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판 강화’ 속 글로벌 기관들 투자 행렬에 가격 상승…유용성 의문에 변동성 우려 여전
2021년이 비트코인을 포함한 가장자산이 기존 금융시스템에 편입되는 한 해가 될지 주목된다.
개인이 주도한 가격 급등 후 폭락했던 2017년과 양상이 다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표적인 인플레이션 헤지 자산인 금이 온스당 2000달러를 기록한 후 1800달러대까지 주저앉은 것과 대조적이다. 관심은 비트코인이 과연 다른 실물자산이나 화폐처럼 가치저장과 교환기능을 얼마나 인정받느냐로 모아진다.
최근 블랙록, 뱅가드, 피델리티 등 세계적인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이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자산 사업을 추진하거나 비트코인 전담 자회사를 설립하고 있다. 미국의 신생 자산운용사인 그레이스케일은 이미 52만 개 이상의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으며, 비트코인 투자상품을 주축으로 한 디지털 자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레이스케일이 1분기에 비트코인 신탁 상품 자금을 모집했는데 이 중 기관투자자의 비율이 88%를 차지하기도 했다.
투자은행 JP모건은 비트코인 실명계좌 개설을 허용하는가 하면 나스닥 상장기업 마이크로스트레티지는 지난 3분기에만 4억 2500만 달러의 비트코인을 사들이는 등 은행과 기업들까지 투자에 가세하고 있다. 최근 세계 최대 전자결제 업체 페이팔은 가상자산으로 결제하는 서비스를 개시했는데, 이는 가상자산이 서서히 화폐로서의 교환매개 기능을 갖춰갈 것이란 전망에 힘을 불어 넣었다. 가상자산에 우호적인 인사들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경제팀에 대거 합류하고 있다는 점도 관련 시장의 성장 기대감을 끌어올린다.
기관들이 비트코인에 뛰어드는 배경으로는 이른바 ‘안전판(Safeguard)’ 강화가 꼽힌다. 미국 재무부는 은행과 중개기관들에게 가상자산 거래기록 유지와 제출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지난 수년간 비트코인을 보관하거나 거래를 중개하는 업체들은 기관투자자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일정수준 이상의 자격요건을 갖춰 왔다. 최근 기관투자자들이 이들을 통해 비트코인 거래에 뛰어든 것은 결국 기존 금융시스템으로부터 ‘거래상대방(Counterpart)’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금과 달리 비트코인은 공급이 극히 제한적이다. 이론적으로 2100만 코인이 생산 한도다. 4년마다 반감기를 맞아 공급량이 2분의 1씩 줄어든다. 현재 비트코인 시장 규모는 금(약 9조 달러)의 10분의 1도 채 되지 않는다. 비트코인 시장이 금의 10분의 1까지만 성장한다고 해도 1860만 개에 달하는 현재까지의 채굴량을 감안할 때 가격은 4만 8000달러가 돼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유용성에 대한 의문과 변동성에 대한 경계가 상당하다. 민간의 가상화폐가 유통되면 중앙은행을 통한 국가권력의 통화정책을 위협할 수 있다. 각국 중앙은행들이 최근 자체적인 디지털화폐 연구에 한창인 이유다. 통화의 디지털화가 이뤄지더라도 비트코인 등 민간발행 형태가 아닌 중앙은행 주도가 될 가능성이 아직은 더 크다.
약 2%의 익명 보유자가 전체 비트코인의 95%를 보유한 점도 위협요소다. ‘고래’라고 불리는 이들이 현금화를 위해 비트코인을 대거 매도한다면 가격이 폭락할 수도 있다. 기관들이 비트코인 보유를 늘리고 있지만, 아직 포트폴리오의 극히 일부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