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백합배서 커제 꺾어, 신진서와 춘란배 대결 기대감…두터움 지키며 부드러운 승리 추구 ‘이창호류’
판팅위가 작년 연말 벌어진 제4회 Milly 몽백합배 세계바둑오픈 8강에서 난적 커제를 꺾었다. 사진=중국 시나바둑 제공
심재익이 가장 좋아하는 기사는 판팅위 9단이다. 연구생 시절 우상 박정환 9단을 꺾는 모습에 반했다고 말한다. 인터넷 바둑사이트에서 대화명으로 판팅위가 사용하는 아이디를 그대로 카피해 사용할 정도로 좋아한다.
약 7년 전, 판팅위가 응씨컵을 높이 들어 올렸다. 태어난 지 16세 7개월 만에 이룬 세계대회 우승이었다. 이창호 9단이 지닌 최연소 기록(제3회 동양증권배, 16세 6개월)에 버금갔다. 대국 시 표정과 기풍까지 비슷한 중국산 돌부처의 출현이었다. 극적인 우승 이후 행보가 기대엔 못 미쳤다. 가끔 농심신라면배에서 인상 깊은 성적(7연승)을 남겼지만, 토너먼트 세계대회에선 4강 진출 자체가 드물었다.
판팅위가 돌부처(위)라면 커제는 손오공(아래)이다. 그림= 중국 시나바둑 제공
현재 세계바둑은 신진서와 커제가 주름잡는 양강구도다. 둘 다 속도가 주는 경쾌함과 힘으로 짓누르고 부러뜨리려는 집념이 눈에 보이는 기풍이다. 반면 판팅위는 두터움을 지키며 부드러운 승리를 추구하는 이창호류의 전승자다.
지난 연말 벌어진 제4회 Milly 몽백합배 세계바둑오픈 8강에서 판팅위는 난적 커제를 꺾었다. 세계대회나 갑조리그까지 통틀어 첫 승리였다. 내용이 놀라웠다. 커제를 정말 부드럽게 제압했다.
이 대국을 정밀 분석한 후야오위 8단은 “커제가 판팅위의 성명절기(成名绝技)에 당했다”라고 일갈했다. 절정고수들답게 단 일합에 승부가 갈렸다. 커제는 힘과 파괴력이 넘치지만, 욕심쟁이 손오공이다. 판팅위가 드디어 긴고아(손오공 머리에 씌워진 머리테)의 주문을 알아버린 걸까. 1월 18일 벌어질 춘란배 8강, 신진서와 벌일 일전도 흥미로울 것이다.
[승부처 돋보기] 방어 속에 공격이… 제4회 Milly 몽백합배 세계바둑오픈 8강 ●판팅위 ○커제 2020.12.29. 193수 흑불계승 실전1 #실전1 초반 진행이다. 판팅위는 상변, 커제는 하변에 진영을 세웠다. 좌변에서 서로 행마가 현란하다. 두 곤마가 얽혀있다. 백42 이후에 절예는 흑에게 A와 B를 추천했다. 모두 애초에 백을 갈라놓은 흑21을 가볍게 보는 행마였다. 하지만 판팅위의 판단은 달랐다. 실전2 #실전2 판팅위의 선택은 흑1. 두텁게 이었다. 이후 일감은 백C다. 흑 한 점(세모 표시)을 잡는 게 생각보다 크다. 게다가 D로 끊는 약점을 노려보고 있다. 참고도1 #참고도1 국 후 커제는 “백 세모 단수는 두렵지 않았다. 바로 흑1로 치고, 3으로 늘어둔다. 흑은 단점을 지키면서 안형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카타고는 흑3 대신 E 방향으로 호구를 추천했다. 비슷한 의미다. 절예는 흑1, 백2 교환 없이 바로 F로 나가는 수법을 제시했다. 끊어져도 흑 대마는 G로 두어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전3 #실전3 커제는 백1을 두었다. 역시 둥글둥글한 타협보단 가시 돋친 공격을 선호했다. 절예는 흑의 대응으로 H, I, J 세 가지 수법을 제시했다. 모두 흑이 이어가는 방법이다. 이러면 백이 K로 한 점을 잡는 게 선수다. 흑이 다시 보강해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판팅위는 인공지능과 생각이 달랐다. 실전4 #실전4 판팅위는 흑3, 조용히 중검을 세웠다. 커제의 뾰쪽한 암기(세모표시)가 쉽게 봉쇄되었다. 방어 속에 공격이 숨어 있는 절대고수의 수법이다. 흑은 L로 끊어지는 수를 방비했고, 더불어 M, N에 나가는 약점을 노린다. 참고도2(절예) #참고도2(절예) 이후 수많은 갈림길 중 하나다. 백1로 후퇴하는 순간 흑은 바로 진격한다. 흑4로 끊는 수가 좋다. 좌변 흑대마는 언제든지 살 수 있는 돌이라 백의 행마가 난감하다. 만약 백5로 이어가려고 해도 절예는 흑6 이후 다시 공격하는 수순이 있다. 참고도3(절예) #참고도3(절예) 백1로 끊어가도 흑세모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백7까지 외길 수순, 자충이 되어 O로 끊어갈 수가 없다. 뒤를 방비한 흑은 8, 10으로 마음껏 휘두른다. 실전5 #실전5 결국 커제는 백1로 상변 약점을 지켰다. 판팅위는 당당하게 흑10으로 뻗어 백 두 점을 가두면서 안정한다. 이때 절예 기준 흑승률은 55.6%, 근소하게 앞서기 시작했다. 흑16으로 상변을 굳히니 61%, 점점 승률이 올라간다. 실전6 #실전6 흑1을 보고 커제는 바로 두 점(세모 표시)을 끌고 도망갔지만, 부처님 손바닥 안이었다. 바로 흑 승률이 83.5%로 치솟았다. 판팅위는 바로 사석작전을 펼쳐 석 점을 버리면서 흑13자리를 선점한다. 흑 승률은 93.4%가 되었다. 완승이다. 아직 빈 공간이 많지만, 바둑은 이미 끝났다. |
박주성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