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는 사람 없고 윤석열·안철수·홍준표 탐탁잖고…유승민·오세훈·원희룡 ‘내부 잠룡 띄우기’ 급선회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사진=이종현 기자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취임 이후부터 줄곧 참신한 인재 영입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취임 초기부터 김 위원장은 “우리 당에 대권 주자가 어디 있느냐”며 무한 경쟁을 예고했다. 6월 22일 출입기자단 오찬 간담회에서 김 위원장은 “모두 ‘이 사람이 나왔구나’라고 할 만한 사람이 차기 대선 주자로 나오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후 김 위원장이 일부 외부인사와 면담을 통해 대권 도전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보수 진영 새 얼굴 영입에 대한 기대감이 상승했다. 그러나 11월이 되도록 국민의힘 새 얼굴과 관련한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김 위원장은 공적 영역에서의 경험과 인지도를 인재 영입 원칙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해프닝은 있었다. 지난 6월 19일 김 위원장은 당내 초선 의원들과 오찬을 가진 자리에서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를 언급해 화제를 모았다. 김 위원장은 “여야 할 것 없이 인물이 한 명도 없다”면서 “특히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은 골수 보수, 꼴통 이미지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한 뒤 한참 침묵 끝에 한마디를 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백종원 씨 같은 분은 어떠냐”는 말이었다. 이어 김 위원장은 “이렇게 모두가 좋아하는 대중 친화적인 사람이 나와야 한다”고 덧붙였다는 후문이다.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는 6월 23일 연합뉴스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백 대표는 “(대선은) 꿈도 꿔본 적 없다”면서 “나는 지금 일이 제일 재밌고 좋다”고 했다. 정치권에 발을 들일 가능성을 본인이 원천 차단한 셈이었다. 이에 미래통합당 비대위 관계자는 “백 씨를 특별히 대통령 후보로 염두에 둔 것은 아니”라면서 김 위원장 오찬 발언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이렇게 야권의 ‘백종원 영입설’은 일단락됐다.
10월 27일 엔씨소프트 본사에서 나란히 앉은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이사와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사진=국회사진취재단
얼마 전엔 김 위원장과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의 만남이 화제가 됐다. 10월 27일 김 위원장은 경기 성남 엔씨소프트 본사를 방문했다. 방문 목적은 게임 및 AI(인공지능) 산업 육성 관련 정책간담회였다.
간담회에 앞서 김 위원장과 김 대표는 국민의힘 지도부 출신 인사 주선으로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김 대표와 식사를 마친 뒤 자신의 수첩에 김택진이라는 이름을 적었다는 후문이다. 이런 정황을 두고 김 위원장이 김 대표 영입을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정치권에서 돌았다.
그러나 엔씨소프트 본사에서 열린 정책간담회 이후 ‘김택진 영입설’도 수명을 다했다. 김 위원장은 간담회 직후 ‘김택진 대표가 서울시장 후보군이 아니냐’는 취재진 질문에 “추가로 만날 필요가 있겠느냐”며 “기업과 관련해 특별히 물어볼 게 있으면 만날 수 있지만 그 외에 내가 만날 상황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김 대표 또한 간담회 직후 “정치에 전혀 뜻이 없다”고 밝혔다.
이후 김 위원장의 새 얼굴 찾기는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김 위원장이 새 얼굴 찾기에 여념이 없던 사이 당내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한 국민의힘 지역위원장은 “김 위원장이 이 사람도 안 된다 저 사람도 안 된다 하는 사이 기존 잠룡들의 존재감이 미미해지고 있다”면서 “비대위가 새 얼굴을 찾을수록 우리가 키워놓은 인적자본들이 평가절하당하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
그러던 11월 15일 김 위원장은 돌연 기존 잠룡들에게 힘을 싣는 발언을 했다. 김 위원장은 “당내에서 대권에 도전한다고 의사를 보인 사람이 유승민, 오세훈, 원희룡밖에 더 있느냐”면서 3명을 콕 집었다. 다음 날엔 유승민 전 의원의 사무실 개소식을 전격 방문했다. 11월 16일 국회 앞 ‘희망22’ 사무실에서 열린 ‘결국 경제다’ 토론회는 사실상 유 전 의원 대선 캠프 개소식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11월 16일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 악수하는 유승민 전 의원. 사진=국회사진취재단
김 위원장은 주호영 원내대표 등 지도부와 함께 이 자리를 찾았다. 그간 김 위원장이 당내 잠룡들을 두고 “시효가 다 된 사람들”이라고 평가했던 것과 반대되는 행보였다. 그러자 당내 복수 관계자 사이에선 ‘영입에 성과가 없으니 내부 인사에게 힘을 실어주는 플랜B가 발동됐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국민의힘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소속 당의 다른 잠룡들의 공식 행사에도 적극 참여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 위원장의 이런 구상에 회의적 반응도 적지 않다. 정치권에서 이름이 오르내리는 국민의힘 차기 주자들의 지지율 수치가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갤럽이 11월 10일부터 1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100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여론조사에서 1% 이상 지지율을 얻은 보수진영 잠룡 가운데 국민의힘 소속은 없었다.
이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은 11% 지지율을 기록했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3%, 홍준표 무소속 의원이 1% 지지를 받았다(자세한 사항은 한국갤럽 홈페이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고). 다른 기관이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들은 사실상 실종된 상태다.
그러나 현재 차기 대권주자 선호도 여론조사 순위권에 이름을 올린 보수진영 잠룡들은 김 위원장의 ‘영입 타깃’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먼저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 김 위원장은 “야권 후보가 아니”라는 입장을 보여 왔다. 김 위원장은 7월 “검찰총장이 무슨 대통령 후보냐”며 윤 총장의 정치권 입성 자체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내비쳤다. 11월 12일 김 위원장은 “검찰총장은 정부·여당 사람”이라면서 윤 총장을 야권 대권주자 대안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의사를 피력하기까지 했다.
윤석열 검찰총장. 사진=최준필 기자
김 위원장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에 대해서도 시큰둥하다. 최근 안 대표는 국민의힘과 접촉점을 넓히며 ‘반문연대 통합’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야권 통합 러브콜이다. 11월 16일 안 대표는 국민의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한민국이 더 이상 반동과 퇴보의 길로 빠지지 않도록 범야권의 결심이 필요하다”고 했다.
안 대표는 자신이 제안한 범야권 혁신 플랫폼 조성과 관련해 “정기국회가 끝난 다음 본격 논의를 시작하면 최종적으로 김종인 비대위원장을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안 대표 발언에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답했다. 안 대표가 제안한 야권 연대론에 선을 그은 셈이다.
홍준표 무소속 의원은 김 위원장과 꾸준히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홍 의원은 11월 14일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선거의 기본은 아군 강화와 상대 진영 공략인데 아군은 뿔뿔이 흩어지게 만들고 상대 진영만 힐끗힐끗 넘보는 방책은 자멸의 길”이라고 했다. 외연 확장에 집중하는 김 위원장을 비판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한 국민의힘 당직자는 홍 의원 발언과 관련해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외연 확장이 먼저라고 생각하는 입장”이라면서 “홍 의원과 노선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추후에도 둘 사이에 유화 제스처가 나올 가능성은 적다”고 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사진=박은숙 기자
김 위원장이 외부에서 인재를 수혈하지 못할 경우 정치적 입지가 좁아질 것이란 전망이 주를 이룬다. 전직 국민의힘 당직자는 “김 위원장의 새 얼굴 찾기가 계속해서 난항을 겪을 경우 ‘반김종인’ 세력의 공세는 더욱 집요해질 것”이라고 했다.
정치평론가 신율 명지대 교수는 “새 얼굴을 발굴해서 대선이나 서울시장 선거에 내세우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면서 “아무리 야당이 바람으로 선거를 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인지도가 있는 사람을 골라야 하는데 국민의힘 입장에선 그런 사람을 영입하는 것이 여의치 않을 것이라 본다”고 했다.
신 교수는 “김 위원장이 누구보다도 어떤 사람이 필요한지를 잘 알 것”이라면서 “그러나 국민의힘의 낮은 지지도, 기존 잠룡들의 심한 견제 등이 인재 영입의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