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영 공백 메우기’ 실패에 수비 불안까지…이도희 감독 “시간이 필요하다”
지난 시즌 V리그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던 현대건설은 이번 시즌 5위로 미끄러지며 사뭇 다른 시즌을 보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엄밀히 따지면 현대건설이 지난 시즌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는 못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정규리그가 중도에 멈췄다. 플레이오프와 챔피언결정전, 포스트시즌도 진행되지 못했다. 하지만 리그 중단 시점, 순위표 최상단을 차지한 팀은 현대건설이었다.
이에 센터 포지션에서만큼은 최고 선수로 평가받았지만 1인자 자리에 오르지는 못했던 양효진은 커리어 최초로 정규리그 MVP를 수상하기도 했다. 리그 1위팀 주장으로서 활약을 인정받은 것이다. 현대건설에서 2011년 황연주 이후 9년 만에 배출한 정규리그 MVP였다.
현대건설은 지난 시즌 1위를 차지했지만 이번 2020-2021시즌 시작 전 우승후보라는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배구 여제’ 김연경이 합류한 흥국생명이 강력함을 자랑한 반면, 현대건설은 주전이자 국가대표 세터인 이다영이 FA(자유계약) 자격을 얻었음에도 잡지 못하고 흥국생명에 내줬다. 전력 손실이 불가피했다.
현대건설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던 이다영(가운데)은 이번 시즌을 앞두고 흥국생명으로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수년간 주전 세터를 맡아왔던 이다영을 내준 현대건설은 트레이드로 이나연을 IBK기업은행에서 데려왔다. 하지만 국가대표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던 이다영과 새 얼굴 이나연의 존재감은 다르게 느껴졌다.
뚜껑을 연 시즌, 현대건설은 여지없이 흔들렸다. 정규리그 개막 전 KOVO컵에서 단 1승만을 거두며 불안하게 출발했다. 지난 10월 막을 올린 정규리그에서는 반전을 만드는 듯했다. KOVO컵 우승팀 GS칼텍스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고 이어진 한국도로공사 전에서도 승리하며 2연승을 구가했다.
하지만 현대건설의 연승은 ‘2’에서 멈췄다. 이후 10월 마지막 일정을 포함, 6연패를 기록하며 하위권으로 처졌다. 11월 일정 6경기 중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하며 연패를 가까스로 끊었다. 12월 2일 현재 3승 6패, 6개 구단 중 5위를 기록 중이다. 지난 시즌 같은 시점 7승 2패를 기록한 모습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 같은 부진의 원인은 이다영의 부재가 첫 손에 꼽히고 있다. 현대건설은 이번 시즌 세터 자리에 트레이드 영입한 이나연과 기존 백업 자원이던 김다인을 번갈아 투입하고 있다. 그 중 김다인에게 비중이 쏠리는 모양새다.
문제는 김다인에게 절대적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1998년생 김다인은 지난 2017-2018시즌 프로 무대에 발을 들인 이후 4시즌째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지난 3시즌간 출전 경기 수는 6경기에 그쳤다. 출전하는 경기에서도 짧은 시간만을 소화했다. 컵대회를 통틀어서도 지난 시즌까지 15경기에만 나섰다.
이도희 현대건설 감독의 ‘이다영 키우기’가 양날의 검으로 작용한 것이다. 선수 시절 명세터 출신인 이 감독은 이다영을 확고한 국가대표 주전 세터로 키워냈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가능성 있는 선수’로만 평가받던 이다영의 잠재력을 터뜨린 것이다.
하지만 그림자도 생겨났다. 선수의 체력을 안배하고 백업 선수에게도 경험치를 준 타 구단과 달리 현대건설은 수년간 세터 포지션에서 이다영이 대부분의 경기를 소화했다. 김다인은 2년차였던 2018-2019시즌에는 정규리그 단 1경기에도 나서지 못했다. 지난 시즌 입단한 김현지 세터 역시 마찬가지다. 때로는 혹사 논란이 일어날 정도였다. 실제 이다영은 국가대표에 차출됐다가 부상을 입고 돌아오기도 했다.
‘배구는 세터 놀음’이라는 격언이 있듯, 노련한 세터의 존재는 팀의 전력을 일정 부분 끌어올릴 수 있다. 또한 세터는 리시브나 디그를 받아내 공격수에게 연결을 해주는 역할을 하기에 선수들과의 조직력 또한 중요하다. 경기 출전 경험이 적은 김다인이나 이번 시즌 팀에 새롭게 합류한 이나연에게는 아직 한계가 존재할 수 있다.
현대건설은 수비 면에서도 부진을 겪고 있다. 수비 비중이 큰 레프트 포지션에서 주전급 선수들인 고예림과 황민경의 리시브 효율(각각 32.71%, 33.93%)이 좋지 못한 상황이다. 황민경은 이번 시즌 발바닥 부상마저 견뎌야 한다.
리베로 김연견 또한 부상 여파가 있다. 지난 2월 김연견은 부상으로 시즌 아웃된 경력이 있다. 골절로 수술을 받은 큰 부상이었다. 날렵한 반사 신경과 아크로바틱한 수비를 보여주던 김연견의 플레이스타일 상, 부상 이전과 같은 모습이 아직까지 재현되지는 못하고 있다.
앞서 현대건설은 시즌 개막에 앞서 전 소속선수 고유민과 불미스러운 일을 벌이기도 했다. 팀을 떠난 고유민이 극단적 선택을 했고 유가족이 구단 측에 책임을 물은 것이다. 고유민은 입단 이후 장기간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지만 2018-2019시즌부터 수비적인 면에서 큰 역할을 했다. ‘고유민 효과’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며 현대건설의 반전에 기여한 바 있다. 이번 시즌 수비가 흔들리는 현대건설이기에 그의 공백이 더욱 아쉽게 느껴지고 있다.
다만 현대건설은 최근 경기에서 반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11월 마지막 일정에서 KGC인삼공사를 상대로 승리하며 연패를 끊어냈다. 지난 시즌 MVP 양효진이 건재했고 외국인 선수 루소도 장점인 높은 타점을 십분 활용했다. 이외에도 고예림, 정지윤이 고르게 활약했다.
세터에선 더 많은 기회를 부여받던 김다인을 제치고 이나연이 중용됐다. 팀에 합류한 첫 시즌인 만큼 향후 선수들과의 호흡은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이도희 감독 역시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황민경의 부상 회복, 세터와 공격수의 호흡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선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현대건설은 1977년 창단돼 한국 여자배구 역사에서 꾸준한 강팀으로 군림해왔다. 2018-2019시즌 부진으로 하위권에 떨어졌지만 1시즌 만에 1위에 오르는 반전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또다시 부진을 겪는 현대건설이 6연패를 겪은 이후 반등을 이뤄낼 수 있을지 팬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