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할서 아닌 본청서 직접 챙겨…수사권 조정·공수처 출범 영향 분석도
간판 불이 꺼진 유흥업소로 접대여성들이 들어가는 모습이다. 연초부터 불법 영업 유흥업소에 대한 경찰 특별단속이 매서워졌고 적발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강제로 문 열고, 비상탈출구 막고
1월 20일 강남 일대에서 경찰의 특별단속으로 연이은 검거가 이뤄졌다. 밤 9시께 서울 강남 압구정동 소재의 한 유흥주점에 출동한 경찰은 업주와 손님 등 11명을 검거했다. 경찰이 출동하자 이들은 뒷문을 통해 몰래 도주하려 했지만 결국 경찰 검거망을 빠져나가지 못했다.
10시쯤에는 서울 강남 삼성동의 한 유흥주점에서 경찰 단속이 이뤄졌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비상탈출로를 통해 몰래 빠져나가는 업주와 손님을 20여 분의 대치 끝에 힘겹게 검거했다.
자정 무렵 서울 강남 역삼동 소재의 한 유흥업소에 경찰이 출동했다. 가게 내외부에 불이 꺼져 있고 인기척도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경찰은 계속 문을 두드렸다. 불법 영업 중이라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소방당국의 도움을 받아 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것처럼, 영업을 하지 않는 것처럼 조용하던 업소 안에서는 무려 41명이 숨어 있었다. 업주와 종업원, 그리고 손님들이었다. 이들은 감염병예방법 위반으로 입건됐다.
하룻밤 사이 강남 일대 유흥업소 3곳이 불법 영업을 하다 적발됐는데 유독 이날만 많은 단속이 이뤄진 것은 아니다. 경찰은 올해 들어 대대적인 특별단속에 돌입했다. 그 어느 때보다 강한 단속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경찰 단속은 손쉽게 피해갈 수 있다던 강남 유흥업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그럼에도 더 이상 가게 문을 닫고 있을 순 없다며 불법 영업을 강행하는 업소들도 있지만 단속을 우려해 다시 가게 문을 닫은 업소들도 많다.
#이번 특별단속은 다르다
“우리 가게는 ○○경찰서랑 MOU를 맺었으니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유흥업소를 찾은 손님이 행여나 단속이 나올 일은 없냐고 우려하면 업소 관계자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물론 경찰서와 유흥업소가 MOU(전략적 업무협약)를 체결할 일은 없다. 관할 경찰서와의 유착을 통해 단속 정보를 미리 알아 단속당할 걱정이 없다는 얘기를 강조하기 위해 이런 표현을 쓰는 거다. 심지어 “우리 가게는 광수대(광역범죄수사대)랑 MOU를 맺었다”고 말하는 업소도 있었다. 광수대와 MOU를 맺었다는 얘기는 일반단속이 아닌 특별단속도 피해갈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실제로 지난 연말에만 해도 경찰과 유흥업소의 MOU가 실제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불법 영업이 기승을 부렸다. 경찰과 유흥업계의 유착 의혹이 곳곳에서 제기됐을 정도다. 그런데 올해 들어 분위기가 완전 달라졌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적발당한 유흥업소의 수가 급증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불법 영업을 하던 유흥업소들이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강남의 한 룸살롱 상무는 “경찰 단속이 매서워진 것은 물론이고 가늠하기도 어려워졌다. 유흥업계가 가장 무서워하는 특별단속은 관할서가 아닌 다른 지역 경찰이 단속을 하는 방식이다. 관할서 경찰은 일면식이 있어 사정 봐가며 단속이 이뤄지지만 다른 지역 경찰이 단속 나오면 원칙대로 한다. 과거 장안동 안마시술소 거리가 통째로 사라진 게 바로 이런 방식의 특별단속 때문이었다”라며 “이번에는 관할서에서 단속이 나와도 일체 봐주는 게 없는 데다 전혀 모르는 경찰들이 단속을 나오기도 한다. 특별단속일지라도 어떤 형태인지를 가늠해야 대응이 가능한데 이번에는 정말 모르겠다”고 요즘 분위기를 전했다.
최근 경찰의 유흥업소 특별단속이 이런 ‘정보’에 방점이 찍혀 있고 서울경찰청 내지는 경찰청이 직접 주도하는 상황이라면 유흥업소의 기대처럼 ‘지나가는 소나기’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사진=박정훈 기자
#경찰은 큰 뜻 품었다
실제로 최근 경찰은 거듭해서 유흥업소를 특별단속 해 성과를 내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유흥업소들이 불법 영업을 이어간다고 판단한 경찰은 계속 특별단속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이번에는 경찰이 언론에게도 어떤 방식으로 어느 기간 동안 특별단속을 벌인다는 정보를 주지 않을 정도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서울 강남 일대의 유흥업소들에 대한 특별단속을 관할 경찰서가 아닌 서울경찰청에서 직접 챙기고 있다고 한다. 언론을 통해 성과를 드러내기 위한 ‘보여주기식 단속’이 아니라는 의미다.
물론 유흥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소나기만 피하면 된다’는 인식이 여전히 팽배하다. 숱한 경찰 단속을 경험하며 나름 그쪽에선 잔뼈가 굵다고 자부하는 이들은 특히 그렇다. 그런데 경찰 내부 사정에 정통한 이들은 이번에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고 얘기한다. 현재 경찰이 단순히 감염병예방법 위반 사례를 적발하기 위한 목적으로 특별단속을 이어가고 있는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게 그 이유다. 경찰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법조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경찰이 유흥업소 불법 영업을 단속하면 관련 정보가 경찰청에도 보고가 됐지만 바로 검찰로 올라갔다. 연예인이나 정관계 고위층 인사들이 단속을 당할 경우 그 정보가 바로 검찰로 갔고 이 정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도 검찰이었다”라며 “올해부터 검경수사권 조정이 이뤄지는 등 검찰 개혁이 계속되면서 이제 그런 정보가 검찰로 가지 않는다. 올곧이 경찰 정보로 관련 수사도 경찰이 단독으로 진행한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경찰 특별단속은 더욱 매서울 수밖에 없다. 행여 단속에서 국회의원이 적발되는 상황이 연출되면 경찰의 입지가 달라질 수 있다. 이런 까닭에 영등포구와 강남 등 국회의원이나 정관계 인사들이 자주 가는 지역을 위주로 특별단속이 더 강도 높게 진행 중이라는 얘기도 있다”고 설명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도 이런 분위기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과거 고위공직자 관련 수사는 사실상 검찰이 독식하는 분위기였다. 경찰 수사를 통해 혐의가 드러났다 해도 기소권을 가진 검찰이 사건을 송치 받은 뒤 보강 수사를 진행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독식했다. 이제는 검찰과 경찰, 공수처까지 수사 주체가 늘어났다. 다만 검찰은 직접 수사의 범위가 대폭 축소됐고 공수처는 고위공직자 수사 전담 수사기관이지만 범죄정보를 직접 수집하지 않아 언론이 제기한 의혹이나 검·경에서 이미 시작된 수사를 이첩 받아야 하는 한계가 있다. 경찰은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직접 수사 범위가 늘어난 데다 범죄 정보도 직접 수집하는데 인력이 많아 정보력에서 가장 앞선다. 결과적으로 경찰의 유흥업소 특별단속이 이런 ‘정보’에 방점이 찍혀 있고 서울경찰청 내지는 경찰청이 직접 주도하는 상황이라면 유흥업소의 기대처럼 ‘지나가는 소나기’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전동선 프리랜서