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이계 입김? 조직국 거센 반발로 사실상 마무리 수순…당협위원장 정리 없이 빈자리만 채우는 모양새
이양희 당무감사위원장은 국민의힘 조직국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한 채 사실상 당무감사 마무리 수순에 돌입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8월 7일 국민의힘은 당무감사위원회(당무감사위)를 발족했다. 이양희 성균관대 교수가 위원장을 맡았고 백승주 전 의원 보좌관 출신인 박진호 씨가 부위원장을 맡았다. 고려대 에너지환경대학원 하윤희 교수와 박기성 법무법인 KL파트너스 변호사,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감사 전지현 법무법인 참진 변호사, 최미연 변호사 등이 위원으로 임명됐다.
이양희 당무감사위원장 각오는 남달랐다. 9월 초 제1차 회의를 연 그는 “지금까지 정당의 당무감사 활동이 당 지도부의 정치적 결정에 명분을 제공하는 수동적인 활동에 그쳤기 때문에 국민의 눈높이 맞춘 정당 혁신을 위한 초석을 마련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대한민국의 대의민주주의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한 시기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이 국민의 기대와 열망에 부응하는 수권정당으로 거듭나는 데 기여하기 위해 당무감사 활동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했다.
당협위원장은 지역 조직을 책임지는 당원협의회의 대표자다. 당선이 되면 원내 당협위원장이 되고 선거에서 지면 원외 당협위원장이 된다. 민주당은 이를 지역위원장이라고 부른다. 당무감사위는 각 지역 당원협의회의 운영 사안을 감사하는 역할을 맡는다. 감사 결과를 근거로 한 감사보고서가 나오면 조직강화특별위원회(조강특위)가 실제 당원협의회에 칼을 대는 형태로 당의 지역 조직은 재정비된다.
당무감사위는 10월 15일부터 30일까지 원외 당협위원장을 대상으로 당무감사를 진행했다. 애초 당무감사위는 총선 과정에서 불필요한 논란을 촉발시켰던 당협위원장을 대폭 교체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당무감사 사전점검 자료를 보면 당협위원장이 답해야 할 질문 48가지에는 최근 4년간 당협위원장과 배우자, 직계존비속 관련 부적절한 언행이 언론에 보도된 현황과 당협위원장 및 운영위원 등의 소셜미디어에서 촉발된 논란 여부,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일부 인사의 소셜미디어 활동에 대한 견해를 묻는 항목이 주를 이뤘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당명과 정강·정책, 당색, 당사까지 바꾸면서 중도층으로 외연 확장에 나선 만큼 이번 당무감사로 이른바 극우 색을 지우겠다는 심산이었다고 전해졌다.
하지만 당무감사는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10월 26일 9차 당무감사회의를 기점으로 사실상 중단됐다. 이날 원외 당협위원장에 대한 1차 감사를 마무리해 보고서를 작성한 당무감사위는 현역 의원을 대상으로 하는 원내 당협위원장, 시도당협, 여의도연구원 등에 대한 2차 감사를 준비할 예정이었다. 하지면 이 과정에서 평가 방식을 두고 고성이 오갈 정도로 국민의힘 조직국이 집단 반발했다고 전해졌다.
11월 10일에는 급기야 김종인 위원장까지 나서서 숨 고르기를 권고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이날 국민의힘 관계자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10월 말에 이어 11월 초에도 지도부 인사를 거쳐 “현역 의원이 국정감사와 정기국회에서 예산·입법 등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쉼표를 찍자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표면적으로는 배려였지만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후보 경선을 앞두고 친이계의 집단 반발이 커 일단 잡음을 차단하려는 김종인 위원장 판단이라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현재 주요 당협위원장과 사무처가 총선 과정을 거치며 친이계의 대표 주자인 김형오 전 공천관리위원장 손길을 많아 탄 상태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원내대표까지 친이계인 주호영 의원이니 당무감사는 향후에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익명을 원한 한 국민의힘 고위 관계자 설명이다.
“당무감사위 구성에서부터 목적이 뚜렷하게 보였기에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당무감사위 구성원만 놓고 보면 친이계랑 강성 친박 때려잡을 목적이 보였다. 친박이지만 김종인 위원장 사람인 이양희 위원장에 김무성계로 분류되는 박진호 부위원장, 유승민계라고 알려진 하윤희 교수 위주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친이계 주호영 의원이 원내대표인 이상 쉽게 진행될 모양새가 아니었다.”
나경원 전 의원과 정양석 사무총장. 사진=일요신문DB
정 총장은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로 이번 당무감사를 반대했던 인물 가운데 하나로 분류된다. 국민의힘 관계자에 따르면 정 총장은 최근 “총선 참패 직후라 분위기도 좋지 않아 피 묻혀서 좋을 게 없다”며 “누굴 자른다고 해도 그 자리를 지원하려는 사람도 없다”는 의견을 김종인 위원장과 이양희 위원장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이양희 위원장은 “원외 당협위원장 당무감사는 끝났고 원내 당협위원장과 시도당도 당무감사 중에 있다. 곧 마무리 될 예정이다. 다음주쯤 비대위에 보고가 올라갈 예정”이라며 “과거에는 원내 당협위원장도 교체한 용감한 대표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선거 끝난 지 얼마 안 됐기도 했고 보궐 선거도 앞두고 있어서 쉬운 일은 아닐 것”이라고 했다.
당무감사위에게 칼자루를 받아 칼을 휘둘러야 할 조강특위 수장 정양석 총장은 이양희 위원장과 약간의 온도 차를 보였다. 그는 “총선 끝난 지 얼마 안 됐다. 자진 사퇴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빈자리 메우는 정도로 논의하고 있다”며 “총선이 올해 있었는데 사람을 덜어내는 게 혁신인가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고민이 있다”고 말했다.
과거 국민의힘에선 집단 반발을 이겨내고 현역 의원을 포함한 인적 쇄신을 단행한 바 있었다. 2017년 12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시절엔 현역 의원 4명을 포함해 당협위원장 62명을 교체했고 2018년 12월 김병준 비대위 땐 현역 21명을 포함해 당협위원장 69명을 교체한 바 있었다. 하지만 이번 당무감사에서는 별다른 성과가 나오지 못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인 상태다.
조강특위는 일단 공석인 지역 30곳의 당협위원장 자리를 채워 넣을 첫 회의를 11월 10일 열었다. 이날 조강특위는 사고 지역 당협위원장 대한 새 지원자 공모를 우선 시작하기로 했다. 11월 22일 국민의힘은 공모 지역 30곳에 대한 당협위원장 공모를 마쳤다. 24곳에 51명이 신청했다고 나타났다. 광주광역시 3곳, 호남 3곳 등 6곳에는 아예 신청이 없었다.
현역 의원으로는 유일하게 조수진 의원이 양천구갑 당협위원장을 신청했다. 김성태 전 의원, 정문헌 전 의원과 현경병 전 의원, 이기재 전 청와대 행정관 등도 이번 당협위원장 공모에 이름을 올렸다고 나타났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