문 진영에선 재보선 공천 찬성 의견이 주를 이뤘다. 서울과 부산시장 선거가 ‘대선 전초전’ 성격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후보를 내지 않아 이 자리를 내줄 경우 문재인 대통령 국정 운영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여권 일각과 당 외부에선 무공천 요구가 있었지만 이 대표는 결국 친문계 손을 들어줬다. 이 대표가 친문을 위해 적극적으로 ‘총대’를 멨다는 얘기까지 뒤를 잇는다.
이는 이 대표가 경선 승리를 위해선 외연확대보다 친문계를 끌어안아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 친문 초선 의원은 “지난해 조국 정국, 최근의 추미애-윤석열 갈등에서 알 수 있듯 이런 일이 벌어지면 여권 지지층은 더욱 결집한다”면서 “재보선 공천은 외부에서 비판을 받고 있지만 친문에선 크게 환영받고 있다. 친문 진영에선 이 대표의 정치적 결단을 높게 사는 분위기”라고 했다.
선거에 대한 자신감이 반영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는 현재 여권 물밑에서 확산되고 있는 ‘이낙연 위기론’과도 맞닿아 있다. 이 대표가 4월 재보선 승리를 자신의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대표 측근은 “대표 임기가 짧아 실적을 내기가 굉장히 어려운 여건”이라면서 “당 대표로서 4월 재보선에서 실적을 낸다면 대권 도전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점쳤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