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표 흡수 관측 속 성범죄 이슈 재부각 부담…“무관용” 입장 표현 ‘내로남불’ 비판도
김종철 전 대표가 성추행 혐의를 인정하고 사퇴한 가운데 1월 25일 적막이 흐르는 서울 여의도 정의당 중앙당사. 사진=국회사진취재단
‘포스트 심상정’으로 기대를 모으던 김종철 정의당 대표가 1월 25일 선출 3개월 만에 자진사퇴했다. 같은 당 소속 장혜영 의원을 성추행한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배복주 정의당 젠더인권본부장 등에 따르면 김종철 전 대표와 장혜영 의원은 당무상 면담을 위해 1월 15일 서울 여의도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면담 종료 후 식당을 나와 차량을 기다리던 중 김 전 대표는 장 의원 동의 없는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행했다고 한다. 이에 장 의원이 즉각 항의했고, 김 전 대표 역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혜영 의원은 사흘 뒤 배복주 본부장에 이 사실을 알렸다. 배 본부장은 피해자와 가해자에 대한 수차례 비공개 조사를 진행한 뒤 1월 25일 당 비공개 대표단 회의에 사건 경위를 보고했다. 정의당은 김 전 대표 자진사퇴와 별개로 당 차원의 직위해제를 결정했고, 향후 징계절차를 밟겠다는 방침이다.
배복주 본부장은 1월 25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긴급기자회견에서 “다른 누구도 아닌 대표의 성추행 사건이라는 심각함에 비춰 무겁고 엄중한 논의가 진행됐고, 신속한 결정을 내렸다”며 “가해자는 무관용의 원칙으로 가장 높은 수준의 엄중한 처리지침을 갖고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당 대표가 성추문으로 사퇴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지자 민주당은 득실 계산에 분주해 보인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사건으로 정의당의 4월 재보선은 사실상 끝이 났다고 본다. 정의당은 비상대책회의를 구성해 이번 사건의 수습 방안 등을 집중 논의하고 있는데, 4월 재보선 서울·부산시장 후보 무공천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의당 주요 요직을 거친 전직 의원의 말이다.
“정의당은 이번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의 원인이 여당 소속 지자체장들의 성범죄에 있다고 민주당에 강한 책임을 요구해왔다. 그런데 정의당도 성 관련 문제로 당대표를 징계하고 대국민사과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보궐선거에 후보 공천할 명분이 있느냐는 게 당원들의 상당한 의견이다. 정당의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결론이 내려지겠지만, 보궐선거 출마가 어려울 거라고 본다.”
전국단위 선거의 연이은 패배로 더 이상 밀릴 곳이 없는 보수진영에서는 후보 단일화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국민의힘은 자체적인 경선을 치르기로 했지만, 향후 외부 후보들과 단일화 경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역시 단일화 요구를 이어가고 있다.
반면 ‘민주당 2중대’ 꼬리표를 떼어내려 하는 정의당은 일찌감치 ‘완주’를 강조하며 범여권 후보 단일화에 대한 반대 뜻을 분명히 했다. 정의당의 이탈이 민주당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고진동 정치평론가는 “과거 선거를 보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정의당은 5% 정도 득표율을 가져갈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정의당이 선거에 후보를 내지 못하면, 이 표 중 상당수가 민주당으로 갈 수 있다. 치열한 구도 속에 민주당에 유리하게 작동하는 건 사실”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민주당에서 박영선 전 장관이 후보로 결정되고, 성추행 이슈가 커지면 여성후보로 가지는 강점이 있다. 그럼 민주당에서 가장 큰 이익을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4·7 재보 궐선거 서울시장에 출마하는 우상호 의원(왼쪽)과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두 사람이 1월 26일 서울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열린 ‘경기도 기본주택 토론회’에 참석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국회사진취재단
정의당 내부에서 터진 사건인 만큼 민주당과 직접 관련은 없지만, 진보진영이 다시 성범죄 프레임에 휘말린 것은 민주당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실제 김 전 대표 사건이 불거진 직후 민주당 소속으로 성범죄를 일으켜 지사직을 잃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 박원순 전 서울시장 등의 이름이 다시 거론됐다.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은 정의당에 대해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으로 낙인찍어 집단적 2차 가해를 저지른 민주당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며 “다시 한번 서울시장 선거의 중요성과 함의를 생각하게 된다. 인권과 진보를 외쳐온 이들의 이중성과 민낯을 더 이상 두고만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이 선긋기에 나선 것도 정의당 문제가 민주당에 넘어오지 않게 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최인호 수석대변인은 1월 25일 서면브리핑을 통해 “충격을 넘어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라며 “정의당은 이 사건을 무관용의 원칙으로 조치를 취해야 하며, 아울러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섣부른 입장 표현에 야권은 ‘내로남불’이라는 공세를 펼치고 있다. 국민의힘 한 3선 의원은 “민주당은 오거돈 박원순 전 시장 성범죄 사건을 어떻게 조치했느냐. 또한 당헌 개정까지 하며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고 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라며 “선거를 앞두고 성추행 문제가 다시 이슈로 떠오르니까 미리 진화에 나서려는 것 같은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의당이 김종철 전 대표 성추행 사건에 책임을 지고 4월 보궐선거에 후보 공천을 하지 않으면, 민주당의 지자체장 성비위 사건 대응 및 당헌 개정을 통한 후보 공천에 대한 심판론이 더욱 부각될 수도 있다.
김 전 대표 사건이 보궐선거 당락을 결정하는 핵심요소는 될 수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성비위 문제가 민주당 오거돈 박원순 전 시장에서 국민의힘 김병욱 의원, 김학의 전 차관을 거쳐 정의당까지 왔다. 대한민국 정치 전체가 성비위 문제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 됐다”며 “이번 이슈가 선거 판세를 전복시킬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