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힘 못쓰자 의결권 모아 임시주총 요구…“신한금투 변종 공매도 탓” 주장도
씨젠 소액주주들이 의결권을 확보해 임시 주주총회 소집을 요구하고 나섰다. 천종윤 씨젠 대표가 지난 2월 2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진단업체 ‘씨젠’에서 열린 코로나19 진단시약 기업 현장 간담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K바이오’ 주역 꼽혔지만 주가 방어는…
씨젠은 2000년 설립돼 2010년 코스닥에 상장한 분자진단 전문기업이다. 분자진단은 혈액, 객담, 소변 등 체외진단으로 유전자 검사를 통해 질병을 진단하는 선진 기법이다. 이전까지 다른 바이오기업들과 크게 다르지 않던 씨젠은 코로나19 진단키트를 2주일 만에 개발하면서 ‘K바이오’ 주역으로 떠올랐다. 2020년 1월 코로나19 유전자 염기서열이 공개된 직후 씨젠에서 개발한 진단키트는 2020년 2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긴급 사용승인을 받았다.
이후 한국을 포함해 60여 개국에서 씨젠의 진단키트를 도입하면서 수출 실적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19년 3분기 314억 원이던 매출액은 2020년 3분기 3268억 원으로 10배 이상 급증했다. 같은 시기 영업이익은 2099억 원으로 전년(68억 원) 대비 30배 이상 올랐다.
그러나 성공적인 외형 성장과는 달리 최근 주가는 이전만 못하다.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의 출시가 예고되자 시장이 예민하게 반응한 탓이다. 지난 8월 7일 52주 최고가 31만 2200원을 기록했던 씨젠 주가는 하락세를 보이다 지난 11월 24일(18만 5500원)부터 10만 원 후반대까지 떨어졌다. 이후 20만 원 안팎에서 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12월 29일 기준 종가는 19만 9300원을 기록했다.
고점 대비 30% 이상 주가가 하락하자 소액주주들의 불만은 증폭됐다. 주가 하락에 회사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한 씨젠 소액주주는 “회사가 실적을 믿고 시장 반응에 안일하게 대응하는데, 주가가 하락하면 그 피해는 개인투자자들이 떠안는다”며 “전문가들은 치료제와 백신이 출시되어도 향후 1~2년간은 진단키트의 필요성과 수요가 유지될 것이라 전망하는데, 회사는 이를 적극적으로 알려 주가를 방어하거나 부양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결국 씨젠 소액주주 8800여 명으로 구성된 씨젠주주연합회는 의결권 위임을 통해 단체행동에 나섰다. 지난 11월 26일부터 위임장을 모으기 시작해 지난 12월 24일 3%(약 79만 주)를 돌파했다. 연합회는 법무법인 전문을 대리인으로 선정하고 씨젠에 정관변경과 사외이사 선임, 코스피 이전 상장 등을 위한 임시 주총 소집청구서를 발송할 계획이다. 조상철 씨젠주주연합회 대표는 “3월 주총까지 기다릴 수 없어 주가 부양 및 주주친화 정책을 요구하는 임시 주총을 앞당겨 열 수 있도록 준비 중”이라며 “단기간에 많은 인원이 참여해 의결권 4%를 앞두고 있는데, 이는 그만큼 투자자들이 절박하고 답답한 심경이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씨젠도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12월 14일 씨젠은 배당금 확대 계획을 공시했다. 씨젠은 전년 주당 100원이던 배당금을 주당 1500원으로 전년 대비 15배 늘렸다. 지난 12월 29일에는 씨젠 이민철 부사장 등 상무 이상 임원 26명이 총 1만 6300주에 달하는 자사주를 매입한 사실을 공시하기도 했다. 이날 씨젠 주가는 12.73% 상승했다.
그러나 이번 배당금의 경우 배당금 총액 389억 원 가운데 125억 원가량을 천종윤 씨젠 대표를 비롯한 오너 일가와 특수관계자가 가져가면서 “소액주주 아닌 오너일가를 위한 배당”이라는 비난도 나온다. 씨젠 지분 18.12%를 보유한 천종윤 대표는 71억 원, 천 대표의 부인(0.78%)과 두 딸(각 0.38%)은 총 6억 원가량의 배당금을 받게 됐다. 개인투자자들은 앞서 씨젠에 현금배당 대신 주식배당을 하는 방법도 제안했으나 씨젠 측은 “시기상 어렵다”고 거절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진=씨젠 홈페이지 캡처
#시장조성자 제도 불신 재점화
씨젠 소액주주들은 시장조성자 제도를 악용한 ‘변종 공매도’가 가장 큰 문제라고 주장한다. 별다른 이유 없는 주가 하락의 배경이 시장조성자의 공매도 등을 통한 시세조종이라고 보는 것이다. 시장조성자 제도는 유동성 공급을 위해 증권사가 매수‧매도 호가를 지속적으로 제시하는 역할을 맡는 제도다. 시장조성자는 유동성 공급을 위해 위험을 회피해야 하는 만큼 공매도 금지 기간에도 공매도가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씨젠의 시장조성자는 신한금융투자로, 씨젠을 포함해 99개 종목의 시장조성자로 지정됐다.
이런 가운데 지난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자료가 일부 소액주주들의 신한금투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공매도 금지 후 주식시장 공매도 현황’ 자료에 따르면 공매도 금지기간인 지난 3월 16일부터 8월 31일까지 공매도 상위 종목 2위에 씨젠이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씨젠의 일평균 공매도 금액은 24억 원으로 1위 삼성전자(일평균 26억 3000만 원)의 뒤를 이었다.
변종 공매도 관련 의혹은 개인투자자들이 모인 커뮤니티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를 중심으로 확산된 바 있다. 시장조성자인 신한금융투자 창구에 매도물량이 집중되면서 주가가 하락했다는 의혹이다. 지난 9월에는 주요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에 ‘신한불법공매도’ 키워드가 떠오르는 실검챌린지도 벌어졌다. 당시 실검챌린지는 에이치비엘 주주들을 중심으로 진행됐지만, 씨젠 등 신한금융투자가 시장조성자로 있는 다른 기업의 소액주주들 또한 동참했다.
씨젠 소액주주들은 이보다 앞선 지난 8월에도 신한금투에 대한 변종 공매도 의혹을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올리기도 했다. 지난 8월 19일 신한금투에서 씨젠 순매도 물량 43만 주가 쏟아져 나오며 주가가 전장 대비 8.5% 급락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앞서의 씨젠 소액주주는 “회사가 대응하지 않아 개인투자자들이 직접 호가를 모니터링하고 관련 자료를 공유하고 있다”며 “임시주총은 변종 공매도 세력에게 ‘회사가 대응하지 않아도 개인투자자들이 지켜보고 있다’고 알리는 방법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이에 씨젠 관계자는 “간담회 등을 통해 충분히 소통했으나 시장조성자 제도에 대해 오해하는 점들을 설명해드려도 불신을 해소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금융당국이 아닌 기업 입장에서 일부에서 우려나 잡음이 나온다고 해서 시장조성자를 교체하기는 쉽지 않다”고 전했다. 이어 “개인투자자분들이 합법적 절차에 의해 의결권을 모아 요구하고, 필요로 한다면 임시 주총을 여는 방법도 검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