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월스트리트 큰손들 ‘이번엔 다르다’ 적극 투자…“높은 변동성, 불법 규정 가능성” 경고도
최근 암호화폐(가상화폐) 투자자들이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이름을 호기롭게 부르고 있다. 유시민 이사장은 2017년 12월 JTBC 시사교양 프로그램 ‘썰전’에 출연해 “비트코인은 바다이야기 같은 도박”이라며 “사기를 치려고 했기 때문에 사기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되지 않고 기술적인 면과 시스템을 검토해 볼 때 비트코인이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은 제로라고 본다. 사기다”라고 말했다. 유 이사장은 비트코인 열풍을 대표적인 투기과열현상인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버블’에 빗대기도 했다.
최근 비트코인 가격이 전고점을 돌파하면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과거 발언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사진=JTBC ‘썰전’ 캡처
그렇다고 모든 암호화폐가 다시 과거 가격을 회복한 건 아니다. 국내에서 꽤 인기 있었던 암호화폐인 퀀텀은 3년 전 약 12만 8000원을 기록했다가 하락해 회복하지 못하고 현재 2700원 정도로 거래되고 있다. 이더리움 가격은 2017년 말 최고가의 약 58% 수준이고, 라이트 코인이나 리플도 최고가의 약 20%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비트코인 대신 알트코인(비트코인 이외의 후발 암호화폐)에 투자한 투자자라면 아직도 손해를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3년의 기간을 흔히 ‘크립토 겨울’이라고 부른다.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 시장이 꽁꽁 얼어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암호화폐 전체 시가총액 중에서 비트코인이 차지하는 비중(비트코인 도미넌스)은 약 65% 정도다. 비록 알트코인은 회복하지 못했지만 시가총액에서 비트코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높다 보니 시장 전체는 활기를 띤 모양새다. 암호화폐 투자자들도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다’며 자신 있게 “유시민 나와!”를 외치는 모양새다.
비트코인이 다시 역대 최고가를 쓴 배경은 무엇일까. 투자 관련 유튜버인 김동주 이루다투자일임 대표는 “가장 중요한 건 유명 헤지펀드 매니저들과 상장사 등 제도권에서 비트코인을 도입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르네상스 테크놀로지, 폴 튜더 존스, 스탠리 드러켄밀러, 구겐하임 파트너스 등이 비트코인을 포트폴리오에 담았다. 대부분의 자산군은 신뢰에 기반한 것인데 제도권에서 비트코인을 자산군으로 편입하면서 신뢰가 급상승했다”고 설명했다.
한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최근 무역 업체들 중에서도 비트코인 계좌를 열었다는 곳을 들었다. 준비금 명목으로 현금과 함께 비트코인도 준비하는 것으로 안다”면서 “큰 기업에서도 비트코인을 편입하는 걸 보면서 과거 뜬 구름으로만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는 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3년 전 비트코인으로 큰 수익을 봤던 한 투자자는 비트코인 급상승에 코로나19 유행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을 내놨다. 그는 “코로나19로 인해 재택근무, 화상회의 등 산업 전체적으로 디지털화가 시작됐다. 이에 따라 사람들도 디지털에 대해 좀 더 긍정적인 시각을 갖게 됐고 디지털 자산에 대한 시각도 달라졌다”고 관측했다.
김동주 대표는 또 코로나19로 인해 시작된 Fed(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양적 완화도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김 대표는 “Fed가 다시 양적완화를 하면서 화폐 가치가 떨어져 법정 통화에 대한 신뢰가 하락했고 비트코인이 인플레이션을 대비할 자산의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말처럼 최근 비트코인은 월스트리트의 유명 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담고 있다. 테슬라의 상승을 정확히 예측해 엄청난 수익률을 올려 주목받은 투자전문회사 ARK 인베스트먼트도 여기에 포함된다. 캐시우드 ARK 인베스트먼트 대표는 “비트코인 가격이 50만 달러에 도달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유명 투자자들이 비트코인을 포트폴리오에 담으면서 ‘이번엔 다르다’는 기대감이 나오고 있다.
유명 애널리스트 린 알든은 “금의 전체 시가총액이 9900조 원 정도다. 비트코인의 시가총액은 약 450조 원으로 금의 약 5% 수준이다. 비트코인이 금 시가총액의 약 10%만 도달해도 비트코인 1개당 4만 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린 알든은 “금은 무게와 부피가 있어 이동이 불편하지만 비트코인은 매우 쉽다. 또한 금의 매장량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비트코인은 2100만 개로 희소성이 확정돼 있다”며 “현재 전 세계 국가들이 화폐를 찍어내고 있어 각국 화폐 가치가 급락하고 있다. 이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수량이 한정된 비트코인에 투자할 만하다”고 설명했다.
이런 흐름과 함께 나스닥 상장사인 마이크로스트레티지는 비트코인에 속된 말로 ‘몰빵’을 하고 있어 주목 받았다. 마이크로스트레티지는 현금성 자산의 약 80%를 비트코인에 투자해 약 4만 개 이상 보유하고 있다. 비트코인 가격이 치솟으면서 이 회사는 3년치 영업이익 이상을 단기간에 벌어들였다. 심지어 12월 13일 마이크로스트레티지는 비트코인을 더 사겠다며 4000억 원 규모의 전환사채 발행 계획을 밝혔다.
김동주 대표는 “비트코인은 ‘자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으냐’, ‘그걸 누가 인정해 주느냐’가 가장 중요한 이슈였다. 예전에는 극소수의 사람들만 인정했던 분위기였는데 이젠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거기엔 월스트리트에서도 꽤 핵심 인물, 기관들도 포함되고 있는 모습을 봐서는 이번에는 다르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김 대표는 “다만 그렇다고 해도 단기적 가격 변화는 아무도 모른다”고 강조했다.
낙관론만 있는 건 아니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를 운영하는 레이 달리오 브리지워터 회장은 일부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레이 달리오는 비트코인이 화폐처럼 교환수단과 가치 저장 기능을 수행하기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높은 변동성과 함께 정부가 비트코인을 불법으로 취급할 수 있음을 경고하기도 했다.
마이크로스트레티지가 비트코인을 사겠다며 채권 발행을 예고하자 시장에서는 주가가 하루 만에 약 8% 하락하기도 했다. ‘이번엔 다르다’는 비트코인 투자자들의 마음처럼 마이크로스트레티지의 도박이 성공할지 그 결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