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센터 노동자 “관리자가 내게 직접 공상처리 요구해”…본사 직원은 “데시벨 측정해달라” 요구
쿠팡피해자모임과 쿠팡발코로나19피해자지원대책위원회 회원 15명이 엄성환 쿠팡풀필먼트서비스 전무가 10월 26일 있었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내놓은 답변이 사실과 다르다며 10월 28일 서울 잠실 쿠팡 본사 앞을 찾았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했거나 일하고 있는 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가 증인인데, 쿠팡은 국감에 나와서 거짓말을 했다”며 “변명 말고 진심 어린 사과를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진=박현광 기자
쿠팡 물류센터에서 4년 동안 일했던 강민정 씨는 “마감이라는 시간에 쫓겨 현장에선 뛰어다니기에 급급하다. 일하다가 다쳤고, 쿠팡의 열악한 환경에 항의했더니 해고됐다. 왜 해고됐는지 여러 차례 문의했지만 아무런 답변도 받지 못했다. 정당한 해고 사유를 듣고 싶어 본사까지 왔다”며 “엄성환 전무가 국회에서 공상처리를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했지만, 현장에선 관리자들이 공상처리해줄 테니 산재처리 하지 말라고 내게 분명 말했다. 보상은 차치하고라도 사과를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엄성환 쿠팡 풀필먼트서비스 전무는 10월 2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택배기사 과로사’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나와 쿠팡물류센터 산재 은폐와 관련한 질의에 “쿠팡은 공상처리를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답했다. 공상처리는 회사에서 다친 노동자에게 치료비와 위로금을 지급해 산업재해 신청을 막는 것을 말한다. 다친 노동자가 산업재해 처리를 하게 된다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집계된다. 해당 기업은 이미지에 타격과 동시에 실질적으로 고용노동부의 제지를 받을 수도 있다.
쿠팡 부천신선물류센터에서 일하다가 코로나19에 감염됐던 한 노동자는 “쿠팡의 안일한 대처로 코로나19에 걸렸고, 폐쇄된 1인실에서 극심한 스트레스와 공포를 견디며 한 달 만에 겨우 퇴원했다. 질병관리청의 기준 완화로 퇴원한 거라 가족들과도 거리를 두고 살며 이웃들 눈치 보느라 엘리베이터 이용도 못 한다”며 “하루는 거실에 있는 아들이 나를 보더니 움찔하더라. 노동자는 이런 비참함을 겪고 있는데 쿠팡은 위로의 문자 한 통 없다”고 말했다.
쿠팡은 국정감사가 끝난 바로 다음 날인 10월 27일 설명 자료를 내고 국정감사 질의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쿠팡은 특히 칠곡 물류센터에서 1년 4개월 동안 일했던 27세 장덕준 씨가 퇴근 후 사망한 것을 두고 “본인이 원하는 날, 본인이 원하는 근무 시간대에 일했다”며 “해당 업무(워터스파이더)는 대부분 쉬운 지원 업무로 한 번 선택한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아 오래 변경 없이 지속하는 업무다. 워터스파이더 업무는 여럿이 분담해 처리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쿠팡은 “고인은 업무가 힘들어서 바꿔 달라고 요청한 적이 없다. 언제든 자유롭게 업무 변경을 요청할 수 있었다”며 “고인의 업무는 UPH(물건 처리 속도) 측정 대상이 아니었다. 고인은 정규직 전환에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에만 20회 이상 상시직 전환을 제안했지만 본인이 모두 거절했다”고 말했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4년을 일했던 강민정 씨는 “마감이라는 시간에 쫓겨 현장에선 뛰어다니기에 급급하다. 일하다가 다쳤고, 쿠팡의 열악한 환경에 항의했더니 해고됐다. 왜 해고됐는지 여러 차례 문의했지만 아무런 답변도 받지 못했다. 정당한 해고 사유를 듣고 싶어 본사까지 왔다”며 “엄성환 전무가 국회에서 공상처리를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했지만, 현장에선 관리자들이 공상처리해줄 테니 산재처리 하지 말라고 내게 분명 말했다. 보상은 차치하고라도 사과를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진=박현광 기자
이에 김혜진 쿠팡발코로나피해자모임 활동가는 “고인의 업무인 워터스파이더는 다른 사람들을 보조하는 업무였다. 쿠팡은 매주 매달 UPH를 올리는데, 다른 사람들의 UPH가 올라가면 워터스파이더의 업무 강도는 3~4배 올라가는 것”이라며 “물류센터의 업무 강도가 너무 강해서 노동자들이 많이 다친다. 계약직(상시직)으로 전환하면 아플 때 쉴 수가 없다. 쉬기 위해 일을 그만두면 남은 계약 기간만큼은 일용직으로도 일을 못 하기 때문에 현장에선 사람들이 상시직 전환을 꺼려한다. 마치 쿠팡은 고인에게 호의를 베푼 것처럼 말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혜진 활동가는 “일용직은 그날그날 일이 정해진다. 관리자가 하라는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쿠팡은 마치 업무 선택의 자유가 있는 것처럼 말한다. 쿠팡의 주장은 거짓이거나 노동자를 기만하는 짓”이라며 “우리는 계속 말할 것이다. 쿠팡은 반성하고 피해자와의 교섭에 제대로 나서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엔 현직 쿠팡 물류센터 직원들도 3명 참석했다. 사회자는 이들의 신원이 노출돼 쿠팡으로부터 불이익을 받을 것을 걱정해 기자들에게 사진을 찍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쿠팡 본사 직원들이 돌아가며 기자회견 중인 이들의 사진을 찍거나, 본사 ER팀이라고 밝힌 직원이 기자회견을 관할하러 나온 송파경찰서 정보과 형사에게 “데시벨을 측정해달라”고 요구하면서 언성이 높아지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송파서 정보과 형사는 “그냥 듣기에도 제한 데시벨을 넘지 않는다”고 본사 직원을 제지했다.
고건 쿠팡피해자모임 대표는 “본사 ER팀 직원의 행위는 여태 우리를 입을 틀어막아 온 쿠팡의 행태와 똑같다”며 “쿠팡은 이제 그만 반성과 사과를 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