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민 의장 2개월 직무정지 처분에 ‘법적 대응’ 반발…야구계 “리그 퇴출까지 고려하라” 일제히 분노
‘야구 놀이’로 논란을 빚은 허민 의장은 KBO로부터 직무정지 징계를 받았다. 사진=연합뉴스
#이택근의 고발로 다시 조명된 ‘야구놀이’ 논란
허민 의장은 2019년 6월 2일 고양 히어로즈(키움 2군)가 경기장 및 훈련장으로 대여해 사용하고 있는 고양 국가대표 야구훈련장을 방문했다. 선수들의 훈련 일정이 모두 끝난 뒤 일부 타자들을 타석에 세워놓고 투구 연습을 했다. 구단 관계자는 “2군 운영 현황을 보러 현장을 찾았다가 선수들이 ‘허 의장의 너클볼을 쳐보고 싶다’고 자청해 마운드에 섰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허 의장은 유니폼과 모자를 착용하고 스파이크까지 신은 채 프로 선수들을 상대로 개인 훈련을 했다.
처음이 아니었다. 허 의장은 그해 2월 키움의 미국 스프링캠프에서 이미 프로 선수들을 상대로 게임을 했다. 선수들의 실전 훈련을 위해 계획한 팀 자체 평가전에 직접 원정팀 선발 투수로 나섰다. 그때 타석에서 허 의장을 상대한 타자들은 박병호, 서건창, 김하성, 이정후 등으로 구성된 주전 라인업이었다. 아마추어인 허 의장이 리그에서 내로라하는 스타플레이어들과 같은 경기를 뛴 것이다.
허 의장의 ‘아주 비싼 야구 놀이’ 사건은 당시 목격자가 많지 않아 유야무야 넘어갔다. 그러나 2군에서의 투구 장면은 큰 파문으로 번졌다. 선수들을 응원하러 찾아왔던 한 팬이 그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 한 방송사에 공익 제보한 덕이다. 구단은 일단 “의도했던 바는 아니지만 논란을 만들어 죄송하다. 앞으로는 오해의 소지를 만들지 않겠다”고 사과하는 척했다.
그러나 뒤에서는 곧바로 ‘제보자 색출’에 나섰다. 2군 구장에 임의로 설치한 CCTV 영상을 확인한 뒤, 이택근의 오랜 팬이 영상 촬영자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김치현 키움 단장은 곧바로 이택근을 불러 “영상을 촬영한 팬에게 언론사 제보 여부와 이유를 확인하라”고 지시했다. 이택근이 응하지 않자 구단이 직접 대응하겠다며 팬의 신상정보를 캐물었다.
이 모든 상황에 극도의 정신적 혼란을 겪은 이택근은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뒤 오랜 결심을 실행에 옮겼다. KBO 클린 베이스볼 센터를 찾아가 ‘키움 히어로즈 구단과 관계자에 관한 품위손상 징계 요구서’를 제출했다. 선수 개인이 KBO에 구단을 고발한 건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초유의 사건이다.
이 사실이 알려진 뒤 키움은 거짓 해명과 반박으로 사태를 무마하려 애썼다. 그러자 이택근은 구단의 입장과 상반된 내용이 담긴 김치현 단장의 녹취록을 공개했다. 동시에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와 한국프로야구은퇴선수협회(은선협)가 차례로 KBO를 향해 “키움 구단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강력한 징계를 촉구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거짓말이 들통 나고 사방에서 손가락질을 당하기 시작한 키움은 언제나처럼 “KBO의 판단에 맡기겠다”며 침묵 속으로 빠져 들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한 사과나 해명은 늘 그랬듯 일체 하지 않았다.
키움 히어로즈가 또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KBO 상벌위의 징계에 법적 대응 방침을 밝힌 것. 키움 이정후 선수의 경기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계없다. 사진=박정훈 기자
#KBO 상벌위원회와 정운찬 총재의 대립
결국 KBO는 2020년 12월 22일 키움 구단과 관련한 상벌위원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허민 의장의 갑질 및 키움 구단의 팬 사찰 의혹을 명확히 규명할 필요성을 느껴서다. 선수의 요청에 따라 구단이 조사를 받고, 상벌위원회 심의까지 거치게 된 건 리그 출범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키움 구단 내부의 병폐가 그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는 의미다.
이택근은 상벌위원회 회의에 직접 출석해 상세한 진술을 했다. 김치현 단장도 구단 관계자와 함께 상벌위원들을 만나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상벌위원회 심의 결과는 회의 개시 후 4시간이 지나도록 공개되지 않았다. KBO는 이날 발표를 미루면서 “키움 구단이 소명 기회를 요청해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튿날 구단이 소명서를 제출하면, KBO는 해당 내용을 추가로 확인한 뒤 최종 결정을 내릴 예정”이라고 했다. 상벌위원회 결과 발표를 하루 미뤄야 할 정도로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는 얘기였다.
다음날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키움의 소명서 제출이 끝난 뒤 정운찬 KBO 총재와 상벌위원회 사이에 격론이 벌어졌다. 허 의장의 ‘갑질’에 관한 법리적인 해석과 여론 사이의 간극이 꽤 컸기 때문이다. 상벌위원들은 마라톤 회의 끝에 ‘엄중 경고’라는 형식적 징계로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최종 결정권자인 정 총재는 상벌위원회 결정에 동의하지 않았다. 총재 임기가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키움 구단 문제를 흐지부지 덮어버리고 떠날 수는 없다는 뜻도 담겨 있었다. 정 총재는 “허 의장에게 실질적인 징계를 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반면 상벌위원회에 포함된 법조인들은 “처벌 근거가 부족하다. 법적 해석과 KBO 규약상 ‘엄중 경고’가 가장 적합한 징계”라고 해석했다. 키움 구단과 허 의장을 징계할 수 있는 규약상의 근거는 제151조 ‘품위손상 행위’뿐이다. 이 규약에서는 ‘마약범죄, 병역비리, 인종차별, 폭력, 성범죄, 음주운전, 도박, 도핑 등 경기 외적으로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를 예로 들었다. 이 때문에 사안을 보수적으로 봐야 하는 법조인들은 “더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신고인의 주장을 수용하기는 어렵다”고 재차 강조했다.
물론 정 총재와 KBO 역시 “법정 공방으로 이어지면 키움이 승소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을 내린 상태였다. 그러나 이목이 집중된 키움 사태를 ‘엄중 경고’로 끝낸다면 야구계 안팎의 거센 비난도 피하기 어려웠다. 최적의 절충안을 찾는 게 정 총재와 KBO의 숙제였다.
결국 KBO는 두 번째 상벌위원회를 진행한 12월 23일 “정운찬 총재가 해당 내용을 더 숙고한 뒤 최종 결정을 내리기로 해 발표를 하루 더 미룬다”고 전했다. 심지어 다음 날인 24일 역시 총재와 상벌위는 입장 차를 좁히지 못했다. 역시 “총재가 아직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조금 더 숙고한 뒤 징계 여부를 결정할 것”는 입장만이 돌아왔다. 상벌위를 개최하게 된 발단과 원인, 그리고 그 과정까지 모두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이 연이어 벌어졌다.
정운찬 총재는 키움 구단에 대한 징계 확정에 장고를 거듭했다. 사진=임준선 기자
#KBO 징계에 법적대응을? 갈 데까지 가는 허민
정운찬 총재가 최종 결정을 내린 건 크리스마스 연휴가 끝난 12월 28일이었다. KBO는 이미 종무식을 마친 뒤였지만, 주요 관계자들이 모두 출근해 총재의 임기 마지막 선택을 지켜봤다. 정 총재의 결론은 결국 ‘허 의장 징계’ 쪽으로 기울었다. 프로야구 현역 선수들과 은퇴 선수들의 집단 반발, 야구계 안팎의 비판 여론 등을 고려해 마지막 순간 ‘프로야구의 존엄성’을 지키기로 결심한 것이다.
KBO는 “허 의장이 이사회 의장 신분에서 부적절하고 불필요한 처신을 함으로써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KBO리그의 가치를 훼손했다고 판단했다. 야구 규약 제151조 ‘품위 손상 행위’와 부칙 제1조 ‘총재의 권한에 관한 특례’에 따라 2개월 직무정지 제재를 부과하고, 재발 방지를 촉구했다”고 전했다. 부칙 제1조는 ‘총재는 리그의 무궁한 발전과 KBO의 권익을 증진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KBO 규약에 명시적으로 규정하지 않은 사항에 대하여도 제재를 내리는 등 적절한 강제 조치를 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정 총재는 이 직권을 사용해 상벌위원회 결론보다 강한 직무정지 징계를 추가했다.
KBO는 또 키움 구단의 팬 사찰 논란에 관해 “사법기관의 판단이 필요한 사안이므로 이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 향후 사법적인 조치가 이루어지는 경우 그 결과에 따라 제재를 심의한다. 해당 사안의 관련자들이 법규 위반이라 오해할 만한 소지가 있는 행위를 함으로써 경기 외적으로 리그의 품위를 손상한 것으로 판단해 히어로즈 구단과 김치현 단장에게 엄중 경고 조치한다”고 발표했다.
정 총재는 이와 관련해 “키움 구단은 팬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는 프로스포츠의 의무를 저버렸고, 구단과 선수 간 기본적인 신뢰 관계를 무너뜨리는 등 리그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를 했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야구계는 “허 의장이 개인의 지위를 이용해 키움 소속 선수를 상대로 투구 연습을 하는 등 프로야구의 가치를 훼손한 점을 생각하면, 직무정지 2개월도 가볍게 느껴진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자칫 엄중 경고로 끝날 수도 있던 위기가 실효성 있는 징계로 마무리된 점은 상징적”이라고 반겼다.
문제는 상벌위원회 징계 발표 다음날 더욱 충격적인 사태가 벌어졌다는 점이다. 키움 구단은 29일 보도자료를 내고 허민 이사회 의장에게 2개월 직무정지 처분을 내린 KBO의 결정에 반발했다. “구단과 (김치현) 단장에 관한 엄중 경고 처분은 수용한다. 그러나 팬 사찰 여부나 법률 위반 여부, 이사회 의장의 투구 등 행위에 대한 KBO 징계에 대해서는 사법기관의 판단을 받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법 기관의 판단’이라는 완곡한 표현을 썼지만, 결국 징계에 불복하고 법적 대응으로 맞서겠다는 의미다.
키움 구단은 지난 3월에도 이장석 전 대표이사의 ‘옥중경영’ 문제로 상벌위원회에 회부돼 벌금 2000만 원 징계를 받았다. 구단 경영을 감시했어야 할 허 의장의 직무유기도 당연히 비판의 대상이 됐다. 당시 KBO는 키움을 향해 “향후 리그 가치를 훼손하는 중대한 사안이 발생하면 KBO 규약이 정한 범위에서 강력히 처벌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런데도 KBO의 징계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태도를 취한 것이다.
#KBO도, 프로야구 OB도, 선수협도 화났다
KBO도 곧바로 유감을 표했다. 류대환 KBO 사무총장은 “KBO리그 회원사와 구성원이 KBO 징계를 받아들이지 않고 그 내용을 일반적인 법의 테두리 안에서 판단하겠다는 게 무척 당혹스럽다. KBO리그 규약과 규정은 프로 스포츠의 특수성을 고려해 일반적인 사회적·도덕적·법적 범주보다 더 강력하고 엄격한 기준에 따라 적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로스포츠의 ‘품위손상’ 관련 규약은 일반 법과 적용 기준이 다를 수밖에 없다. 류 총장은 “예를 들어 음주운전이 적발된 선수는 KBO리그에서 한 시즌의 절반 이상을 뛸 수 없도록 징계하고 있다. 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부적절한 글을 올린 선수도 KBO리그에선 강력한 징계 대상이 된다. 그만큼 프로스포츠 리그 구성원은 사회적 규범을 더 잘 지켜야 하고, 팬에게 모범을 보일 의무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KBO리그에 참여하고 있는 구단이 KBO 상벌위원회의 징계에 반기를 드는 것 자체가 최악의 선례다. KBO의 방침과 합의사항을 존중하는 건 회원사의 첫 번째 의무다. 류 총장은 “키움 구단이나 허민 의장의 사례는 현행법을 적용할 경우 징계 근거가 불충분할 수 있다. 그러나 KBO는 문제가 된 행위들이 리그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리그의 전체적인 가치를 떨어뜨렸다고 판단했기에 이전보다 강한 징계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한국 프로야구 OB 모임임 일구회도 곧바로 성명서를 발표했다. “허민 의장에게 직무정지 2개월 제재를 부과한 KBO의 결정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며 “다시는 KBO리그를 ‘야구 놀이터’로 삼지 말기를 키움과 허민 의장에게 강력하게 경고한다. 또한 키움이 이것을 계기로 더는 KBO리그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구회는 또 “프로스포츠는 팬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키움은 특정 팬을 색출해내고, 선수와 팬 사이의 신뢰를 무너뜨렸다. 여기에 개인의 ‘야구 놀이’에 선수들을 동원하는 ‘갑질’을 저질러 선수 권익도 침해했다. 그런데도 사과 한마디 없이 오히려 법적 소송전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고 통탄했다. 이어 “키움, 혹은 허민 의장이 실제로 법적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그때는 일구회는 물론 야구를 사랑하는 모든 팬이 KBO와 함께할 것이다. 소송전은 곧 야구계와 팬의 강력한 저항을 불러올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선수협도 다시 한 번 의견문을 발표해 KBO의 징계를 지지했다. “KBO 상벌위원회의 (허민 의장에 대한) 직무정지 결정이 향후 선수 권익을 침해하는 구단의 갑질 행태를 근절하고, 프로야구팬을 기만하는 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예방책이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또 “KBO 상벌위원회의 결정을 수용하지 않고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허민 의장의 태도는 리그의 가치를 심하게 훼손하는 것이며 리그 퇴출까지 고려해야 할 사안이라 생각한다. 직접적인 피해자인 키움 선수들에게 아직 사과 한마디 없는 허 의장과 재발 방지에 대한 입장 표명이 없는 키움 구단의 태도에 유감을 표명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모든 야구계가 비난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래도 키움 구단과 허 의장은 눈과 귀를 닫고 꿈쩍도 하지 않는다. 선수협이 재차 “허 의장이 KBO 징계를 수용하고 프로야구 선수와 팬들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는 것 그리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것이 KBO리그 구성원으로서 가져야 할 자세이자 막중한 책임임을 말씀드린다. 허민 의장은 리그 가치를 더는 훼손하지 말고 선수, 팬 그리고 KBO를 존중해 달라고 강력히 요청한다”고 촉구한 이유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