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등 비주택 리모델링 방안 이미 실패 전례…실제 수요 충족 한계, 매입임대 ‘로또’ 우려도
지난 19일 정부가 전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국에 11.4만호의 주택을 추가 공급하는 24차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지난 8월 25일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최근 전세값 상승과 관련 의원 질의를 받고 있는 모습. 사진=박은숙 기자
정부의 이번 부동산 대책은 최근 전국적으로 확산세인 전세난을 해소하기 위해 내놓은 정책이다. 정부는 “임대차 3법과 거주 의무강화 조치 등이 임차인 주거권 강화 및 실수요자 중심의 시장질서 형성에 큰 도움이 됐지만, 축소균형 과정에서 전세매물 부족 등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세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단기간 공급확대’를 꼽고 신축 위주의 단기 집중 공급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를 위해 향후 2년간 전국 11만 4000호(수도권 7만 호) 규모의 임대주택을 공급할 방침이다. 구체적인 공급 방안으로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이 3개월 이상 공실인 공공임대주택을 전세 형태로 전환해 공급하는 방안 △공실 상가·오피스·숙박시설 등을 주거공간으로 리모델링해 공급하는 방안 △LH가 매입약정 방식으로 민간건설사에 신규 건설을 유도해 공급하는 방안 등이 제시됐다.
이번 대책은 지난 5월 6일과 8월 4일에 발표된 부동산 대책에 이은 세 번째 대규모 주택공급 방안이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6월 19일 첫 번째 부동산 대책을 발표한 이후 지난 19일까지 24차례의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정권 초기 부동산 문제의 원인을 ‘투기’로 보고 첫 번째 대책에서 LTV(주택담보인정비율)와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를 강화했다. 2차, 3차 대책에서도 투기과열지구와 조정대상지역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 그러나 5차 대책에서 공적지원 주택 100만 호 공급 계획을 밝힌 것을 시작으로 공급 확대방안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이번 대책은 공급 확대에 집중된 모습”이라며 “정부가 정권 초기 부동산 문제의 원인을 공급 부족보다는 ‘투기’에서 찾고 규제를 강화해왔으나, 최근 공급 확대에 집중하며 정책 기조가 변화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다만 정책방향이 공급확대로 바뀐 상황에서 부동산 규제 강도를 높이고 있어 여기서 발생하는 괴리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3%라지만…‘호텔 개조’ 재등장에 민심 부글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대책에서 가장 큰 질타를 받은 지점은 비주택 리모델링이다. 호텔 등 숙박시설을 주거용으로 리모델링하겠다는 방안에 대해 정치권의 질타가 이어졌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9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에서 “호텔방을 전월세로 돌린다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호텔 찬스에 실소를 금치 못했다”며 맹비난했다. 정의당 또한 같은 날 브리핑을 통해 “일명 ‘호텔방 전셋집 대책’은 사실상 1·2인 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것인데, 이는 21세기형 쪽방촌을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호텔을 리모델링한 주거공간 공급은 실패한 전례가 있다. 서울시가 동묘역 인근 ‘베니키아호텔’을 주택으로 전환해 공급한 종로구 숭인동 역세권 청년주택은 지난 6월 입주일 이전 예비 입주자 207명 가운데 180여 명이 입주를 포기했다. 서울시가 최대 50%의 전세금을 무이자 지원하는 혜택을 제공했지만 주택으로의 개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데다, 민간임대 운영자 측이 높은 가격의 관리비용을 의무사항으로 포함해 월세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숙박업소 리모델링 공급과 관련해 비난이 일자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정책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김 장관은 “상가나 오피스텔, 호텔을 리모델링하는 비주택 공실 리모델링이 서울의 경우 5400호”라며 “이중에서도 일부로 호텔이 들어가 전체 물량의 2~3%임에도 전체의 90%를 점하는 것처럼 알려져 당혹스럽다”고 설명했다. 또 “호텔 리모델링은 유럽 등 주거복지를 제공하는 나라에서 호응도가 높은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논란은 여전하다. 시민단체까지 리모델링 대책의 문제점을 짚고 나섰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대는 “정부는 LH공사가 보유했던 공공택지를 민간에 넘기고 아파트 분양까지 재벌 등에 헐값으로 넘겨 특혜를 줬다”며 “이제는 재벌 계열사 등이 보유한 손님 끊긴 호텔과 법인보유 상가 사무실을 가격검증 절차 없이 공기업 돈으로 고가 매입해 공공자금을 재벌 등에게 퍼주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단기 집중 공급’…임시방편 대책되나
전문가들은 정부가 공급을 확대키로 한 것에 대해서는 대부분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단기 집중 공급’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민간 전세시장의 수요와는 동떨어져 실효성이 떨어지는 데다 또 다른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여경희 부동산114 수석연구원도 실제 수요를 충족하지 못하는 공급 대책에 아쉬움을 전했다. 여 연구원은 “실제 전세난을 겪는 주 계층은 1·2인 가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파트 수요이며 3인 이상 자녀를 둔 가족 수요도 있는데 이들을 위한 여건이 갖춰진 주거공간이 이번 대책에서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LH 등 정부에서 매입해 공공임대로 활용하는 매입임대주택이 소위 ‘로또 전세’가 되는 부작용을 우려했다. “매입임대를 통해 공공임대주택을 늘려 인근 시세보다 저렴하게 공급할 경우 물량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어 시장가격의 왜곡이 발생하고 매입임대주택이 임대시장에서 일종의 ‘로또’가 되는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