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구시보 “중국이 기원” 보도 뒤 억지 주장 쏟아져…김치산업 주도권 차지 ‘경제적 속셈’ 이면에 깔려
2014년 11월 16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서울김장문화제’에서 전통의상을 입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김장 담그기 체험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중국 최대 포털사이트 바이두에 ‘김치’를 검색해봤다. 쓰촨에서 유래한 절임채소 ‘파오차이’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모두 한국식 김치의 모양뿐이었다. 예전엔 이렇지 않았다. 김치를 검색하면 파오차이가 대부분이었다. 파오차이는 배추, 무, 오이, 당근, 마늘 등을 숙성된 소금물에 담가서 고온으로 발효시킨 음식이다. 쓰촨의 ‘산초’와 ‘바이주’가 들어간다. 맛은 물론, 생김새가 한국식 김치와 다르다. 파오차이가 ‘중국식 김치’인 셈이다.
발단은 2020년 11월 29일 ‘환구시보’ 보도로 시작됐다. 환구시보는 “파오차이가 국제표준화기구(ISO)로부터 국제표준 인가를 받았다”면서 “중국의 김치 산업이 국제 김치 시장의 기준이 됐다”고 보도했다. 환구시보는 “한국은 이제 김치 종주국이라는 타이틀이 유명무실해졌다”고도 했다. 파오차이가 국제표준 인가를 받은 것과 김치 산업 간에 무슨 연관성이 있느냐는 지적도 나오긴 했지만 ‘김치의 기원은 중국’이라는 목소리에 묻혔다.
장쥔 유엔 주재 중국 대사는 1월 3일 트위터에 “겨울 생활도 다채롭고 즐거울 수 있다. 그 방법 중 하나는 직접 만든 김치를 먹어보는 것”이라면서 김치 사진을 올렸다. 구독자 1400만 명의 유튜버 리즈치는 1월 9일 자신의 채널에 김장을 담그는 영상을 올리며 ‘Chinese Cuisine(중국 전통요리)’이라고 표기했다. 민관 할 것 없이 김치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는 셈이다.
가끔 논리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글이 올라오긴 하지만 대부분 한국을 조롱하거나 비아냥거리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리즈치가 영상을 공개한 후 한국 구독자들이 비판하는 글들을 올리자 1월 20일 중국 한 대학교 출판사 공식 블로그엔 “이웃집(한국)은 최근 몇 해 동안 온갖 궁리를 다해 우리의 많은 문화재를 빼앗아 갔다. 작은 권력에 속하는 김치가 대표적”이라고 했다. 이 블로그엔 “한국 네티즌들이 리즈치 방명록에 주먹다짐을 했다. 중국이 맞서 싸워야 한다”고도 했다. 이어지는 글이다.
“중국 남북조 시대 ‘제민요술’에 나와 있는 김치 담그기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다른 증거를 나열할 것도 없다. 김치는 중국어 ‘심채’에서 비롯된 것이다. 심채는 물에 잠겨 절인 채소를 뜻한다. 한국이 동양 문화의 대표자로 자처하며 김치를 서구에 수출하려는 것엔 엄청난 경제적 가치와 문화적 가치가 숨어 있다. 한국의 중화 문화 쟁탈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다. 활자 인쇄술, 강릉 단오제, 한복 등이 예다.”
인터넷과 SNS 등엔 더욱 자극적인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한 블로거는 지역 언론 기고를 통해 “한국인들은 김치 종주국임을 자처하지만 수입 김치 90%가 중국산임을 알고 있느냐. 배추도 중국에서 들여온 게 적지 않다. 한국인들의 김치는 중국 채소밭에 의존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과거 배추 가격 폭등했을 때 이명박 전 대통령이 중국에 도움을 요청, 중국 농가와 한국 가정을 연결해 준 적도 있다. 한국이 그렇게 자랑하는 김치도 결국 ‘메이드 인 차이나’”라고 덧붙였다.
현재 인터넷에선 “쓰촨에 가면 집집마다 수많은 김치가 있는데 한국은 왜 종주국 타령?” “한국은 매번 다 자기들 것이라고 주장하더라” “한국은 왜 그 냄새 나는 김치를 보물처럼 여기지” 등과 같은 글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김치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한국 측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한 네티즌은 “과거에 우리 속국 아니었나. 그때 김치가 전해진 것이다. 한국 사람은 문화에 자격지심이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의 한 김치 공장. 자막은 서경덕 교수가 한국 김치 광고를 했다는 내용. 사진=현지 언론인 제공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1월 19일 뉴욕타임스에 김치 광고를 낸 것에 대해서도 비난 글들이 폭주하고 있는 상황이다. 회원수 100만 명가량의 한 블로거는 “(뉴욕타임스 광고는) 팩트가 아닌, 얄팍한 국민 정서에 호소하려는 전술”이라면서 “한국 사람들은 만약 중국의 문화를 접하지 못했다면 아직까지 산속 동굴에서 야만인같이 살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 중국에 있는 수십여 종의 김치 중 가장 인기 없는 김치가 한국 김치”라고 썼다.
중국 전문가들은 김치 논란의 이면엔 경제적 속셈이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고 본다. 중국 김치 시장 규모는 400억 위안(6조 8092억 원)으로 추산된다. 현재 중국에서 김치를 생산, 판매하는 기업은 대략 4000여 개다. 이 중 600여 개가 2020년에 세워졌을 만큼 성장세가 빠르다. 상장된 회사는 1곳에 불과하다.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김치산업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내부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2020년 12월 3일 ‘신경보’는 “혼전을 벌이고 있는 김치 업체들에게 중국 김치의 국제 표준 인가는 큰 호재가 될 것이다. 천군만마”라고 보도했다. 이어 “이제 기준을 정했으니 다른 나라는 표준에 따라야 한다. 전 세계 고객이 제품을 구매할 때 (국제 표준이) 결정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중국 김치 전체에 대한 전반적인 산업구조가 향상될 것이고 중국 김치의 국제적 영향력도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국과 중국 간 갈등 확산 조짐이 보이자 화춘잉 외교부 대변인은 1월 20일 정례 브리핑에서 “양국의 감정을 해쳐선 안 된다”며 진화에 나섰다. 화춘잉은 “김치와 관련된 문제를 미식 차원에서 양국이 우호적 교류를 해야지, 대립해선 안 된다”고 했다. 이어 화춘잉은 “파오차이는 절인 발효식품의 일종으로 일부 소수의 몇 개 나라와 지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에 파오차이가 있고, 한반도와 중국의 조선족은 모두 김치라고 부른다”고 덧붙였다.
화춘잉 발언들은 또 다른 공방의 불씨가 될 전망이다. 한국 김치가 파오차이와 같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춘잉 발언이 알려진 후 한 대학 교수는 “한국의 김치라는 단어, 담그는 방법은 중국에서 왔다. 또 김치의 매운 맛을 내는 고추는 서양에서 왔다. 한국 김치의 경우 김장이라는 문화, 유대감 등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김치 자체만 놓고 보면 중국이 기원이라는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배경화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