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전 수준 회복되려면 최소 4년”…백신·치료제 풀려도 ‘저가 패키지 시대’ 다시 오기 힘들 전망
하나투어와 모두투어, 노랑풍선, 참좋은여행 등 해외여행 전문 여행사들의 2020년 매출은 1월을 제외하면 거의 제로(0)였다. 때문에 직원들이 대부분 유급휴가를 거쳐 무급휴가에 들어가면서 말 그대로 개점휴업 상태다. 현지에서 상품을 직접 총괄하는 랜드사(현지 여행사)들도 상황은 마찬가지. 그나마 대형 여행사들은 정부의 각종 고용유지지원책과 사내 유보금 등을 기반으로 1년을 버틸 수 있었지만 규모가 작은 여행사와 랜드사들은 대부분 실질적으로는 폐업했다.
약 230개 업종 중 매출 감소가 가장 큰 업종은 여행사로 매출 감소 상위 9개 업종에서 여행사, 면세점, 항공사가 1, 2, 4위를 기록했다. 사진=일요신문DB
#폐업 신고 안했지만 실상은 폐업
20년 가까이 유럽지역 랜드사를 운영하고 있는 A 씨는 “다시 여행이 재개됐을 때 대형 여행사들로부터 일을 받기 위해 폐업 신고는 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임대료를 못내 사무실을 비웠고 몇 명 안 되던 직원들도 다 나갔다. 작은 여행사에서 직원들에게 주는 무급휴가는 나가라는 말과 같다. 무급휴가 동안 세금을 떼는 공식적인 밥벌이를 할 수 없으니 직원 입장에서는 차라리 나가서 실업급여를 받거나 일용직이라도 찾는 게 낫다”며 “폐업 신고만은 피하기 위해 지인의 사무실로 사업장 주소지만 옮겨 놨다”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2만여 개의 여행사 가운데 1000여 곳이 폐업 신고를 했지만, 소규모 여행사들 상당수는 업력 유지를 위해 폐업 신고만 하지 않았을 뿐 사실상은 폐업한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다. 특히 대형 여행사의 현지 진행을 돕는 랜드사는 단체 해외여행객이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90% 이상이 폐업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형 여행사가 지급하지 않은 미수금이 아직 많이 남아 있어서 폐업도 마음대로 못하고 있다.
10여 년 동안 남미 단체여행을 진행한 랜드사 대표 B 씨는 “대형 여행사에서 받지 못한 미수금이 2억~3억 원 물려 있다. 남미 여행은 단가가 세기 때문에 한 팀만 진행비를 못 받아도 금방 5000만 원에서 1억 원이다. 작게는 몇 천만 원에서 많게는 10억 원까지 물려있는 랜드사가 많다. 소송을 하고 싶어도 대형 여행사 물량이 많다보니 나중에 여행객을 안 줄까봐 소송도 못한다. 여행이 재개되고 다시 여행객이 들어가야 미수금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B 씨는 “여행업 특성상 직원들은 ‘헤쳐 모여’를 해도 금방 상품을 꾸리고 행사를 진행할 수 있지만 문제는 현지 업체들의 불신이다. 대형 여행사로부터 받지 못한 미수금이 쌓이면서 현지 호텔이나 식당에도 미지급금이 생겼다. 그런 소문이 나면 현지에서 예약을 잡기도 어렵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업계의 ‘미수금 깔고 가기’ 관행 때문에 업계 전반에 미수금이 많이 깔린 상태에서 코로나19로 수많은 여행사와 현지 호텔 및 식당들이 문을 닫았다. 다시 여행이 재개된다고 해도 이제는 미수금 없이 ‘현찰 박치기’ 아니면 현지 예약을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본다. 그렇게 되면 어느 정도 현금을 들고 있어야 다시 여행업을 할 수 있다”고 전했다.
해외 단체 여행객의 국내 여행을 안내하는 인바운드 여행사들도 수입이 없기는 매한가지다. 인바운드 여행업 관계자는 “인바운드 여행사 90%가 문을 닫았다. 중국 여행객을 받는 여행사가 대부분이었는데 작은 곳들은 이미 거의 문 닫았고 큰 여행사들은 중국으로 한국 면세품 등을 배송하는 물류 쪽으로 일부 돌렸지만 그마저도 최근엔 많이 축소됐다”고 전했다.
외국인 여행객을 상대하던 시내 면세점 상황도 비슷하다. 한 달에 2000만~5000만 원에 이르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매장을 철수하고 있다. 인바운드 여행 관계자는 “인바운드 여행이 재개될 시점을 가늠하기 어려워 더는 매장을 유지할 수 없다. 여행 재개 시점에 새로운 매장을 찾아 인테리어를 다시 하는 게 지금처럼 수익 없이 임대료만 내는 것보다는 낫다”고 말했다.
#‘여행희망’이 주가 잭팟으로
참좋은여행이 이번 프로모션으로 실제 모객한 인원은 1만 3000여 명이다. 관련 소식들이 뉴스에 오르내리며 주가를 끌어올렸는데 업계 전반의 주가까지 견인하는 상황이 됐다. 사진=참좋은여행 캡처
최근 참좋은여행이 전액 환불과 1만 원 예약비라는 매력적인 조건을 내걸고 해외여행 선예약을 시작하며 여행 주가를 끌어올렸다. 업계에서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주가가 상승 움직임을 보이자 잠잠하던 하나투어와 모두투어도 해외여행 상품을 팔기 시작했다.
고객의 입장에선 예약금이 아예 없거나 1만 원으로 ‘여행의 희망’을 사는 것이기에 손해 볼 것이 없다. 실제 여행을 떠날 수 있을지를 따져보는 게 아니라 “일단 재미삼아 예약하고 본다”는 소비자도 많았다. 사실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적인 상황이 불확실한 가운데 아직은 어떤 여행도 계획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일각에선 “실수요를 기대했다기보다 마케팅을 위한 액션일 뿐”이라며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기조였을 것이다. 시장 상황과는 맞지 않는 행보였는데 의외로 잭팟을 터뜨렸다”고 전했다.
참좋은여행이 이번 프로모션으로 실제 모객한 인원은 1만 3000여 명이다. 관련 소식들이 뉴스에 오르내리며 주가를 끌어올렸는데 업계 전반의 주가까지 견인하는 상황이 됐다. 하지만 아직 실제 수익이 전혀 없고 유지비만 나가는 상황에서 매출을 반영한 주가 상승이 아닌 미래 기대치로 인한 상승이므로 코로나 상황에 따라 언제든 주가가 다시 폭락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한발 늦게 상품 판매를 시작한 하나투어는 “2020년 12월 14일부터 해외여행 상품 기획전을 오픈했지만 며칠 동안 실질적인 예약률은 저조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 해외여행이 가능한 시점이 온다고 해도 여행 자체가 예전만큼 자유롭지 않다. 한창 해외 여행객을 향해 프로모션을 띄우고 있는 사이판의 경우만 봐도 여행객들은 도착 전후로 코로나19 테스트를 총 3번 받아야 하고, 개별 이동시 공식 인증을 받은 차량과 가이드를 동반해야 하는 등 까다로운 부분이 많다.
업계 전문가들의 전망 역시 낙관적이지 않다. 대형 여행사 관계자는 “2021년에도 여행 재개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코로나19가 진정되면 억눌렸던 해외여행 수요가 폭발할 것이라는 예상은 일반인들의 시각이다. 국내여행과 달리 해외여행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해당 지역의 상황도 같이 따라줘야 한다”며 “해외여행 수요가 다시 코로나19 이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회복되려면 항공의 여객노선 회복과 각국의 서로 다른 여건 등으로 인해 최소 4년은 걸릴 것”이라 전망했다. 업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4년 이상이 걸릴 수도 있고 아예 다시는 예전처럼 돌아가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항공노선 사라지면 수요도 사라져
여행수요를 좌우하는 항공노선 상황도 녹록지 않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노선을 빼기는 쉬워도 다시 심는 건 쉽지 않다. 국가 간 협정도 필요하고 노선을 하루아침에 넣고 빼고 할 수도 없다”며 “항공 수요가 예전 같지 않고 방역에 대한 부담 때문에 항공료 가격이 오를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인 데다 항공사들도 예전처럼 수요가 예측된다고 해서 노선을 경쟁적으로 띄우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장거리 노선을 갖고 있는 대형 항공사들이 여객기를 화물전용기로 전환해 수익성을 높이며 코로나19 위기에 대응해 왔기 때문에 이를 다시 수익이 불확실한 데다 방역상황에 따라 언제 운항중단이 될지도 모르는 여객기로 돌릴지는 미지수다. 대한항공의 경우 3월에 35기였던 화물기를 11월에는 650기까지 늘렸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줄어든 여객 매출을 화물로 전환해 전년대비 50% 수준의 매출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대한항공의 경우 3월에 35기였던 화물기를 11월에는 650기까지 늘렸다. 사진=대한항공 제공
또 다른 항공 관계자는 “코로나19 백신이나 치료제가 전 세계적으로 안정적으로 보급되어야 해외여행이 재개될 수 있는데 그러려면 2021년 상반기는 어림도 없다. 하반기나 2022년이 될 가능성도 있다. 백신이나 체료제가 보급된 나라만 선별적으로 조금씩, 그것도 비교적 안전한 동남아와 괌‧사이판 등의 단거리 위주로 풀릴 텐데 그것도 비즈니스용 골프나 출장을 위한 상용 중심일 것”이라 전망했다.
반면 양국 간 방역협정을 통해 여행객을 오가게 하는 ‘트래블버블’도 아직 현실화되기엔 이르다는 평이다. 대만 랜드사를 운영하는 C 씨는 “국내 확진자 수가 많지 않았을 때 방역이 잘 되고 있는 대만과의 트래블버블을 기대하는 이야기가 많았지만 그때도 현실성이 많지는 않았다”며 “대만은 방역에서 상당히 보수적이다. 대만이 국내 방역이 어느 정도 잡힌 상황에서 섣불리 외국인 여행을 재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토교통부가 2020년 12월 8일 ‘항공·관광 회복 전략 토론회’에서 트래블버블을 어떤 국가와 어떤 방식으로 체결할지에 대해 기준을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 있지만, 최근 국내 코로나19 확진자가 1000명을 넘어서는 상황이 되면서 트래블버블은 먼 얘기가 돼버렸다. 문체부 관계자는 “트래블버블이 현실화되기 위해선 먼저 국가별 코로나19 상황에 맞춘 입국제한 조치 차등화가 필요하고, 표준화된 건강 증명서를 마련해야 하는 등 면역여권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소비심리 위축으로 여행은 사치
패키지사와 그의 조력자였던 랜드사의 앞날이 밝지 않다. 사진=일요신문DB
코로나19 이전, 해외여행 인구가 3000만 명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누구나 해외여행을 떠났던 대한민국의 그 한쪽을 저가 패키지여행이 떠받치고 있었다. 하지만 저급 호텔과 식당을 연결하고 단체로 몰려다니는 방식으로 인해 방역에 취약한 저렴한 패키지여행 시대는 코로나19로 인해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대신 특급호텔과 고급 식당을 연결하고 안전을 담보하는 소규모 럭셔리 프라이빗 여행이 늘어날 거라 예상되면서 소위 ‘있는 사람’ 아니면 해외여행 자체를 떠나기가 힘들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는 저가 수요는 물론 저가의 현지 인프라 공급마저 여의치 않게 될 패키지사와 그의 조력자였던 랜드사의 앞날이 밝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2021년, 자의든 타의든 코로나19로 인해 여행 산업 전반의 생태계 변화가 예고된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