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차 사건 외 경찰 수사에 고통 받는 사람 있어…박준영 변호사 “정권 차원 사과 필요”
왼쪽부터 이춘재 8차 사건 범인으로 몰려 20년 넘게 억울한 옥살이했던 윤성여 씨, 이춘재 범죄를 밝혀진 ‘초등생 살인 사건’ 피해자 고 김현정 양의 아버지 김용복 씨, 이춘재 9차 사건 용의자로 몰려 경찰의 가혹한 수사를 받아야 했던 고 윤동일 씨의 형 윤동기 씨가 함께 1월 25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박현광 기자
이춘재 8차 사건 범인으로 몰려 20년 넘게 억울한 옥살이했던 윤성여 씨, 이춘재 범죄를 밝혀진 ‘초등생 살인 사건’ 피해자 고 김현정 양의 아버지 김용복 씨, 이춘재 9차 사건 용의자로 몰려 경찰의 가혹한 수사를 받아야 했던 고 윤동일 씨의 형 윤동기 씨가 함께 1월 25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정도 법무법인 참본 변호사, 박준영 변호사, 김칠준·이주희 법무법인 다산 변호사가 ‘이춘재 피해자들’을 도와 진실화해위에 진실 규명을 신청했다.
김칠준 변호사는 이날 “이춘재 사건은 우리 사회에 어마어마한 큰 충격은 던져줬다. 어마어마한 사건의 용의자로 몰린 만큼 가혹한 경찰 조사로 고초를 겪은 당사자는 눈치가 보여서 어딜 가서 하소연을 할 수도 없었다. 경찰 조사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비일비재했다”며 “국가는 당시 작동하지 않았던 사법 시스템, 자행됐던 공권력의 폭력 등 과거의 일을 소상히 밝힌 뒤 바로 잡고, 피해자들에게 반성과 사죄를 해야 한다. 그래야만 온 국민이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춘재 초등생 살인 사건’ 피해자 유가족의 변호를 담당했던 이정도 변호사는 “당시 반인권적, 반인륜적 공권력 행사는 범죄 피해 당사자뿐 아니라 그 가족에게까지 피해가 미쳤다. 진상규명을 통해서 피해자 가족의 인권 침해에 대해 재고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이정도 법무법인 참본 변호사, 박준영 변호사, 김칠준·이주희 법무법인 다산 변호사가 ‘이춘재 피해자들’을 도와 진실화해위에 진실 규명을 신청했다. 사진=박현광 기자
‘이춘재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몰렸던 윤성여 씨는 재심을 청구해 2020년 12월 17일 무죄 선고를 받았다. 재판부는 당시 수사 경찰이 윤성여 씨를 재우지 않거나 신체가 불편한 윤 씨에게 쪼그려 뛰기 등 가혹 행위를 했다는 점과 거짓 자백을 강요했다는 점 등을 인정했다. 윤 씨는 이날 “잘못된 진실이 하루빨리 바로 잡혔으면 한다”고 짧게 밝혔다. (관련 기사 20년 억울한 옥살이 윤성여씨 무죄 선고 “이제는 손해배상”)
윤 씨는 31년 만에 자신의 누명을 벗었지만 여전히 이춘재 사건으로 피해를 받는 사람이 존재한다. ‘이춘재 초등생 살인 사건’ 피해자 김현정 양의 유가족은 30년 동안 딸의 행방조차 모르고 살았다. 당시 초등학생 2학년인 김 양의 유류품이 야산에서 발견됐고, 김 양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까지 나왔지만 경찰은 이를 유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 (관련 기사 몰래 제사까지 지냈다? 다시 미궁에 빠진 ‘화성 초등생 실종사건’ 진실)
김 양의 유가족은 김 양이 실종된 것으로 생각하고 30년 넘는 세월 동안 딸이 돌아올까 문을 잠그지도 않고 살았다. 김 양의 아버지 김용복 씨는 “대통령, 검사에게 자기 자식이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지 물어보고 싶다. 경찰이 은폐한 걸 두고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묻고 싶다”며 “경찰이 은폐하면 민간인이 그걸 어떻게 찾느냐.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온다”고 말했다.
윤성여 씨는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려 옥살이를 20년 했지만 살아 있기 때문에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린 뒤 경찰의 가혹 수사를 후유증으로 사망한 사람도 있다. 1990년 당시 20세였던 윤동일 씨는 이춘재 9차 사건이 발생한 뒤 용의자로 몰려 경찰의 가혹 수사를 견뎌야 했다. 윤 씨는 재판 끝에 무죄로 풀려났지만 후유증으로 암에 걸려 7년 뒤 세상을 떴다. (관련 기사 [단독] ‘살인의 추억’ 박해일 실제모델 “경찰 수사 후유증으로 숨졌다”)
기자회견이 끝난 뒤 세 명의 ‘이춘재 피해자들’과 네 명의 변호사는 진실화해위 조사 신청서를 제출했다. 사진=박현광 기자
윤동일 씨의 형 윤동기 씨에 따르면 동생 윤동일 씨는 경찰 수사 당시 마대 자루에 담겨 구타를 심하게 당했고, 현장 검증 때 ‘실수’하지 않게 자필 진술서를 27번이나 반복해서 썼다. 땅을 살 돈으로 변호사를 선임해 동생을 되찾아왔지만, 동생은 1년 만에 뼈에 종양이 생겼다. 동생이 죽기 전까지 병원비로 온 집안의 돈을 쏟아부었고, 동생이 세상을 떠났을 즈음엔 가세가 이미 기운 상태였다. (관련 기사 [단독] 화성연쇄살인 9차 사건 피의자도 허위 자백 흔적)
윤동기 씨는 “동생을 잃은 것도 어이없지만, 동생이 떠나고 궁핍하게 살아온 것도 참 고통스러웠다. 앞으로 억울한 피해자가 안 생겨야 한다. 당시 수사 형사들이 책임질 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이 끝난 뒤 세 명의 ‘이춘재 피해자들’과 네 명의 변호사는 진실화해위 조사 신청서를 제출했다. 박준영 변호사는 “이춘재 8차 사건 재심에서 무죄가 나왔고 정의가 실현됐다. 하지만 나머지 13건은 진상 규명이 이뤄지지 않았다. 13건 속에도 수많은 윤성여가 있다”며 “당시 2만 명이 넘는 사람이 경찰 조사를 받았고, 적지 않은 수가 반인권적 수사를 당했다고 보여 진다. 경찰청장의 사과가 아닌 정권 차원에서의 사과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