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72시간, 하루 평균 14시간 이상…화동하이테크 측 “드릴 말씀 없다”
쿠팡 물류센터의 물류 자동화 시스템 검수 작업을 하던 납품업체 직원 A 씨가 11월 10일 쿠팡 마장 물류센터에서 쓰러져 사망했다. 과로사가 의심되는 가운데 A 씨는 하루 평균 14시간 이상 일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은 쿠팡 부천물류센터 전경. 사진=박정훈 기자
A 씨는 쿠팡의 물류 자동화 시스템 구축을 수주한 납품업체 화동하이테크 직원으로 쿠팡 마장물류센터와 안성물류센터를 오가며 설비 시공에 따른 검수 작업을 해왔다. A 씨는 자신의 휴대전화 캘린더 애플리케이션에 자신이 일한 날과 시간을 꼼꼼히 기록해뒀다.
사망한 날을 제외한 70일(9월 1일부터 11월 10일까지) 가운데 A 씨가 근무 시간을 명확히 써 둔 날은 41일이다. 이 기록에 따르면, A 씨는 41일 동안 576시간을 일했다. 70일 가운데 A 씨가 쉰 날은 추석연휴 4일을 포함해 고작 15일이었다. A 씨는 일하는 날엔 평균 14시간씩 일했고, 평균 주 6일 이상 일했다. 9월 15일엔 새벽 5시 40분부터 다음 날 새벽 2시까지 하루 18시간 20분 동안 살인적인 근무를 하기도 했다.
A 씨는 자신의 캘린더에 근무 시간을 꼼꼼히 기록해 뒀다. 사진=A 씨 유가족 제공
또 A 씨는 10월 11일부터 10월 17일까지 내리 쉬지 않고 야근을 했다. 다음 날인 18일 또한 주간 근무를 했다. A 씨는 이날을 ‘야근’, ‘주간’이라고 캘린더에 기록해두고 시간을 명확히 써두지 않았다. 하지만 A 씨가 일한 시간을 유추할 순 있다. A 씨가 자신의 근무 기록을 명확히 적어두지 않았지만 최소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12시간 이상 일했다고 볼 수 있다.
A 씨가 자신의 휴대전화 캘린더에 기록해둔 근무 기록을 정리한 표. 9월 근무한 시간이다. 색칠된 칸은 A 씨를 일을 한 날이다. 사망한 날을 뺀 최근 70일(10주) 동안의 근무 기록을 살펴본 결과 추석 연휴 나흘을 포함해 A 씨가 쉰 날은 15일에 불과했다.
화동하이테크가 A 씨가 근무한 기록이라며 유가족에게 보낸 자료도 부정확해 보인다. 쿠팡이 유가족에 제공한 A 씨 쿠펀치 기록, A 씨가 기록한 근무 기록 등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일단 화동하이테크는 기본 근무 시간을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라고 명시했다. 하지만 화동하이테크의 기록에선 오류가 발견됐다. A 씨가 야근했다고 캘린더에 적어두고, 쿠펀치 앱에 오후 8시에 퇴근 도장을 찍은 10월 17일을 두고 화동하이테크는 ‘휴무’로 기재했다. 화동하이테크는 근무 시작이 오전 8시라고 했지만 쿠팡이 제공한 쿠펀치 기록에 따르면 A 씨가 오전 5시 52분 등 오전 8시 이전에 물류센터에서 출근 도장을 찍은 경우가 많았다.
만성 과로 기준이 주 60시간인데, A 씨는 캘린더에 확인되는 시간으로만 평균 주 72시간을 일했다. 많게는 주 81시간을 일하기도 했다. A 씨의 처남은 “밥 먹을 때도 매형이 꾸벅꾸벅 졸았다. 일이 힘들어서 피곤한가 보다 했는데, 이 정도로 일을 많이 했을 거라곤 생각 못 했다”고 강조했다. A 씨는 1970년생으로 우리 나이로 51세였다. 아내와 아들을 두고 먼저 세상을 떴다.
A 씨가 자신의 휴대전화 캘린더에 기록해둔 근무 기록을 정리한 표. 10월과 11월 근무한 시간이다. 색칠된 칸은 A 씨를 일을 한 날이다. 근무 시간이 명확히 확인되는 날은 41일이다. 41일 동안 A 씨는 576시간, 하루 평균 14시간 이상 일했다.
A 씨가 맡은 물류 자동화 시스템 설비 검수 작업이 물류센터에서 매우 중요했다고 전해진다. 쿠팡 부천신선물류센터에서 일하는 B 씨는 “1시간 안에도 셀 수 없이 벨트가 멈춘다. 과적되거나 뭐가 끼거나 장비가 손상되기도 한다. 벨트가 멈추면 알람이 울린다. 11월 16일 월요일엔 부천 신선물류센터 컨베이어 벨트 부근에서 연기가 나서 작업에 지장을 입기도 했다. 설비를 검수해 주는 분들이 꼭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A 씨와 쿠팡 관계자들이 함께 있는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 쿠팡 관계자들이 물류센터 내에선 A 씨에게 직접업무 요청을 했다. A 씨 유가족 제공
A 씨를 고용한 화동하이테크 관계자는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했다.
쿠팡 관계자는 “고인은 화동하이테크의 직원으로서 시공된 물류 자동화 설비의 검수를 담당하고 있었다. 쿠팡은 컨베이어 벨트 관련 위탁운영 계약을 맺은 사실이 없다. 또한 쿠팡은 건설공사의 발주사로서 실제 시공을 맡은 화동하이테크의 업무에 관여할 수 없다”며 “쿠팡은 기사의 사실과 다른 부분에 대해 언론사에 정정보도를 요청했으며 언론중재위원회 제소 등 법적조치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