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의 난’ 속 아트라스BX 합병 결정…소액주주들 “자진상폐 실패하자 꼼수” 집단소송 예고
한국테크놀로지그룹(옛 한국타이어그룹)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11월 21일 조현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사장이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한 모습. 사진=연합뉴스
#형제의 난에 소액주주 반대까지
이번 인사를 통해 차남인 조현범 사장은 지난 6월 아버지 조양래 회장 지분 전량(23.59%)을 넘겨받아 최대주주로 올라선 지 5개월 만에 지주사 대표이사에 이름을 올렸다. 조 사장은 앞서 하청업체로부터 수억 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으면서 대표이사에 오를 수 있었다.
그룹이 조현범 사장을 대표이사로 선임하고 한국아트라스BX를 흡수 합병키로 한 배경에는 조양래 회장이 추진하는 조현범 사장의 승계구도를 공고히 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각자 대표 체제를 통해 책임경영을 강화하고 “장남 조현식 부회장은 그룹의 이미지와 계열사 시너지에, 조현범 사장은 신사업 개발을 통한 신성장 동력 확보에 주력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룹의 알짜 계열사로 꼽히던 한국아트라스BX를 합병하면 신사업에 주력해온 조현범 사장 승계에 힘을 실을 수 있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문제는 대표이사 체제 변경과 합병 등으로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안팎이 시끄럽다는 점이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형제 간 경영권 분쟁이 한창이다. 지난 7월 장녀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이 차남에게 조양래 회장에 대해 성년후견 개시 심판을 청구했고, 지난 10월에는 장남인 조현식 부회장도 참가인 자격으로 의견서를 제출했다. 성년후견이란 독자적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성년이 보증을 서거나 타인과 계약을 맺을 경우 후견인의 동의를 얻거나 후견인이 대리하게 하는 제도다. 조희경 이사장은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이사회가 열리기 하루 전날인 지난 11월 25일 성년후견 심판과 관련해 처음으로 법원에 출석해 청구인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아트라스BX(아트라스BX) 합병 결정에 대한 소액주주들의 반발도 거세다. 아트라스BX의 지분구조는 한국테크놀로지그룹(31.13%)과 일반주주(10.44%), 자사주(58.34%)로 이뤄져있다. 모회사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지난 2016년부터 자사주 공개매수를 통한 아트라스BX의 자진 상장폐지를 추진해왔으나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을 비롯한 소액주주들의 반발에 부딪혀 결국 무산됐다. 또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지난해 상반기 사명을 한국아트라스BX(이전 아트라스BX)로 변경하고 브랜드 수수료를 받으며 소액주주들과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자진상폐 시도에 이어 꺼내든 흡수합병 카드도 난관이 예상된다. 먼저 지난 2일 아트라스BX 소액주주 모임은 이번 합병에 대해 금융감독원에 반려 요구 민원을 제출하는 등 본격적으로 반대 움직임에 나섰다. 소액주주 모임은 집단 소송을 위한 변호사 선임과 참여자 모집을 진행 중이다.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 또한 조만간 대응에 나설 예정이다. 김봉기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는 “소액주주 모임의 집단소송과는 별개로 법률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며 “조만간 대응책을 밝힐 것”이라고 전했다. 김 대표가 발기인으로 참가한 사단법인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이 의견을 개진할 가능성도 있다. 일부 소액주주는 아트라스BX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의 움직임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한국아트라스BX 흡수합병 결정에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을 비롯한 소액주주들의 반발이 거세다. 강남구 테헤란로 한국타이어 본사 사옥. 사진=박정훈 기자
#금융당국 ‘땜빵식’ 개정에 예견된 행보
아트라스BX 합병의 주요 쟁점은 자사주 취급 방식이다.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과 소액주주들은 “회사 자금 약 2700억 원을 투입해 자사주를 과다하게 매입해놓고, 자사주가 마치 대주주(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지분인 것처럼 활용하려 한다”며 합병을 반대하고 있다. 소액주주들은 그간 회사가 자진상폐를 목적으로 매입한 자사주 비율이 과도하게 높아지자 꾸준히 자사주 소각을 요구해왔다.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은 이와 관련, 지난 11월 13일 임시 주주총회 소집도 요구했지만 사측은 답변을 내놓지 않고 갑작스러운 합병 계획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합병의 합병비율은 1 대 3.39로, 소멸법인인 한국아트라스BX 한 주당 존속법인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주식 3.39가 배정된다. 소액주주 모임은 민원을 통해 “증권신고서에 기재된 바로는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아트라스BX 자사주와 지분 교환에 대해서는 신주발행을 하지 않고, 소액주주의 주식교환에 대해서만 신주를 발행한다”며 “이는 아트라스BX가 보유한 자사주가 소각되는 효과(발행 주식 수가 줄어들어 주당 가치가 높아지는 효과)로, 한국아트라스BX 주주가 누려야 할 주주가치 상승분을 한국테크놀로지 주주와 함께 나누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사측이 자사주에 대한 소수주주의 지분은 인정하지 않고 소수주주가 직접 보유한 지분에 대해서만 권리를 부여해 합병하려 한다는 것.
이 경우 한국테크놀로지 대주주인 오너 일가에게 이익이 돌아간다는 것이 소액주주들의 입장이다. 한국테크놀로지 대주주는 지분 73.92%를 보유한 오너 일가다. 그러나 오너 일가는 아트라스BX 지분은 전혀 보유하고 있지 않다. 이에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 측은 “지배주주가 본인이 선임한 이사들의 의결을 통해 계열사를 합병, 국민연금 등 일반주주 돈 3000억 원을 약탈한 사건”이라며 “이번 합병은 지배주주가 한국테크놀로지그룹과 아트라스BX의 경영의사를 결정하는 쌍방대리 상태에서 결정돼 민사법 대원칙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아트라스BX가 자사주를 매입해 자진상폐를 시도하거나 이번처럼 흡수합병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까닭은 상장 규정의 허점 때문이다. 한국거래소와 금융위원회가 2017년 6월 코스닥 상장폐지 규정을 개정하며 분산요건 산정 시 자사주를 대주주 소유로 변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해당 규정이 대규모 자사주 취득 방식의 자진상폐에 악용되자 2018년 6월 상장폐지 관련 예외조항을 신설하고, 2019년 4월 또 다시 관련 규정을 개정하며 이를 제한했다.
결국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규정 개정에 따라 자기주식 취득을 통해 자진상폐를 시도했으나, 또 다시 규정이 개정되며 실패하자 흡수합병 결정을 내리게 된 셈이다. 그러나 이 같은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행보는 이미 예견된 문제였다. 앞서 금융소비자원은 지난해 4월 금융당국이 코스닥 상장폐지 규정 개정을 예고하자 “거래소와 금융위는 소수주주들 민원에 대해 임시방편 혹은 땜질식 대응으로 일관했다“며 ”투자자 보호와 공정한 가격형성이라는 거래소 본연의 목적에 맞는 규정개혁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의견서를 거래소와 금융위에 제출한 바 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장은 ”자사주는 기본적으로 소각이 원칙인데, 대주주에 유리한 산정근거를 줘 자사주가 악용되고 있다“며 ”금융당국은 부작용이 드러남에도 세세한 부분만 손대고 근본적 변화 의지는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 결과 현재 상법 개정을 앞두고 모든 기업들이 합병이나 분할을 통해 대주주 이익을 챙기려 한다는 우려가 제기된다“고 덧붙였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자사주를 활용한 자진 상폐 등의 악용을 막기 위해 앞서 두 차례 세칙을 개정했으나 현재 추가적인 개정 계획 등은 없다”며 “개별 종목의 합병 건에 대해서는 거래소가 입장을 내놓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은 합병 건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 관계자는 소액주주들의 반발에 대해 “금융당국에 민원이 제기됐으나 지주사나 그룹사에 전달된 내용은 없어 그룹차원에서 별도의 입장을 낼 만한 상황은 아니다”며 “추후 상황을 지켜보고 대응해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